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샤팡마에는 바람이 살고 있어요”
“시샤팡마에는 바람이 살고 있어요”
  • 글 사진·안광태 여행작가
  • 승인 2011.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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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세상 사람 ⑭ 티베트 새신랑 니마

▲ 시샤팡마가 잘 보이는 마을에 집을 짓는 니마와 츠라 부부.

히말라야가 막 피워낸 뽀얀 바람꽃이 망막한 황무지 티베트 고원 위로 세차게 곤두박질쳤다. “사람들은 시샤팡마에 아무것도 살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거기에는 바람이 살고 있어요.” 니마가 던진 마냥 천진한 웃음은 티베트의 광풍을 잠재울 것 같이 평화로웠다. “저는 지금 집을 짓고 있어요. 새색시 츠나와 함께 이 허허벌판에서 시샤팡마의 저 매운 바람살을 안고 갈 집이요.” 우락부락한 티베트 여느 남자들과는 달리 다소 가녀려 보이는 열아홉 니마는 열일곱, 츠라와 갓 결혼한 새신랑이었다.

시샤팡마(8027m)를 찾아가는 길, 티베트의 수도 라사를 떠난 중니공로는 서남쪽으로 630㎞를 달려 라룽라(5124m) 고개에 도착했다. 고개 북쪽 언저리에서 티베트 남로의 들머리 사가로 향하는 자갈밭 길 하나가 갈라졌다. 니마를 만난 곳은 그곳에서였다.

“걸어서 실링에 가신다고요? 저의 집도 실링 못 미쳐 있는 페츠라는 마을에 있어요. 팅그리에서 장을 보고 오는 길인데, 일주일에 두 번 밖에 없는 버스를 놓쳤어요.” 그는 간단한 연장 몇 가지를 사러 어처구니없게도 왕복 200㎞가 넘는 거리로 장을 보고 오는 길이었다. 어쨌든지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티베트 시골구석에서 중국어를 할 줄 아는 길동무를 만난 것은 부처님의 가피력을 받은 만큼이나 마음 든든한 일이었다.

메마른 고원 위로 앙분풀이하듯 모질게 불어대는 바람 속에서 길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곳을 1시간가량 걷자 룽타(기도 깃발)가 빼곡히 꽂혀 있다. 니마는 티베트 사람들이 오며가며 그러하듯이 “쏘우, 쏘우” 하며 종이 룽타를 뿌리고 간단한 예를 올렸다. “바람 좀 재워 달라고 빌었습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일이었지만 어쨌든지 그의 기도가 효험이 있었는지 바람이 조금씩 잦아들면서 히말라야의 설산들이 힐끗힐끗 모습을 드러냈다.

라룽라 남쪽으로 이어지는 샛길을 지나 다시금 세 시간 여를 기진맥진 나아가자 사람이라고는 살 것 같지 않은 휑뎅그렁한 벌판에 니마가 사는 마을이 떡하니 나타났다. 그곳은 시샤팡마를 코앞에 두고 앉은 나지막한 돌산 기슭에 샘 하나를 의지 삼아 삼십여 채의 집들이 웅기웅기 모여 있는 전형적인 티베트 시골 마을이었다.

니마의 가족은 새색시 츠나와 홀아버지 루포 그렇게 셋이었다. 땅거미가 내릴 무렵 어둑한 창문 밖으로 시샤팡마가 그토록 앙살을 부리며 감추고 있던 황홀한 속살을 조금씩 드러냈다.

“저 산이 시샤팡마입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시샤팡마를 바라보며 첫 울음을 터뜨리고, 시샤팡마를 바라보며 한평생을 살다가, 시샤팡마를 바라보며 마지막 눈을 감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올라가 본 사람은 없습니다. 실제로 올라가기도 어렵겠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산은 밟고 올라서는 대상이 아니라 바라보고 우러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 니마의 고향 사람들은 시샤팡마를 바라보며 한평생을 살아간다.

다음날, 뵤차(티베트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야크 버터 차)와 참빠(티베트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볶은 보릿가루, 뵤차를 넣고 반죽해서 먹음)로 든든하게 아침을 챙긴 다음, 니마와는 그가 집을 짓는다는 페이쿠쵸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실링을 향하여 출발했다.

왼쪽으로는 시샤팡마를 올려다보고, 오른편으로는 두루미떼 날아오르는 이름 모를 터키옥빛 호수를 내려다보며 한 시간쯤 텅 빈 벌판을 걷다 보니 실링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곰빠(불교 사원)와 폐허의 쫑(요새)을 가진 실링은 페츠 마을만한 크기였지만 주변으로 꽤나 넓은 초지가 펼쳐져 있는 넉넉한 마을이었다.

막상 실링에 도착하니 시샤팡마는 뒷산 너머로 모습을 감추어 버리고, 저승사자라도 물어갈 것 같은 티베트 개들만이 얄궂게 짖어대며 이방인을 맞이했다.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이방인에게 자신의 잠자리를 선뜻 내준 꼬부랑 노파 덕분에 어렵지 않게 하룻밤을 의탁할 수 있었다.

다음날 일찌감치 숨어버린 시샤팡마를 찾아 나섰다. 양떼와 야크떼를 몰고 산으로 향하는 목동들을 따라 남쪽 산록과 서쪽 산록 사이로 기다랗게 펼쳐진 풀밭 계곡을 두 시간쯤 거슬러 올라갔다. 하지만 시샤팡마는 여전히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들쥐같이 생긴 파이카(pika, 새앙 토끼)들과 긴 뒷다리의 산토끼들, 그리고 뒷다리로 쫑긋 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술래 마못(marmot)들과 한참 숨바꼭질 놀이를 벌이다가 다시금 2시간가량 5000m가 넘는 해발 고도를 소걸음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시샤팡마와 랑탕 히말의 설산들이 거짓말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동쪽으로는 티베트 사람들이 신성시 여기는 라브치(7367m)에서부터 멀리 초오유(8201m), 에베레스트까지 뚜렷뚜렷 보이고, 서쪽으로는 가네쉬 히말의 영봉들이 가물거리도록 이어졌다. 시샤팡마 대본영(大本營)이라 쓰여 있는 돌비석 하나만이, 발아래 놓인 야북캉갈라 빙하 베이스캠프를 쓸쓸히 지키고 있었다.

▲ 황량한 땅에서 청자색으로 빛나는 페이쿠쵸 호수.

다음날, 부지런히 페이쿠쵸로 걸음을 옮겼다. 페이쿠쵸는 티베트에서 열 한 번째로 큰 호수다. 배우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티베트에서의 7년’이란 영화가 있다. 그 영화의 원작소설 작가이자 실제 주인공이 오스트리아 출신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이다. 그는 독일의 낭가파르바트 원정팀에 합류했다가 실패하고 돌아가는 길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 영국군의 포로가 된다. 하지만 끈질긴 시도 끝에 탈출에 성공하고, 2000㎞가 넘는 길을 이동해 티베트의 수도 라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그는 제14대 달라이 라마를 만나 그의 스승이자 친구가 된다. 하인리히 하러가 시샤팡마를 바라다보며 내려온 바로 그 길을 고스란히 거슬러 5시간가량 걷자 페이쿠쵸가 나타났다. 랑탕 히말 설산의 순백과 페이쿠쵸의 청자색 물빛이 만나는 그곳에 니마는 집을 짓고 있었다.

“티베트 사람들은 매일 버리는 연습을 합니다. 아니, 헤어지는 연습을 한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아직 저는 그 헤어짐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야크 한 마리, 염소 한 마리와 헤어지는 것도 마음이 아프거든요. 아직은 어려서 그럴까요?”

또다시 히말라야 가득히 뽀얗게 바람꽃이 피고 있었다. “헤어짐이 무엇인지도 모를 만큼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장가를 들었다고 분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모시고 살아야 하는데 여러 가지로 쉽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만남과 헤어짐은 한줄기 바람이라고 하던데….” 에푸수수한 니마의 머리카락 사이로 착잡한 바람 하나가 못 들은 척 슬그머니 지나갔다. 옴마니 반메훔!

안광태 | 40대 초반의 여행작가 안광태 씨는 돌아올 기약 없이 수년째 세상을 떠돌고 있습니다. 그는 바람처럼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며 유명 관광지보다는 그곳에 사는 사람을 만납니다. 본지는 안광태 씨가 보내준 각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 생활양식이 녹아있는 흥미로운 인간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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