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마도 자전거도 사람도 모두… “달리고 싶다!”
철마도 자전거도 사람도 모두… “달리고 싶다!”
  • 글 사진·김성중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KOREA TRAVEL 철원 한탄강 | ① MTB 라이딩

▲ 반공활동을 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숱한 고문과 무자비한 학살을 당했던 노동당사. 민통선을 넘나들며 달리는 코스는 철원의 지역적인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고석정~노동당사~백마고지~월정리역~금강산 전기철도 교량…민통선 출입은 사전 허가 절차 필요

벼가 고개를 숙이면 황금빛으로 물드는 드넓은 대지와 깎아지른 절벽을 사이에 두고 힘차게 흐르는 한탄강, 그리고 분단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전쟁의 흔적 등 남북의 경계에 위치한 철원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분단의 아픔을 동시에 간직한 고장이다. MTB를 타고 민통선을 넘나들며 분단의 가슴 아픈 현실을 느껴보았다.

취재협조·철원MTB클럽 http://cafe.daum.net/cwmtb

삼한통일을 꿈꾸던 궁예가 도읍으로 삼았던 고장, 고석정에서 바라보는 한탄강의 절경과 지평선까지 보인다는 평야지대…. 경치 좋기로 소문난 철원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그렇다고 철원이 아름다운 경치만 간직하고 있는 고장은 아니다. 반공 활동을 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무자비한 고문과 학살을 당했던 노동당사, 휴전을 앞두고 피아간에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백마고지, 녹슨 철마만이 남아 있는 월정리역, 금강산으로 가는 길을 잇던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 그리고 북한이 무력 남침을 위해 뚫었던 제2땅굴 등 철원은 분단의 아픈 현실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에는 ‘끊어진 철길, 금강산 90킬로’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교량 위를 달리면서 하루 빨리 통일이 오기를 기원해본다.

민통선 통과는 주민들과 동행하면 수월
철원의 대표적인 라이딩 코스는 어디가 있을까. 평야지대 사이사이에 나 있는 농로를 따라 달리는 코스도 좋고, 조금 멀리 가보면 철원군과 화천군 경계에 위치한 복주산과 복계산의 임도도 인기가 많다. 게다가 조만간 한탄강변에 5km에 이르는 자전거 하이킹 코스도 조성된다고 하니 라이더들에겐 더 없는 희소식이다.

무엇보다 철원에 와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는 고석정, 도피안사 등 명소를 지나 노동당사, 백마고지 위령탑 등 민통선(민간인 출입통제구역) 경계에 위치한 전쟁 유적지를 거쳐 민통선 안에 있는 월정리역, 철의삼각전망대,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 얼음 창고 등을 둘러보는 라이딩이다.

▲ 도피안사 연못에 하얀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하지만 이 코스를 라이딩할 때는 사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절차가 있다. 바로 군부대의 허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허가 신청은 고석정유원지 안에 위치한 철의삼각전적관에서 하면 되고, 군부대의 허가가 나면 민통선 경계에 위치한 각각의 검문소를 통과할 수 있다. 일행들의 라이딩 코스에서 허가를 받고 지나가야 할 곳은 백마고지에 가기 전 대마리에 있는 검문소와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으로 가는 464번 지방도 양지리 사거리에 위치한 검문소, 이렇게 두 군데다.

▲ 도피안사에는 600년 묵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도피안사에서 식수를 보충하면 좋다.
허가를 받기 가장 쉬운 방법은 없을까. 이번 라이딩을 함께 하기로 한 철원MTB클럽(회장 강위수) 회원들이 한 가지 팁을 알려주었다.

“철원 지역의 특성상 민간인 통제구역이 많아요. 그래서 사전에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가장 쉽게 허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철원 주민들과 함께 동행하는 거예요. 신분이 확실하기 때문이죠. 라이딩도 마찬가지에요. 이곳 철원에서 민통선 안으로 라이딩을 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철원의 동호회 도움을 받는 것이 여러모로 편합니다. 그래서 철원을 찾는 자전거 동호회들은 라이딩을 하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예요.”

평야지대를 거쳐 민통선 안으로
라이딩 시작점은 철의삼각전적관이 있는 고석정유원지다. 이곳에는 한탄강의 가장 아름다운 절경을 볼 수 있다는 고석정을 비롯해 임꺽정이 은신처로 삼아 활동하기도 했다는 고석바위, 그리고 분수대, 정원 등 쉼터와 놀이공원이 잘 갖춰져 있다. 라이딩은 고석정유원지~도피안사~노동당사~백마고지 위령탑~월정리역~금강산 전기철도 교량~고석정으로 원점 회귀하는 코스로 총 거리 65km, 4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청정지역의 평야지대라서 그런지 하늘이 더 청명하고 높게 느껴졌다. 철원은 사방 어디를 둘러 봐도 드넓게 펼쳐진 논밭이 대부분이다. 그늘이 지면 벼가 잘 자라지 않는다 하여 나무들도 거의 없었다. 봄이나 가을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 때면 라이딩하기 좋은 곳이지만, 무더운 여름에는 찜통더위에 벼가 익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익을지도 모른다.

▲ 6·25전쟁 당시 중공군과 국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백마고지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들을 위해 세워진 백마고지 위령탑.

이제 곧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비록 아직은 벼가 고개를 세우고 있지만, 철원 라이딩의 진정한 재미는 바로 벼가 고개를 숙일 무렵 황금빛으로 물든 평야지대를 달리는 것일 게다.

463번 지방도를 따라 10km 정도 가다보니 국보와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도피안사가 있어 잠시 들러보았다. 도피안사의 입구에는 연꽃이 하얀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절 안에는 수령이 600년이나 된다는 큼지막한 느티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웠다. 바로 앞에는 보물 제233호인 삼층석탑이 있고, 대웅전 안에는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사나불좌상이 앉아 있었다.

도피안사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노동당사와 백마고지로 향했다. 노동당사는 광복 이후, 당시 철원이 북한 땅이었을 때 조선노동당에서 지은 건물이다. 당시 반공활동을 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숱한 고문과 무자비한 학살을 당하기도 했다. 같은 민족임에도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영혼이 이곳에 잠들었을까. 지금은 허름하게 골조만 남은 모습에서 그 허망함을 짐작할 뿐이다.

▲ 위령탑 전망대에서 백마고지가 먼발치로 보인다. 지금은 나무들이 자라 백마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6·25전쟁 당시에는 심한 포격으로 인해 민둥산처럼 보였다고 한다.
노동당사를 지나자 백마고지가 보이는 백마고지 위령탑이 나왔다. 6·25전쟁 당시 중공군과 국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백마고지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세워진 탑이다. 백마고지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갈 수 없고 위령탑 전망대에서 먼발치로 볼 수 있다.

원래 395고지라 불렸던 백마고지는 심한 포격으로 인해 위에서 보면 마치 백마와 같이 허옇게 보여 불린 이름이라고 한다. 허연 포탄의 잔해만이 남고 나무 한 점 없는 민둥산처럼 변해버렸으니 얼마나 치열했을까. 비록 국군의 승리로 끝나긴 했으나 중공군이 1만여 명, 국군도 4천여 명이 넘게 목숨을 잃었다.

아직도 철원에는 뼈아픈 전쟁의 상처가 많이 남아 있다. 그래도 이렇게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예전에는 민간인 출입이 훨씬 까다로워 승일교부터 시작해서 대부분의 전쟁 유적지가 통제됐었다.

백마고지에서 월정리역으로 가기 위해 대마리 검문소에서 통과 허가를 받았다. 검문소를 지나자 월정리로 향하는 3번 국도가 일직선으로 쭉 이어졌다. 이 도로를 지나가는 차량은 군부대와 주민들의 차량이 전부라 국내에서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의 라이딩 도로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물론 도로 옆 위험 지대에 ‘지뢰’라는 경고판만 없다면.

▲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석정유원지 내에 있는 철의삼각전적관에서 허가 신청을 해야 한다.
백마고지에서 월정리역까지는 8km.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가도 30분이면 충분했다. 월정리역에 도착하자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입간판과 앙상한 뼈대만 남은 기차의 잔해가 분단의 상황을 실감케 했다. 포탄을 맞아 멈추고 찌그러진 채 더 이상 가지 못하고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쓸쓸히 누워있는 것이다.

전쟁 전 월정리역은 철원역과 가곡역을 연결하는 간이역이었다. 하지만 월정리역은 길게 누워 있는 철마와 함께 그렇게 시계가 멎어 있었다. ‘서울 104km, 평강 19km’가 새겨진 글귀는 아무리 가까워도 통일 전에는 별 의미가 없는 거리다. 글귀에서 보는 남과 북의 거리에서 가슴 아픈 분단의 상처를 되새길 뿐,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의 현실은 북쪽을 향해 경계를 서고 있는 초병들의 모습에서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 민통선 안에는 지나가는 차량이 거의 없어 한적한 라이딩을 할 수 있다.

시간이 멈춘 다리에서 분단의 아픔을 되새긴다
월정리역에서 또 하나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으로 페달을 밟았다.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으로 가기 위해서는 양지리 검문소에서 다시 한 번 허가 절차를 밟고 464번 지방도를 따라 유곡리 방향으로 달려야한다. 양지리 검문소에서 조금 가다보면 왼쪽으로 철원 8경 중의 하나인 토교저수지가 나오는데 지난 철원 한탄강레포츠축제 때 잠깐 동안 민간인의 출입을 허가 했던 곳이다.

▲ 월정리역을 나오며 하루 빨리 통일이 오기를 기원해본다.
“유곡리, 양지리, 대마리 등 남방한계선 부근의 마을은 1959년 태풍 사라로 인해 경상도 지역의 이재민들이 정착하게 되면서 생겨난 마을이에요. 통일촌이라고 부르는 곳이 바로 이 마을들입니다. 요즘엔 원래 이 지역을 소유하고 있던 땅 주인과 이주민 사이에 소유권에 대한 분쟁이 자주 일어나고 있죠. 전쟁 후에는 별로 필요 없던 땅이라 원래 땅 주인들도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이주민들이 땅을 기름지게 개간한 후 전국에서 제일 좋은 쌀이 생산되고  땅 값도 한 평당 몇 천 원씩 올랐으니 그럴 만도 하죠.”

남방한계선을 따라 가다보니 한탄강 상류를 가로지르는 정연교가 나오고 맞은편에 낡은 교량이 보였다.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이었다. 1926년에 세워진 후 철원역을 기점으로 종착역인 내금강을 잇는 교량으로 일제강점기 때는 지하자원 수탈에, 6·25전쟁 때는 군수물자 수송에 이용되었다. 하지만 현재에는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모습에서 우리의 분단 현실을 보는 것 같았다.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 부근에는 전선휴게소와 전선교회가 있지만 관광하는 사람들이 드물어서 인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예전에는 휴게소에서 내놓는 자연산 민물 매운탕이 맛이 아주 좋았다고 하는데 먹어보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웠다.

다시 양지리 검문소에 들른 후 직탕폭포 방향으로 달렸다. 직탕폭포가 내려다보이는 태봉대교를 지나자 신철원 한탄강 하류에서부터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 예정지가 보였다. 지금 한창 공사중이니 이젠 한탄강의 물줄기를 따라 자전거 하이킹을 즐길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청정 지역이라는 장점을 살려 전국의 관광객들을 모으기 위해 한창 개발 중인 것을 보면 철원은 민통선을 끼고 있는 지역적인 약점도 많이 극복한 듯하다. 철원이 6·25전쟁 이전에 교통의 중심지였던 것처럼 이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관광의 중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끊어진 철길에 묶여 달리지 못하는 철마도, 북녘 땅을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자전거도 모두 달리고 싶어 한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 남방한계선을 따라 라이딩하며 분단의 현실을 되새긴다. 북녁땅의 오성산이 너무나 가깝게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