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평야에 내려앉은 한 마리 학
철원평야에 내려앉은 한 마리 학
  • 글 ·김경선 기자 | 사진 ·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KOREA TRAVEL 철원 한탄강 | ② 금학산 트래킹

▲ 금학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철원평야가 시원스레 조망된다.

철원여중고~금학산~마애불~동송초교 약 6km 3시간30분 소요

단아한 자태를 뽐내는 한 마리 학이 평야 끝에 살포시 내려앉아 금학산이 됐다. 도선국사의 이야기가 사실 같았다. 금학산에서 바라보는 철원평야는 너무도 풍요로웠다. 여름이면 푸른 물결이, 가을이면 황금빛 물결이 넘실대는 저 풍요의 땅에 궁예의 아쉬운 꿈이 머물고 있으리라.

취재협조·철원산악회 cafe.daum.net/kimkiwon5316

300년 이상이라는 태봉국을 18년으로 바꿔버린 산이 금학산(947m)이다. 신라가 쇠약해진 틈을 타 태봉을 건국한 궁예가 금학산 대신 고암산을 진산으로 삼자 흥한 기운이 쇠하고 18년 만에 나라가 망했다는 이야기가 철원 지방에 전해진다.

도선국사의 예언에 따라 금학산이 감싼 넓은 평야에 궁궐을 지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지금도 철원 동송읍 이평리와 오지리 일대는 학이 품은 명당임에 틀림없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이 철원평야를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늘 풍성하고 풍요롭다.

겉보기에 한없이 부드러울 것만 같은 금학산은 넓은 평야를 달리다 갑자기 봉우리를 들어올렸다. 부드러운 능선의 흐름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속은 강골이다. 매바위, 용바위, 칠성바위 등 기암과 암봉이 곳곳에 있어 제법 드세다.

금학산을 찾는 이들은 대게 철원 사람들이다. 실향민들도 많이 찾는다. 남한 최전방 철의 삼각지인 민통선과 접해있는 금학산에 오르면 북녘 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워도 다가지 못하는 금단의 땅. 실향민이 아니더라도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통일에 대한 염원으로 문득문득 목이 멘다. 그래서 금학산에 오르면 이런저런 사연에 마음이 벅차오르는 지도 모르겠다.

푸른 물결 넘실대는 풍요로운 철원평야

▲ 푸른 숲이 우거진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이어진 등산로는 자연 그대로의 길이다.
철원여중고 정문 왼쪽 샛길을 따라 50m 정도 들어가니 약수터가 보였다. 금학산 트래킹을 함께 할 철원산악회 회원들과 만나기로 한 장소다. 오늘 함께 할 철원산악회 회원은 모두 6명. 등반대장 오병우, 박종순 씨를 비롯해 모두 철원에 터전을 잡고 있는 산꾼들이다. 시작도 전에 배낭에서 먹을거리가 속속 나왔다. 토마토주스에 막 쪄 온 옥수수까지 배불리 먹고 나서야 트래킹을 시작했다.

올해 유난히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한낮의 더위가 예사롭지 않았다. 가만히 서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불볕더위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온몸이 불길에 휩싸인 듯 화끈거렸다. 약수터 오른쪽으로 아스팔트길을 따랐다. 300m 정도 올라가니 약수터가 있는 금학체육공원. 여기서 정자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5분쯤 오르자 비상도로가 나타나 오르막을 잠시 끊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작은 샛길을 따라 발걸음을 이었다.

“이제부터 매바위까지 계속 오르막이 이어져요. 오늘따라 바람 한 점 안 부네요.”

오병우 씨의 말처럼 잔인하리만큼 무더운 날씨가 산을 오르는 발걸음을 한없이 더디게 만들었다. 동행한 사람들 모두 거친 숨소리를 뱉으며 묵묵히 걸어올라 갈 뿐이었다. 길은 다소 거칠었다. 흙길 여기저기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걸음을 방해했다.

“금학산이 겉으로 보기에는 부드러워 보여도 안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특히 인공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등산로는 금학산의 매력이죠. 나무 계단이나 철다리가 산행을 쉽게 만들지는 몰라도 자연 그대로의 멋은 아무래도 떨어지잖아요. 금학산의 거친 등산로를 따르다 보면 자연의 품속에 들어온 듯 마음이 편안해져요.”

동네 뒷산 가듯 금학산을 찾는다는 철원산악회 박종순 씨의 말이 이해가 됐다. 다듬지 않은 길이 산행을 다소 불편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자연스런 향기가 느껴지는 금학산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 등산로 급경사에는 안전을 위해 로프가 설치돼 있다.
산행을 시작한 지 50여 분 지났을까. 드디어 매바위다. 유순한 산세를 비웃기라도 하듯 철원평야를 노려보는 한 마리 매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매가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넘실대는 철원평야가 막힌 가슴을 뚫었다.

“금학산은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아요. 산도 산이지만 누렇게 익은 벼가 넘실대는 철원평야는 풍요로움의 상징이죠.”

황금빛 물결 대신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평야 가운데 학저수지가 살포시 앉아 있었다. 번화한 동송읍과 철원읍 너머 아이스크림 고지와 낙타고지가 보였고 그 뒤로 희미하게 북녘 땅 평강고원이 펼쳐졌다. ‘저 곳이 진짜 북녘 땅일까….’ 희미하기만 한 평강고원이 신기루처럼 아른거렸다.

손 내밀면 닿을 듯 가까운 북녘 땅
매바위를 지나자 숲이 더욱 우겨졌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시원한 바람도 간간히 불어왔다. 등산로는 계속 오르막이 이어졌다. 10분쯤 오르니 가파른 바위가 길을 막아섰다.

“이 바위 구간이 금학산 트래킹에서 가장 스릴 있죠. 미끄러우니까 로프 꼭 잡으세요.”

연이어 나타나는 커다란 바위 사이로 로프가 설치돼 있었다. 급경사 바위는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아 미끄러지는 것만 조심하면 괜찮았다. 바위를 넘어선 뒤 10여 분 오르막을 더 걸으니 우측으로 넓은 공터가 나왔다. 매바위보다 고도감이 있어 조망이 훨씬 웅장했다.

“평야 너머 북쪽으로 완만한 언덕 보이시죠? 백마고지에요. 얼마나 폭격이 심했는지 산 정상이 무너져 완만해졌어요.”

▲ 매바위에서 바라보면 번화한 동송읍 너머 아이스크림 고지와 낙타고지가 보이고 그 뒤로 희미하게 북녘 땅 평강고원이 펼쳐진다.

공터에서 다시 30분을 걸었다. 산은 시작부터 정상까지 줄기차게 오르막이 이어졌다. 정상 부근에 다다르니 헬기장이다. 막힘없는 조망이 펼쳐졌다. 남으로는 영정능선과 담터계곡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보개산~고대산으로 이어지는 고금능선이 장쾌하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 너머 백마고지와 북녘 땅이 다가왔다.

남쪽으로 100m 거리에 정상 비석이 있고 그 너머로 군부대가 보였다. 헬기장에서 남쪽 안부를 지나 정상에 올랐다. ‘금학산’이라는 글귀가 뚜렷하게 새겨진 비석이 서있는 정상의 조망은 다소 심심했다.

“이제 정상까지 왔으니 점심식사 해야죠.”

정상 근처 나무 그늘에 푸짐한 점심상이 펼쳐졌다. 직접 수확한 야채며 나물로 만든 반찬도 맛있지만 무엇보다 군침 돌 만큼 윤기있는 철원 쌀밥이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채워줬다.

“철원 오대쌀이 유명한 건 아시죠? 여기 사람들은 오대쌀에 옥수수며 조며 이것저것 넣어서 밥을 지어요. 반찬 없이 밥만 먹어도 맛있다니까요.”

▲ 학이 평야 끝에 살포시 내려앉은 형국의 금학산.

머리는 조각, 몸통은 선각인 마애불상
정상에서 동쪽으로 난 작은 샛길로 하산을 시작했다. 마애불상을 지나 이장족 마을로 하산하는 이 길은 오늘 우리가 오른 매바위능선보다 훨씬 험하고 거칠었다.

“이 등산로가 훨씬 가파르고 험해요.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셔야 해요.”

산길은 능선을 따라 이어졌다. 40분을 내려오니 우측으로 마애불상이 나타났다. 금학산 동쪽 산자락 큰 바위를 깎아 만든 마애불상은 머리와 몸통이 분리돼 있었다. 머리는 조각했고 몸통은 선각한 독특한 형태다. 마애불 주변에는 신라 때 있었다는 절터와 부도석 2개도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철원산악회

철원산악회는 올해로 10년 된 산악회로 산과 철원을 사랑하는 78명의 산꾼들이 모여있다. 류진훈 회장을 비롯해 오병우 남성 등반대장과 박종순 여성 등반대장이 산악회를 이끌고 있다.

철원산악회에 소속된 회원들 중 다수가 철원에서 근무하는 공직자들이다. 두 달에 한 번 정기적인 산행 모임을 가지고 있으며, 분기마다 한 번씩 전국 방방곡곡 산들을 찾아 떠난다. 철원산악회 cafe.daum. net/kimkiwon5316

절터 앞의 널찍한 바위가 전망대 역할을 한다. 학이 내려앉은 형국이라는 금학산. 매바위에서 북동쪽 동송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학의 왼쪽 발, 정상에서 동쪽의 이평1리 방면의 능선이 학의 오른발이다. 왼쪽 다리 끄트머리 마을이 긴다리라는 의미의 초장족(初長足), 오른쪽 끄트머리 마을 역시 같은 의미의 이장족(二長足)이라고 불리는 것도 금학산의 풍수지리가 반영된 것이다.

금학산의 정기를 받아서일까? 절터에서 바라본 철원평야는 풍요롭다. 저 평야는 한탄강을 어미의 젖줄 삼고 금학산을 든든한 아버지 삼아 늘 양식을 내어준다. 저 포근하고 풍요로운 평야를 거슬러 올라가면 북녘 땅. 또 다시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Elida 2011-09-20 10:34:26
Articles like these put the consumer in the driver seat-very ipmrot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