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온 엉클 RICKY
미국에서 온 엉클 RICKY
  • 박은희 | 박은희
  • 승인 2021.08.10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티키리키 아이스크림의 비밀

서울 후암동의 낡은 골목을 힙하게 바꾼 아이스크림 가게 스티키리키 이야기다.

결혼식 대신 시작한 스티키리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온 남편은 대학생 시절 여름방학마다 친구들과 아이스크림 트럭을 몰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했을 정도로 아이스크림을 사랑한다. 그랬던 남편이 나를 따라 한국에 왔다. 남편은 미국에서 먹던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한국에서 찾을 수 없어 혼자서 홈메이드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

남편의 아이스크림이 둘이서 나눠 먹기 아까울 정도로 맛있어졌을 때쯤 친구들 가게에 팝업스토어를 열며 지인들과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사랑과 행복과 재미가 넘치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오픈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2017년 5월 우리는 결혼식 비용을 털어 스티키리키Stickyricky라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었다.

가게 이름은 남편의 별명을 따 스티키리키라고 지었고 인테리어는 여름 해변을 연상시키는 컬러로 꾸몄다. 미국 동부 해안가 케이프 메이라는 도시의 보드워크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스티키리키의 시그니처 컬러를 구상했다. 햇볕처럼 따뜻한 노란색, 케이프 메이에서 보았던 하늘의 색과 바다색을 조합해 작지만 아늑한 공간을 만들었다.

어떤 아이스크림 좋아하세요?
모든 세계가 그렇듯 사랑에 빠지고 그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제야 넓고 깊은 세상을 만나게 된다. 아이스크림도 마찬가지다. 아이스크림은 하드 아이스크림과 소프트크림으로 나뉜다. 하드 아이스크림은 충분히 얼린 빙과로 모양, 용기, 가공 원료, 가공 방법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 반면 소프트크림은 충분히 동결되지 않아 비교적 부드러운 빙과를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형 제조기, 즉석용 혼합 원료, 콘 & 컵의 사용에 따라 다양한 소프트크림이 출시됨과 동시에 널리 보급됐다.

아이스크림은 종류에 따라 들어가는 원료와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모든 아이스크림은 베이스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크림, 우유, 설탕 등을 섞어 걸쭉한 액체로 만든 뒤 냉동기에 얼린다. 이때부터 손이 바빠진다. 액체를 얼리는 동시에 휘휘 저으면서 공기를 넣어야 한다. 액체에 많은 공기를 넣을수록 부피가 점점 늘어나면서 조직이 부드러운 베이스가 탄생한다.

아이스크림 스타일은 베이스에 달걀을 포함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크림과 우유를 주원료로 삼는 아이스크림은 필라델피아 스타일Philadelphia Style, 거기에 달걀 노른자를 추가하면 커스터드Custard가 된다. 또한 유제품을 넣지 않고 오로지 과일즙이나 설탕 등으로만 만든 베이스에 공기를 불어 넣으면서 얼릴 경우 소르베Sorbet가 된다. 이름이 비슷해 헷갈리는 셔벗Sherbet은 아이스크림과 소르베의 중간쯤 되는 빙과다. 소르베에 유제품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면 셔벗엔 유제품이포함된다.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으로 불리는 젤라토는 달걀이나 유제품의 첨가 유무가 아닌 오버런Overrun과 관련이 있다. 오버런은 원액에 공기를 넣으면서 부피를 증가시키고 부드러운 식감을 더하는 과정이다. 공기가 얼마나 많이 들어갔느냐에 따라 오버런의 수치가 올라간다. 흔히 기계에서 뽑아먹는 소프트크림은 오버런이 60%에 이르는 반면 젤라토의 오버런은 20%다. 젤라토보다 소프트크림에 공기가 많이 들어간 셈이다. 소프트크림엔 공기가 많이 들어가 식감이 매우 부드럽고, 젤라토는 다른 아이스크림보다 훨씬 짧은 시간 동안 원액에 공기를 불어 넣어 밀도가 높다. 오버런 수치가 높은 아이스크림이 좋을 것 같지만 결국 공기를 먹는 셈이니 좋은것만은 아니다. 게다가 오버런 수치가 높은 아이스크림은 빨리 녹아 그만큼 맛의 여운 또한 짧다.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아이스크림을 들어보면 가볍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굉장히 빨리 녹는데 이는 그만큼 밀도가 낮고 공기의 비율이 높다는 이야기다.

이외에도 필라델피아 사람들이 즐기는 이탈리안 아이스Italian Ice, 반만 얼려 고체와 액체 중간 상태인 세미프레도Semifreddo, 시칠리아의 과일, 설탕, 와인 등을 혼합해 얼린 그라니타Granita, 우유와 견과류가 가득한 인도의 아이스 디저트인 쿨피Kulfi, 터키 아이스크림 돈두르마Dondurma, 태국의 철판 롤 아이스크림 롤인 아이팀 패드I Tim Pad 등 아이스크림의 종류는 정말이지 끝도 없이 많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모두 뭉뚱그려 그냥 ‘아이스크림’이라 부르는 것은 아이스크림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마음이 들 정도다.

미국은 ‘아이스크림’ 명칭의 사용을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미국 식약처 FDA는 식품법을 제정해 10% 이상의 유지방, 1.4% 이하의 달걀 노른자를 포함해야 아이스크림으로 부를 수 있게 제한한다. 스티키리키는 필라델피아에서 온 남편이 직접 만드는 아이스크림인 만큼 10% 이상의 유지방이 포함된 미국식 아이스크림 스타일을 지향한다. 달걀이 들어가지 않은 필라델피아 스타일 베이스의 하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셈이다. 베이스가 탄탄해야 어떤 맛을 입혀도 깊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기에 3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조합과 실험을 거쳐 스티키리키 만의 베이스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이것은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는 우리만의 비밀 무기이자 며느리도 모르는 비법이다.

이야기를 담은 아이스크림
스티키리키에는 클래식한 메뉴들이 있지만 들어본 적 없는 신기한 메뉴들도 많다. 고추장 초콜릿, 떡볶이, 죠리퐁 마시멜로, 새우깡, 맥파이 피자 등 예상하기 어려운 맛뿐만 아니라 썸머 앳 더 무비 시어터, 세터데이 모닝 카툰, 탠 라인 등 이름만 들어서는 무슨 맛인지 상상이 안 되는 맛도 있다. 이렇게 독특한 메뉴를 개발할 수 있는 우리만의 아이디어를 공개한다.

먼저 제철 식재료를 살리는 방법이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계절별 과일과 채소 등을 살펴보며 아이디어를 얻는다. 스티키리키의 스테디셀러 중 하나인 ‘파이’는 우유 베이스에 파이 크럼블과 제철 과일을 조합한 아이스크림이다. 스트로베리 파이, 체리 파이, 블루베리 파이, 애플 파이, 펌킨 파이 등 계절에 맞춰 다양한 메뉴들을 선보인다.

기념일에서도 아이디어를 얻는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핼러윈과 크리스마스에만 맛볼 수 있는 새로운 메뉴를 시도한다. 핼러윈 시즌에는 드라큘러 블러드, 트릭 오어 트릿 등을 만들었고 크리스마스 시즌 스페셜로 산타’s 쿠키 앤 밀크, 페퍼민트 캔디케인, 오렌지 초콜릿 퍼지 브라우니 등을 선보였다.

아이스크림이라는 틀을 벗어나 새로운 조합들을 고민하기도 한다. 스티키리키의 가장 유명한 시그니처 메뉴이자 스테디셀러인 ‘고추장 초콜릿’이 대표적이다. 스티키리키의 고추장 초콜릿을 보면 국적을 불문하고 남녀노소 “고추장 초콜릿이요?” 라며 눈이 동그래진다. 고추장 초콜릿은 벨기에산 칼리 바우트 초콜릿과 고추장을 블렌딩한 메뉴다. 처음엔 부드러운 초콜릿 맛으로 “고추장 맛이 안 나는데?” 할 때쯤 알싸하고 매운맛이 올라와 반전의 재미가 있다.

고추장 초콜릿은 미국의 멕시칸 칠리 초콜릿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멕시칸 칠리 대신 한국 음식의 베이스로 활용되는 고추장을 넣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냥 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발효음식 특유의 펑키함이 더해져 더욱더 복합적이고 새로운 맛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것 두 개를 나란히 놔두면 낯선 것이 된다. 고추장과 초콜릿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는 우리의 추억을 아이스크림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토요일 아침마다 시리얼을 먹으며 만화영화를 봤던 기억을 담아 ‘세터데이 모닝 카툰’을 만들었다. 또한 어린 시절 아빠와 함께 팝콘과 캔디를 먹으며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추억을 담아 ‘썸머 앳 더 무비 시어터’ 라는 맛을 만들었다. 행복했던 추억과 기억을 글, 그림,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아이스크림에도 기억과 추억을 담는 게 재밌고 신기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