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에 떠난 생애 첫 여행지, 춘천. 덜컹거리는 경춘선 기차가 어쩐지 내 심장 박동 소리 같아서 여행의 설렘이 배가 됐다. 옛 경춘선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지만 구봉산 자락의 카페들은 여전히 사람들로 바글거렸고, 따사로운 봄볕을 받은 의암호는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커피향 배어든 구봉산
춘천시 동면에는 봉우리 9개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구봉산이 있다. 예부터 전망이 좋기로 유명해 등산 코스로 사랑받아왔다. 그러다 1991년 세계잼버리대회를 앞두고 구봉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외곽순환도로가 생겼고, 도로를 따라 춘천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카페들이 하나 둘 둥지를 틀었다. 새하얀 종탑이 시선을 끄는 ‘산토니리’는 2005년 문을 연 구봉산 최초의 카페다. 잔디 정원이 있는 건물 뒤뜰이 하이라이트. 에게 해를 품고 있는 산토리니 이아마을의 교회당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국적인 풍경에 말문이 턱 막힌다. 파란 돔 지붕의 종탑 앞에서 연인들이 손을 잡고 소원을 빌거나 점프하면서 인증숏을 찍기도 한다. 종탑 뒤로 춘천의 랜드마크인 소양제2교와 봉의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름만 그럴싸한 게 아니다. ‘산토리니’에 걸맞게 지중해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이탤리언 푸드를 선보인다. 마르게리타 나폴레타나, 베르데, 디아볼라, 우스텔 등 이탈리아산 밀가루로 만든 유럽 정통 피자를 맛볼 수 있다. 나폴리 화덕 스타일의 오븐에서 450도로 90초간 구워내 도우가 얇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그리스 여행이 그립다면 구봉산의 정기가 머무는 펜션에서 하룻밤을 보내도 좋다. 종탑 너머로 펼쳐지는 춘천의 야경을 밤늦도록 감상하면서.
산토리니에서 나와 구봉산 전망대 방향으로 조금 더 오르면 투썸플레이스에 발이 닿는다. 평범한 외관의 프랜차이즈 카페지만 구봉산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앉은 자리에서 춘천 도심 전망을 넉넉히 감상할 수 있다. 공중에 붕 떠 있는 유리 전망대 ‘스카이워크’는 SNS에 인증숏 명소로 유명하다. 직사각형 유리 큐브 안에 서면, 두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진다. 해 저물녘 이곳을 찾으면, 창문에 주홍빛 노을이 반사돼 아름다운 선셋 풍경을 담을 수 있다.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에 서서 넋을 놓고 전망을 감상했다.
구봉산 카페 거리 초입에 있는 ‘제이콥스스테이션’도 놓치기 아쉬울 정도로 근사한 뷰를 품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창으로 쏟아지는 자연광, 시원하게 툭 터진 오픈 바, 벽면 가득 책장을 두른 너른 소파 좌석이 시선을 끈다. ‘야곱의 쉼터’ 라는 성경적인 의미를 지닌 제이콥스스테이션은 공정무역 커피만을 고집, 에티오피아의 신선한 생두를 제공한다. 신의 커피라 불리는 ‘파나마 게이샤, ’자연친화적인 방식으로 카페인을 제거한 ‘에티오피아 디카페인, ’묵직한 보디감이 매력적인 ‘시그니처 블렌드’ 등 취향에 따라 원두를 선택할 수 있다. 직사각형 창문이 뚫린 소파 좌석은 이곳의 명당. 창문 너머로 펼쳐진 노을 풍경은 그 자체로 그림이다.
산토리니
강원도 춘천시 동면 순환대로 1154-97
구봉산휴게소 033-242-3010
투썸플레이스
강원도 춘천시 동면 순환대로 1154-105
033-251-8880
카페 제이콥스스테이션
강원도 춘천시 동면 순환대로 1154-49
033-257-5625
의암호 물길 따라 유유자적
춘천에서 시간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호반의 도시’라는 말을 실감했다. 북한강과 소양강의 합수 지점인 춘천은 댐 건설로 형성된 의암호, 춘천호, 소양호 등의 호수가 춘천 시내를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그중 의암호변에 자리한 ‘소양강 스카이워크’는 춘천 시내와 가까워 접근하기 좋다. 전체 174m 길이 중 무려 156m가 투명 유리 구간으로 되어 있어, 국내 최장 길이를 자랑한다. 10m 높이에서 강물을 내려다보면 마치 물 위를 걷는 듯한 스릴과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안전과 바닥 보호를 위해 하이힐은 슬리퍼로 갈아 신고 신발 위에 덧신을 착용해야 한다. 교량과 난간 하부에 LED 조명이 설치돼, 밤이면 환상적인 야간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인근에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쏘가리 조형물, 춘천을 상징하는 거대한 소양강 처녀상, 소양제2교 등이 나란히 자리해 볼거리를 더한다. 소양강 초녀상 앞에 서면 소양강 스카이워크와 쏘가리 조형물이 한눈에 잡히고, 시원하게 강바람이 불어와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멀찍이서 의암호를 감상했다면 이제 호수에 카누를 띄우고 온몸으로 물길을 느껴볼 차례다. 의암호 한가운데 둥둥 떠 있다 보면, 잔잔한 바람을 타고 새소리와 물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카누라고 하면 지레 겁부터 먹기 마련. 하지만 탁월한 운동신경이 없어도 10분 정도 탑승 교육을 받으면 곧바로 패들을 잡을 수 있다. 온몸에 힘을 빼고 천천히 패들링을 하면 물길을 가르며 미끄러지듯 쑥 나아간다. 십여 분쯤 흘렀을까. 어느새 고개를 들어 주변 풍경을 감상하는 여유도 생겼다. 적삼목으로 만든 나무 카누는 플라스틱 카누보다 훨씬 견고하고 중심 잡기도 수월하다. 국내 카누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춘천 물레길은 ‘2015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 중도유원지과 자연생태숲길을 지나 회항하는 ‘자연생태공원길’을 비롯해 자연생태숲길과 민물고기 양식장을 잇는 ‘물풀숲길’과 삼천동 하늘 자전거길을 지나는 ‘철새둥지길’, 중급자 코스의 ‘중도종주길’, 숙련된 전문가가 즐기기 좋은 ‘스카이워크길’로 이루어져 있다. 수풀이 우거진 물풀숲길은 수면이 잔잔해 초보자에게 적당하다. 물풀숲 곁을 스치면 싱그러운 풀 향기가 난다. 연인이라면 카누 위에서 와인 한잔 기울이며 로맨틱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저녁엔 낭만 가득한 노을 카누잉도 즐길 수 있다. 패들링에 자신감이 붙고 나니 물이 깊고 넓은 바다 카누에 도전하고 싶어진다.
소양강 스카이워크
강원도 춘천시 영서로2663 033-240-1695 10:00~18:00 2천원(결제금액은 춘천사랑상품권으로 전액 돌려줌)
춘천중도물레길
강원도 춘천시 스포츠타운길223번길 95 033-243-7177 09:00~19:00 2인 기준 3만원, 성인 1인 추가 시 1만원, 어린이 1인 추가 시 5천원
ccmullegil.co.kr
나만 알고 싶은 공지천
예나 지금이나 공지천에는 오리 배가 한가로이 떠 있다. 의암호의 상류인 공지천은 춘천 시내를 가로질러 물길을 따라 사뿐사뿐 걷기 좋다. 호수 주변에 산책로와 조각 공원, 야외공연장, 분수대, 에티오피아참전기념비 등이 있어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어둑해지면 LED 불빛이 공지천 주변을 은은하게 물들여 더욱 로맨틱해진다. 달라진 풍경이라면, 공지천을 따라 KT&G 상상마당까지 이어지는 라이딩 코스가 생긴 것. 부드러운 평지와 나무 데크로 이뤄져 있어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다. 가을이 시작되는 10월이면 공지천변을 따라 단풍이 곱게 물들어 사계절 전혀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공지천변을 걷다 KT&G 상상마당 안에 있는 카페 ‘댄싱 카페인’에서 잠시 쉬어도 좋다. 이름만 들으면 ‘춤추는 클럽 카페’가 떠오르지만, 이보다 더 서정적일 수 없다. 통유리창 너머로 호수가 시원스레 펼쳐지는데, 그저 바라만 봐도 온갖 시름이 다 씻기는 기분이다. 에티오피아 들판에서 커피콩을 먹은 염소가 기분이 좋아져 춤을 췄다는 내용에서 유래된 ‘댄싱 카페인’은 카페인이 주는 기분 좋은 에너지를 커피 한 잔에 꾹꾹 눌러 담았다. 슈트를 차려입은 유쾌한 염소 캐릭터가 카페 곳곳에 새겨져 있고, 다양한 북유럽풍 가구들로 채워져 있다. 폭신한 의자에 엉덩이를 깊숙이 밀어 넣고 앉으면 일어나기 싫을 만큼 몸이 편안해진다. 창가로 날아드는 나비와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참새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도시와 달리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 나무 도마 위에 한 입 크기의 빵이 나오는 ‘쁘티 뺑Petitpain’은 산책 중에 가볍게 먹기 좋다. 커피 원두는 단맛과 신맛이 조화를 이루는 코지Cozy와 다크하고 부드러운 보디감의 어반Urban 중에 고를 수 있다.
KT&G 상상마당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연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유명 수제 버거집이 있다. 어머니가 운영하던 공지천 카페를 아들이 이어받아 경쾌하고 힙한 분위기의 버거집으로 변신시킨 것. 구희석 셰프는 세계적인 코스메틱 브랜드의 마케터 출신답게 여심을 녹일 기발한 햄버거를 선보인다. 스페인식 수제 버거 ‘라모스’를 비롯해 부드러운 크림치즈와 블루베리 스테이크 소스가 입맛을 돋우는 이탈리아식 버거 ‘줄리엣’, 체다와 카망베르, 모차렐라 치즈가 어우러진 ‘뉴욕 치즈의 여신’, 부드러운 아보카도와 파인애플이 토핑 된 ‘아보카도 삼바’, 영국 펍 스타일 버거 ‘미스터 빈’ 등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다양한 버거가 있다. 일단 한 입 베어 물면 줄을 서는 이유를 알게 된다. 치즈가 용암처럼 흘러내린 환상적인 비주얼의 ‘뉴욕 치즈의 여신’은 씹는 순간 패티의 육즙이 쏟아져 나와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태원 수제 버거 전문점 ‘마더스 오피스’를 거쳐 일본 3대 수제 버거집 ‘더 코너 햄버거 & 살롱’에서 연수를 마친 구희석 셰프는 주문과 동시에 직접 구운 따끈한 버거 번과 소고기 패티로 정성껏 버거를 만든다. 필스너, 다크 에일, 홈즈 에일, 피치 에일 등 5종류의 수입 수제 생맥주를 함께 곁들이면 버거 하나쯤은 ‘순삭’이다. 맥주 특유의 톡 쏘는 청량감이 버거의 기름진 맛을 콱 잡아준다. 당분간 ‘햄맥(햄버거+맥주)’의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것만 같다.
댄싱 카페인
강원도 춘천시 스포츠타운길399번길 25
033-243-4727
라모스 버거
강원도 춘천시 옛경춘로835
033-252-0006
11:00~21:00(토요일 11:00~22:00)
라모스 버거 8900원, 뉴욕 치즈의 여신 1만9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