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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정글숲을 야생동물처럼 달렸다
울창한 정글숲을 야생동물처럼 달렸다
  • 글 사진·안병식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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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식의 극한 마라톤대회 참가기 ⑤ 베트남


사막 마라톤과는 또 다른 매력의 235km 오지 레이스

글 사진·안병식 오지 마라토너(소속·노스페이스) http://blog.naver.com/tolerance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의 인도차이나 반도 동부에 있는 나라이며, 정식명칭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Socialist Republic of Vietnam)이다. 북쪽은 중국, 서쪽은 라오스 및 캄보디아와 접하고, 동쪽은 바다를 면하고 있다.

1945년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외국세력들이 내정 관섭을 하면서 베트남은 1954년까지 정치적 혼란기를 맞았다. 1954년에는 북베트남의 공산당 정권이 프랑스 식민세력을 패퇴시킨 후, 베트남은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갈라졌다. 남과 북으로의 분단은 20여 년에 걸친 긴 전쟁을 가져오기도 했다.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1992년에, 미국과 1995년에 국교를 정상화했다. 행정구역은 하노이, 호치민, 다낭, 하이퐁, 껀터의 5개 직할시(centrally administered city)와 59개의 성(省)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인 하노이는 아직 개발이 덜 돼서 다른 나라의 수도처럼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리마다 보이는 수많은 오토바이와 자전거, 그리고 사람들의 북적거림만으로도 충분히 활력이 넘치고 있었으며, 과거 그들의 전쟁의 쓰라린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하노이의 시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새하얀 ‘아오자이’를 입은 여인네들과 갈대 잎으로 만든 고깔모자 ‘농라’를 눌러쓴 사람들이다. 베트남인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혁명가로 남아있는 호치민 주석의 묘에는 수백 미터 줄을 서야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을 정도로 하노이에서 꼭 둘러볼 만한 곳 중 하나다. 무엇보다 시장을 거닐다 거리에 앉아 맛보는 베트남 쌀국수는 정말 별미다.

▲ 이번 대회가 열린 사파 지역은 고산족 등 소수민족들이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짙은 안개와 빗속에서 진행, 촬영에도 어려움 겪어
대회가 열리는 장소는 베트남 북서 지방인 사파(Sa Pa)지역이다. 사파는 수도인 하노이에서 300km 이상 떨어져 있지만, 북베트남에서 하롱베이와 함께 유명한 관광지 중 한 곳이며 대부분 산악과 밀림지형이다. 신비로운 자연환경과 고산족 등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 독특한 문화는 많은 외국 여행자들을 끌어들이고 있고, 특히 산악 트레킹 코스로도 유명해 많은 사람들이 사파를 찾고 있다.

대회 장소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사파까지 야간열차로 8시간을 넘게 달리고, 다시 몇 시간의 버스를 타고 짙은 안개와 꼬불꼬불 산악지대를 지나서야 대회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록 날씨는 썩 좋지 않았지만 마을사람들이 정성스레 마련해 준 민속공연이 대회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이번 대회는 지난 사막 마라톤대회들과는 달리 우승에 대한 집착이 덜했기 때문인지 대회참가자들도 마을주민들과 한바탕 어울렸다. 어느 참가자는 자기 나라 고유의 민속춤을 추며 흥겨움을 북돋우기도 했다. 모두 환한 얼굴에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지구촌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한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 대회 참가자들과 마을 주민들이 한바탕 어울려 춤을 추고 있다.

이번 대회의 진행방식은 지난 사하라사막 마라톤대회 때와 같이 일주일간의 음식과 개인장비를 배낭에 메고 달리는 서바이벌 방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다른 때와는 달리 첫 날부터 105km를 달리는 롱데이 코스가 진행되었고, 개인적으로는 10kg에 가까운 배낭과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 달리게 되어 조금의 부담감은 가지고 있었다.

포장된 마을길을 달리다 어느새 강을 건너고 산악지대로 향하고 있었다. 큰 비는 아니었지만 짙은 안개와 함께 내린 가랑비는 어느새 온 몸을 적셔버렸고, 카메라는 비닐로 포장을 했지만 사진을 촬영하는 것도 포기해야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산을 넘고 난 후 다시 마을로 들어서면서 도로를 달릴 수 있었지만, 이후로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짙은 안개와 비 때문에 레이스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10시간을 넘게 달려 첫 날의 롱데이 코스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롱데이 코스는 1박2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되어 다음날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날씨가 흐리긴 했지만 간간히 햇빛도 볼 수 있었다.

▲ 레이스 도중 마을에서 키우는 흑돼지를 흥미롭게 보는 참가자.

밀림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선수도 많아
오지마라톤은 산이나 강, 모래언덕, 계곡 등 자동차가 다가갈 수 없는 지역들이 많아 전문 사진작가나 비디오 카메라맨들도 촬영하기 쉽지 않다. 나는 이번 대회에 참가하기 전 이미 대회 담당자와 레이스를 하는 동안 사진촬영을 목적으로 대회에 참가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마음껏 레이스를 즐기며 사진촬영을 하는 게 이번 대회의 목표였지만 뜻하지 않은 날씨 때문에 첫날은 사진촬영을 거의 할 수 없었다.

비와 안개 속을 달리는 레이스는 두 번째 세 번째 코스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산악과 밀림지형에서 매일 진흙탕 속을 헤매는 것이 처음에는 짜증스러움으로 다가왔지만 레이스가 진행되는 동안 그 짜증스러움은 그동안 사막에서 달렸던 뜨거운 태양과 모래 위의 건조함과 는 전혀 다른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 계단식 논 위에 위치한 대회 본부.

하루의 꿀맛 같은 휴식이 끝나고 셋째 날 두 번째 레이스가 진행됐다. 이날은 50km를 달리는 코스였지만 험준한 산악지형과 비 때문에 코스가 진흙길로 변해 버려 결코 쉽지 않은 레이스가 될 것 같았다. 첫날 비와 안개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사진촬영을 거의 할 수 없었지만 이날부터는 카메라에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비닐로 봉하고 사진촬영을 시작했다. 순위에 얽매이지 않고 달릴 수 있어서 여유를 가지면서 레이스를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선두그룹에서는 비와 안개 그리고 숲이 우거진 산악지대에서 앞만 보며 달리다 보니 길을 잃고 몇 시간을 헤매는 선수들도 있었고 진흙탕 속에서 구르는 선수들도 쉽게 구경할 수 있었다. 오지 레이스에서만 경험 할 수 있는 이 풍경들을 바라보다 혼자 웃음을 짓기도 했다. 레이스 중간에 가끔씩 고산족들이 사는 마을을 지날 때는 신기한 듯 낯선 이방인들을 바라보며 때 묻지 않은 웃음을 보여주는 주민들도 있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날은 소수민족들이 사는 현지인들의 집에서 숙박을 하게 되었는데 작은 키와 독특한 의상을 갖춘 그들은 낮선 이방인들에게 이질감 없이 반갑게 맞이하며 소박한 그들의 삶을 숨김없이 보여주었다. 베트남 북부에는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데 산위에 마을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찾은 곳은 계곡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나무와 대나무로 지어진 집들이 영화 속에서 보던 밀림 풍경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대부분 산악과 밀림지대로 둘러싸인 지형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아직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곳이 많아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 많았다.

▲ 한적한 시골의 마을에서 본 두 어린 아이의 웃는 모습이 해맑다.

천국보다 행복한 순간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었다
레이스 여섯 번째 날은 주최 측에서 그동안 고생한 선수들을 위해 자그마한 파티를 열어주었다. 사진을 찍다 거의 마지막으로 레이스를 끝마치고 숙소에 도착해보니 모두들 마을에서 준비해준 음식과 전통음악에 맞춰 한바탕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선수들에게 이런 추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기쁨과 행복이 있기에 많은 마라토너들이 오지레이스를 찾고 있는 것이다. 힘든 레이스를 경험한 뒤에 오는 파티이기에 오늘 하루만큼은 참가자들에게 다른 어떤 천국보다도 행복한 순간이다. 축제의 밤은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지고 나서도 모닥불을 피워놓고 계속되었다.

레이스 마지막 날은 그동안 내리던 안개비도 그치고 오랜만에 따사로운 햇살과 파란 하늘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고 진흙탕 길을 넘어 다시 산을 오르고, 계단식 논(라이스 테라스)을 지나 다시 마을을 지나고…. 이렇게 반복되는 코스가 계속되는 결코 쉽지 않은 레이스다.

▲ 비와 안개 그리고 숲이 우거진 산악지대에서 앞만 보며 달리다 보니 길을 잃고 몇 시간을 헤매는 선수들도 있었고 진흙탕 속에서 구르는 선수들도 쉽게 구경할 수 있었다.

진행 방식은 선두그룹과 중위그룹, 그리고 하위그룹으로 나누어 한 시간 간격으로 출발했는데, 사진 촬영 때문에 맨 먼저 출발했지만 피니시 라인은 맨 마지막 선수와 함께 들어왔다. 오지 레이스에서는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선수가 더 많은 환영을 받기 때문에 덕분에 덩달아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의 인사도 받았다. 맨 마지막으로 들어온 선수는 키가 2m에 가까웠는데, 고통스러워서인지 기쁨에 겨워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

▲ 계곡을 건너고 있는 필자. 이번 대회는 극한의 고통보다도 내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그동안의 레이스는 대부분 순위에 집착하면서 달리다 보니 체력소모도 많고 힘든 레이스였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사진촬영을 하며 여유를 가지고 달릴 수 있어서 육체적인 고통도 덜했고,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대회 자체를 즐긴 레이스가 되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찾아가는 베트남 여행이었지만 낯설지 않고 친근함으로 다가왔던 건 그만큼 베트남의 문화와 생활방식, 그리고 음식이나 기후 등 많은 부분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게 많아서일 게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내 자신을 돌이켜보고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내 자신을 찾아가는 것은 아마도 ‘일상의 탈출’이라는 여행의 즐거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른다. 여행은 먼 곳을 찾아 떠나는 것만이 아니라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이다. 자신의 현실을 벗어나 지금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멋진 모험이 아니겠는가.
▶ 대회 협찬 : <노스페이스>,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제주특별자치도 스포츠 산업과

▲ 산과 정글, 그리고 계단식 논을 달리는 코스가 반복됐다.

안병식
| 1973년 생. <노스페이스> 소속이다. 중국의 고비사막, 이집트의 사하라사막, 칠레의 아타카마사막, 남극 등 세계 4대 극한 마라톤대회를 완주한 ‘그랜드슬래머’로 지난 4월에는 북극점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했다. 세계 곳곳의 극한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전문 오지 마라토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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