나의 산행 버킷리스트
나의 산행 버킷리스트
  • 김혜연 | 김혜연
  • 승인 2021.11.20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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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 운장산 하이킹

설레는 가을날 대한민국을 핑크빛으로 물들인 드라마가 있었으니, 바로 <갯마을 차차차>다. 극중 주인공 혜진이 남자친구와 함께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이루면서 극이 진행되는데 알콩달콩 이야기가 재미있다. 불행히도 남자친구가 없는 나는 말없이 항상 나의 친구가 되어주는 산에서 할 수 있는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보기로 했다.

산행 버킷리스트
-가고 싶지만 망설이고 못 갔던 산에 가기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가져간 쓰레기봉투 가득 채워 오기
-단풍 인증 사진 찍기
-장롱 백패킹으로 시들해진 친구를 다시 아웃도어의 열정으로 채우기
-걷고 싶은 만큼 걷고 현지 맛집 찾아 맛있는 음식 먹고 오기

설레는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러 떠나볼까?
오늘은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려워 매번 갈망하다 가지 못하던 전라북도 진안의 운장산을 찾았다. 이번엔 친구와 함께 말이다. 열심히 제 할 일을 하는 노란 물결의 이삭을 바라보며 달리니, 이제 제법 가을이 무르익었음을 실감한다. 코로나 백신 요양으로 아기의 체력이 되어 버린 바람에 무거운 배낭과 함께하는 산행이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마을을 둘러싼 탄탄한 산맥의 장쾌함이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산행 들머리인 운장산 휴게소에 도착해서 엄살을 한껏 떨며 산행을 시작했다. 폭신한 흙길과 우거진 나무 사이를 꾸준히 오른다. 거듭되는 오르막에 숨이 차오르면 그대로 멈춰 하늘 한번 바라보고 나뭇잎 흔드는 시원한 바람 맞으며 에너지를 충전하면 된다. 급한 건 하나도 없다.

운장산은 지루할 틈이 없다. 바르기만 하던 흙길이 지루할 때쯤이면 뾰족한 바위가 스릴 넘치는 숙제를 내어주고 숲으로 가득한 눈이 지겨워지면 그 사이로 탁 트인 뷰를 내어준다. 이런 깍쟁이 같으니!

온전히 즐기는 산행
운장산은 우리나라 고원 지대인 진안고원의 서북방에 자리하고 있다. 산 정상에는 상봉, 동봉, 서봉 세 개 봉우리가 비슷한 높이로 솟아있는데 봉우리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기 때문인지 산행 내내 웅장하고 신비로운 기분이다. 오랜만에 산행 온 친구들의 볼멘소리를 노래 삼아 마지막 급경사를 오르자 드디어 하늘과 닿는 동그란 구멍을 발견했다. “조금만 힘내, 다 왔다!” 언제 들어도 힘이 나는 멘트를 날리고 드디어 오늘 목적지 서봉에 도착했다.

알에서 막 깨어난 아기 새의 심정이 이럴까? 숲에 둘러싸였다가 하늘로 통하는 구멍을 통과하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숲에 갇혀있던 눈에 거대하고 웅장한 산맥들과 북두칠성의 전설이 담긴 칠성대의 깎아놓은 듯한 바위가 황홀함을 선사한다. 배낭을 집어 던지고 바위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과 함께 360도 파노라마 뷰를 감상한다. 다른 즐길 거리를 위해 바삐 움직이는 것보다 이렇게 온전히 그 순간을 마음껏 담는 시간이 좋다.

해 질 녘의 아름다운 운장산을 담고 다음 날을 위한 준비 했다. 웅장한 첩첩산중을 보니, 그 사이사이 뽀송뽀송하게 깔린 구름이 보고 싶어 내일 아침 운해를 보여 달라고 기도하며 잠들었다. 요즘 부쩍 날씨요정이 내 손을 들어주고 있기에 기대를 해본다.

운해 말고 곰탕
새벽바람이 텐트를 흔드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설렘을 머금고 텐트 지퍼를 내렸는데, 이게 웬일일까? 누가 첩첩산중을 훔쳐 간 것일까? 눈앞에 나타난 것은 그저 하얀 세상. 일명 온통 사방이 뿌옇다고 하여 사골 국물이 생각나 곰탕으로 불리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아침햇살을 머금은 운장산과 구봉산 자락의 광활한 모습을 고대했는데, 자욱한 안개로 그 아름다운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여기서 또 깨달은 교훈이 있다. 무엇이든 미루면 안 된다는 것.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며 살아가자.

오늘은 촉촉한 나무들을 지나며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 중간에 안개가 걷히자 산맥의 속살이 드러났다. 운해를 보지 못해 아쉬웠던 마음이 조금은 사르르 녹아내린다. 왜 이제야 이 아름다운 곳을 찾았는지 후회스러울 뿐이다.

운장산 정상 석을 찍은 이후부터는 짓궂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물기를 가득 품은 나뭇잎과 나무뿌리들은 매번 얼굴을 달리하여 무기로 바뀐다. 비가 온 뒤 축축이 젖은 나뭇잎을 밟을 때 신중하지 않으면 미끄러져 다치기 쉽다. 산행 시에는 무릎과 발목으로 무게를 분산해 관절에 무리를 줄이는 게 좋다. 또한 몸의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을 주는 트레킹 폴을 사용하면 조금 더 수월하고 안전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버킷리스트 성공
인생의 한 구절처럼 지독한 오르막을 올랐는데 숨 돌릴 틈 없이 끝없는 내리막이 이어졌다. 그 끝에 임도와 맞닿은 갈크미재 골짜기를 만난다. 이곳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고 이름도 귀여운 곰직이 산으로 향했다. 그 후에는 이름만큼 귀여운 곰직이 산의 정상 안내목과 억새를 지나 복두봉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함께 산행에 나선 친구 걸음이 느려진다.

최종 목적지는 구봉산이었으나, 즐거운 산행이 고행길로 여겨지면 친구가 포기할 것 같았다. 내 버킷리스트 4번인 장롱 백패킹으로 시들해진 친구를 다시 아웃도어의 열정으로 채우기를 완성할 수 없을 거 같아 복두봉을 찍고 운장산 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때로는 빠른 포기가 더 현명한 답일 수 있다. 탈출 소식에 이제야 친구 얼굴에 웃음이 돌아왔다. 운장산 자연휴양림까지 가는 길고 긴 하산 길을 걸으며 차라리 산행하는 것이 더 짧았을 것 같았다고 후회를 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산행은 다음에 찾을 구봉산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막을 내렸다. 계획 한대로 산행을 끝마쳤으면 좋았겠지만 로봇처럼 걸으며 함박웃음을 짓는 일행들의 얼굴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한다. 꼭 오고 싶던 운장산에 와서 익어가는 단풍을 보고, 행복했다던 친구의 웃음도 보고, 두둑하게 부푼 쓰레기봉투를 보니 이번 나의 산행 버킷리스트는 성공이다.

Sleep Outside! Have Fun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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