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유난히도 습하고 더운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손가락만 꼼지락해도 땀이 나는 더위를 이길 방법은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사나운 여름을 즐기기 위해 강원도 정선에 있는 가리왕산으로 향했다.
폭포에서 만난 에어컨
가리왕산은 강원도 평창과 정선을 가르는 청옥산, 중왕산 등과 아름다운 산맥을 나란히 하고 있다. 태백산맥의 중앙부를 이루는 산답게1561.8m의 거대한 높이를 자랑한다.
가리왕산은 강원도 춘천 지방의 고대 국가로 알려진 맥국(貊國)의 갈왕이 성을 쌓고 머물렀다고 하여 갈왕산이라고 불리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가리왕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능선에는 주목·잣나무·단풍나무·갈참나무·박달나무·자작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산약초가 많이 자생한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는 장구목이다. 장구목이까지는 KTX진부역이나 진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예전에는 버스 기사에게 장구목이에서 내려달라고 따로 부탁해야 했지만 최근에는 ‘장구목이 정류장’이 생겨서 하차 전에 벨만 누르면 무사히 들머리에 내릴 수 있다.
울창한 산맥으로 둘러싸인 시원한 도로를 달려 장구목이에 도착했다. 버스 문이 열리자 뜨거운 용암 같은 공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정상까지 4.2km밖에 되지 않았으나 뜨거운 공기와 햇볕에 걱정부터 앞섰다. ‘차라리 비나 한바탕 쏟아져라’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면서 산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초입부터 숲길이 펼쳐졌다. 하늘을 보고 싶어 고개를 쭉 빼고 올려다봐도 그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울창했다. 나무들의 에스코트 덕에 뜨거운 햇볕은 피했지만 뒤이어 여름의 습한 기운이 공격해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물이 솟아나는 샘처럼 정수리에 땀이 줄줄 흘렀다. 이러다 내가 꼬깃꼬깃 말라서 없어질까 걱정이 될 정도로 땀이 흘렀다.
그 순간 어디선가 물이 돌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이랄까? 소리가 나는 쪽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더니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폭포가 말 그대로 콸콸 흐르고 있었다. 폭포 곁으로 다가갈수록 에어컨을 켜놓은 듯 시원한 공기가 퍼졌다.
가리왕산에는 아름다운 아홉 개의 폭포가 있다. 크기도 경치도 모두 달라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탄성이 터진다. 아홉 개의 폭포를 모두 지나친다면 가리왕산 산행의 1부를 마친 셈이다. 두 번째 폭포를 만났을 땐 그냥 이곳에 발이나 담그고 행동식으로 가져온 옥수수나 까먹고 한없이 늘어져 신선놀음이나 하고 싶었지만 유혹을 이겨내고 아홉 번째 폭포를 만났다. 이제 산행의 반이 끝났다. 폭포가 끝나니 다양한 종류의 이끼와 수목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꼭 누가 우리 보라고 옮겨 놓고 다져놓은 듯 자연 스스로 미술 감각을 뽐내고 있었다.
오감을 깨우는 여름 산행
온통 초록의 아름다움으로 시각이 깨어나고 반짝반짝 새들의 노랫소리가 청각을 두드린다. 시원한 바람이 촉각을 감싸면 그 바람을 타고 숲의 푸른 냄새가 후각을 뒤흔든다. 봄과 여름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산딸기는 미각을 즐겁게 해준다. 이러한데 어찌 덥다고 집에서 에어컨만 부여잡고 있을 수 있겠나.
일상에 지치고 삶이 힘겨운 사람들에게 등산이나 백패킹 등 아웃도어 활동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야외로 나와 누구보다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누구보다 좋은 장비와 예쁜 옷을 뽐내는 등 특별한 것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숲에서 작고 소중한 것의 생명력을 온몸으로 느끼길 바란다. 일출과 일몰은 그 어떤 영화보다 우리 마음에 감동을 안겨주고 계절마다 변하는 숲의 모습을 보면 욕심을 버리고 꾸준히 노력하며 살아야겠다고 느낄 것이다. 편리한 것들에게서 멀어지면 지겹던 일상의 소중함도 깨닫게 되기 때문에 말썽꾸러기 어린이를 해병대 캠프에 보내는 것처럼 성인들에게는 지독한 산행이나 백패킹이 약이 될 것이 틀림없다.
다양한 수목의 향연이 끝나면 임도에 닿는다. 잠시 배낭을 내리고 땀에 젖은 등을 식힌다. 여름 산행은 체력 소모가 많기 때문에 틈틈이 행동식을 섭취하고 휴식을 취해주는 것이 좋다. 땀도 식혔으니 이제 산행의 2부인 클라이맥스로 진입한다. 1부에서 여유로운 신선놀음을 만끽했다면 2부에서는 차원이 다른 산행길이 펼쳐진다.
높은 바위들이 콕콕 박힌 오르막이 1.7km 정도 이어진다. 적지 않은 땀을 흘리고 힘을 내기 위한 고함과 함께 오르고 올라 드디어 나무 사이로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상에 다 와 간다는 뜻이다. 마지막 힘을 끌어올려 드디어 정상에 닿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렇게 주변 산맥의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가리왕산 정상에 보이는 것은 온통 하얀 사방과 정상 석뿐이다. 요즘에 일몰 사냥꾼으로 활약하고 있는데 어디로 움직이기만 하면 그곳에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리곤 했다. 나는 ‘날씨 요괴’임이 확실하다.
날씨 요괴에서 날씨 요정으로
오늘 아름다운 숲, 신비로운 나무, 이끼를 마음껏 본 것으로 충분하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허탈한 휴식을 취했다. 잠시 허리나 펴볼까 하고 일어서 주변을 둘러봤더니 뿌옇던 안개가 걷히고 주변 능선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엔 연분홍빛 선이 생겼다. 바람을 맞으며 멍하니 그곳에 빨간 해와 분홍 하늘을 그려 넣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잠시 바람이 불더니 하늘이 점점 더 분홍빛으로 물들어갔다. 연분홍에서 분홍, 분홍에서 진분홍, 진분홍에서 급기야 빨간색이 됐다. 우리를 둘러싼 하늘 전체가 말이다. 드디어 내가 날씨 요괴에서 날씨 요정으로 거듭나는 환희의 순간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환상적인 일몰을 보며 이제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스멀스멀 일출에 대한 욕심이 올라왔다.
안온한 날씨 덕에 꿀잠을 자다가 실눈을 떴다. 텐트를 비추는 새벽빛이 노란색인 것 같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텐트 문을 열었다. 예사롭지 않은 하늘에 소란스럽게일행을 깨워 고개를 바짝 올리면서 미어캣 모드에 돌입했다. 기다림이 헛수고가 되지 않을 만큼 멋진 일출과 운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물을 받았다면 우리도 머문 흔적 말끔히 없애고 돌아가는 게 예의일 것이다. 머문 자리를 말끔히 정리하고 자리를 떠났다. 하산은 교통편을 감안해서 원점회귀코스를 선택했다. 폭포 떨어지는 소리를 박자 삼아 빠르게 하산 후 계곡에 발음 담그고 챙겨갔던 옥수수를 먹으며 소소한 뒤풀이를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생애 최고의 일몰과 일출 그리고 더위와 땀까지 만난 최고의 아웃팅을 마치며 가리왕산에서 날씨 요정으로 거듭난 나의 자연 활동을 기대해본다.
여름 산행 필수품
➊ 벌레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아이템 - 버그넷, 벌레 기피제, 맨살이 드러나지 않는 긴 소매 상의와 긴 바지
➋ 햇볕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아이템 - 챙이 넓은 모자, 손수건
➌ 더위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아이템 - 물, 얼음물, 체력 보충을 할 수 있는 행동식, 열을 식혀주고 땀 흘린 뒤 쾌적함을 제공하는 아웃도어 티슈
Sleep Outside! Have Fun Together!
백패킹 시작으로 고민 중이라면 마이기어 매장을 찾길 바란다. 안전하고 즐거운 백패킹과 올바른 백패킹 의식확립을 위해 매주 백패킹 교육을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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