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 1세대의 보은
폐광 1세대의 보은
  • 박신영 기자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21.10.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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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사진관 이혜진 사진작가

폐광촌에서 야생화 마을로 변하기까지의 고한 18리를 기록한 이혜진 사진작가. 고향에 돌아와 들꽃사진관을 오픈하고 주민 사이에서 최고의 사진작가로 손꼽히는 그녀의 이야기다.

들꽃사진관은 외관부터 아름답네요.
원래 이곳은 마을 할머니가 40년 동안 운영하시던 ‘은혜슈퍼’였어요. 탄광 산업이 활발할 때부터 광부들이 담배를 사던 동네 구멍가게였죠.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슈퍼는 문을 닫았고 빈집으로 남아있었는데 제가 들어와 사진관으로 개조했어요.

경찰 준비생이었다고 들었어요.
지금 하는 일과 대조해보면 안 붙는 감이 있는데, 육상 선수 출신이에요. 그렇다고 엘리트 체육 선수는 아니었고 가끔 도내 대회 메달을 따는 정도였어요. 부모님은 선수 출신이라는 이력을 살려 경찰이 되길 원하셨고 저도 경찰에 대한 환상이 어느 정도 있어서 서울에서 경찰 공무원을 준비했죠. 근데 돌이켜보니까 조직 생활과 상명하복은 같이 가잖아요. 선수 활동하면서 소위 ‘까라면 까’라는 문화에 진절머리가 났었는데 ‘과연 내가 경찰을 정말 하고 싶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중간에 그만뒀어요.

그럼 뭘 하고 싶었어요?
온전히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남을 도울 때 보람이 크거든요. 경찰도 같은 맥락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의미가 잘 전달이 안 될 거 같았죠. 그래서 그 길로 NGO 단체에 입사했어요. 그런데 NGO 직원으로서는 직접적으로 남을 도울 수 없더라고요. 내가 가진 게 많거나 재능이 있어서 나눠주면 모를까. 그리고 당시 고시원에서 살았어요. 비좁은 방에서 나부터 죽어나는데 타인의 고통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회의감도 많이 들었죠. 24세의 제겐 이 모든 게 가혹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고향인 고한으로 돌아왔어요.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었겠어요.
한동안은 집 밖에도 잘 안 나갔어요. 성공하려고 서울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셈이잖아요. 동네 사람들 보기 창피했고 부모님에게 죄송한 마음도 들었죠.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웠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 시간을 제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탐구하며 채웠어요.

그 결과가 사진이었던 거죠?
모든 고민의 공통점이 사진이었어요.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정선의 구석구석을 다녔는데 그중 탄광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죠. 저희는 폐광 1세대인 만큼 강원랜드의 혜택을 받고 자랐어요. 학교 다닐 때는 누구도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몰랐어요. 강원랜드를 세우기 위해 주민과 정부 사이의 어떤 합의 과정이 있었고, 주민들이 어떤 시위를 했는지 등 역사적인 이야기는 교육받지 못했죠. 우리가 받은 장학금과 해외 연수 프로그램도 전부 강원랜드 사회 공헌 사업의 일환이었는데. 그동안 제가 받았던 것들이 전부 누군가의 희생과 투쟁의 결과였던 거예요. 그래서 보답의 형식으로 탄광부터 시작해 정선의 흔적들을 기록하고 싶어졌어요. 제가 잘하고 좋아하는 사진으로요.

탄광 기록은 이미 많이 있잖아요.
기록이 많이 남았다고 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여전히 학교에서는 탄광의 역사를 교육하지 않으니까요. 표면적인 기록물만 있을 뿐이죠. 저는 기록물을 이용해 아이들에게 우리 마을의 역사를 알려주고 더 나아가 청년들에게 탄광을 알리고 싶어요. 고한 18리에서 강원랜드 방향으로 직진하면 아랫마을이 나와요. 그쪽은 여전히 겨울에 연탄을 때기도 하고 8~9월엔 연탄을 이용해 고추를 말리기도 해요. 근데 우리 세대들은 연탄을 할머니 때 쓰던 구시대적인 물건으로 생각해요. 이렇게 그저 지나가버린, 기억 속에 잊힌 이야기들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사진제공 이혜진

기록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진관을 오픈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카메라와 함께했어요. 당시 다니던 학교는 강원랜드 지원 사업을 시범으로 운영하던 곳으로 교내에 강원랜드에서 지원한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계셨어요. 그분이 서울에 있는 문화예술팀을 학교로 모셔와 사진부와 미술부를 열었고 자연스레 사진을 접했죠. 중학교 때도 마찬가지예요. 지역 재단에서 음악과 사진 등 청소년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을 열어줬어요. 당시 밴드가 유행할 때라 저 혼자만 사진부 수업을 들었거든요. 덕분에 사진관을 운영하던 삼촌에게 일대일로 사진을 배웠죠. 삼촌은 항상 “앞으로는 카메라가 더 좋아질 거고 누구나 카메라를 가지겠지만 잘 찍는 사람을 없을 거다. 혜진이 너는 사진에 메시지를 담는 작가가 될 것 같다”라고 했어요. 그 말 한마디가 꾸준히 사진을 찍게 만들었죠.

사진제공 이혜진

사진에 담고 싶은 메시지가 뭘까요?
보기에 예쁜 피사체도 많지만 지나온 삶이 보이는 것들을 찍고 싶어요. 빨랫줄에 빨래가 하나 널린 것과 아무것도 널리지 않은 것은 차이가 크잖아요. 여기 사람이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려주니까요. 의자가 어느 쪽을 향하는지, 바깥에 놓인 물건에 먼지가 얼마나 싸였는지와 같은 것들요. 그래서 한때는 흥했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은 폐광, 을씨년스러운 마을에서 아기자기한 동네로 변한 고한 18리, 그리고 그 골목을 메우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사진제공 이혜진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고향에 정착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고향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을호텔 18번가의 사무국장인 김진용 삼촌이 사진관 오픈을 제안했어요. “지금 강원도에서 청년 지원 사업을 하는 중인데 고한에 사진관이 없다. 공간도 이미 준비해뒀으니 네가 와서 사진관을 열어 볼래?”라고요. 고향에서 잠깐 돈 모았다가 다시 서울로 나갈 생각으로 제안을 받아들였죠. 그런데 돌이켜보니 굳이 서울에서 사진관을 운영하지 않아도 되겠더라고요. 서울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들이 날개를 펴는 모습을 보면 조바심이 들고 ‘내가 30세가 되면 저 사람들처럼 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나중에 더 큰 사진작가가 되려면 오히려 지금 당장 나를 필요로 하는 고한에서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거 같았어요. 보통 사진작가하면 인물 사진 전문가, 여행 사진 전문가, 패션 사진 전문가처럼 잘 하는 분야가 하나씩 있는데 저는 이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작가가 되는 거죠. 이를테면 탱크 작가랄까요?(웃음) 그 초석을 고한에서 착실히 쌓아서 나중에는 세계적인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요.

사진제공 이혜진

고한 18리 마을 자랑 좀 해주세요.
마을 주민 모두 자발적으로 골목을 가꿔요. 집 앞을 깨끗이 정리하고 꽃도 심고요. 각자가 도시재생을 하고 있는 거죠. 가끔 마을 방문객에게 왜 우리 마을을 좋아하냐고 묻거든요. 그럼 항상 고층 건물만 보다가 낮은 건물이 이어진 풍경을 보며 안정감을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마을 주민들이 골목에서 이야기하고, 꽃에 물을 주고, 골목에 빗자루질 하는 모습에 정겨움을 느낀다고도 하고요. 푸근했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마을인 셈이죠.

고한 18리가 활성화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어요. 마찬가지로 사진관 오픈에도 힘든 점이 많았을 거 같아요.
어디를 가나 사람 대 사람으로 신뢰를 쌓는 건 어려워요. 물론 고한이 제 고향이고 이미 아는 주민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저는 서울에서 내려온 젊은이고 주민은 평생 고한에서 사신 어른들이다 보니 세대 차이가 있었어요. 서울이 개인주의라면 지방은 공동체 중심의 사고가 필요해요. 저는 이런 사고가 싫어서 고향을 떠났던 거라 다시 돌아왔을 때 너무 힘들었어요. 서울에서는 나 혼자 작업실에 있고 기껏해야 작업실 옆집 정도만 챙기면 되는데 여기서는 동네 주민 모두에게 곰살궂게 다가가야 하니까요. 처음에는 이런 상황들이 부담스럽고 이게 과연 사업을 위한 일인가 의문도 들었는데 그때 노력이 지금까지 사진관을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인 거 같아요.

많은 귀농 청년들의 고민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주변에 귀농을 희망하는 친구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귀촌, 귀농하면 막내가 됐다고 생각하는 게 제일 편하다. 본인이 서울에서 박사였고 교수였던 건 아무 소용없다. 항상 어른들한테 공손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라고요. 고추 하나를 심어도 지역 주민들의 도움을 분명히 받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니까요. 그러니 먼저 계신 분들에 대한 예의를 차렸으면 좋겠어요. 또 주민들과 신뢰를 쌓으면 사업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아요. 일이 생겼을 때마다 먼저 절 불러주고 이것저것 챙겨줄 때마다 주민에게 정말 감사해요.

마지막으로 작가님에게 정선은 어떤 곳일까요?
로컬에서의 떠오르는 샛별이랄까요? 청년에게 기회가 많은 도시예요. 그동안 춘천, 강릉, 원주에만 여행이 몰려서 그 외의 지역은 뒤로 밀려났었거든요. 영월 등 강원도 소도시가 조금씩 뜨고 있고 정선도 곧 새로운 여행지로 알려질 거 같아요. 마침 정선군에서도 관광에 많은 투자를 시작했거든요. 관광객도 매년 늘어나는 추세고요. 그런 걸 보면 앞으로 정선은 가능성이 많은 거 같아요. 다만 청년이 너무 없다는 게 아쉬워요. 젊은 사람들이 지역에 들어와서 분위기 좋은 카페나 맛집을 만들면 더 빨리 도시가 성장할 거 같은데. 지금은 저 혼자만 있어서 벅차요. 다양한 경험을 한 청년들 또는 도시에서 기회를 못 잡은 친구들이 정선에서 많은 걸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이혜진 작가의 나만 알고 싶은 포토존4
만항재
낮에는 드넓은 야생화 정원, 밤에는 은하수 출사지로 인기다.

하이원리조트 운암정
야간 조명이 켜진 고즈넉한 한옥 풍경이 인상적인 곳으로 돌사진 스냅 촬영지로 안성맞춤이다.

정선 소금강길
협곡을 따라 난 도로 덕분에 멋진 드론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선평역
간이역 분위기가 물씬 나 감성 사진 촬영에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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