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까꼬막(산비탈)에 촘촘히 자리한 집들, 황금빛 조명으로 불을 밝힌 운치 있는 골목길. 부산 초량동 까꼬막은 굽이굽이 골목이 꺾이는 곳마다 한국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근대의 기억, 켜켜이 쌓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40만 명이던 부산 인구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란민까지 합해 100만 명이 넘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했던 피란민들은 물도 전기도 없는 산으로 내몰렸고 비탈진 언덕에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많은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부두 노동자로 남아 생계를 이어갔다.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초량동 이바구길은 불과 1.5km의 짧은 골목이지만, 당시의 이바구(‘이야기’를 의미하는 경상도 사투리)를 듣다 보면 걸음이 한없이 느려진다.
이바구길 초입에는 1922년에 개원한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 백제병원 건물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당시 단층 건물만 즐비하던 부산에서 5층 높이의 벽돌 건물은 단연 눈에 띄었다. 게다가 서양 의료진이 포진해 ‘부산 3대 병원’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행려병 환자 시신을 인체 표본으로 만든 것이 알려지면서 손님이 뚝 끊기게 된 것. 잇단 괴소문과 경영 악화로 결국 병원은 폐업했고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중국인에게 건물을 팔아넘겼다. 이후 중식당, 일본인 장교 숙소, 치안 사무소, 예식장 등으로 사용되다 인더스트리얼 콘셉트의 카페 ‘브라운핸즈백제’로 재탄생했다. 두 동의 건물이 하나로 합쳐진 형태가 독특한데, 1972년 화재로 5층이 소실돼 현재 4층 규모가 됐다. 안으로 들어서면 시간을 거슬러 10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시선 닿는 곳 어디든 레트로 감성으로 채워져 있다. 구멍 난 타일 바닥에 심어놓은 나무, 서양 건축물을 떠올리게 하는 아치형 정문, 칠이 벗겨진 목조 계단 등 손때 묻은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등록문화재 제647호로 지정된 이곳은 옛 벽돌 골조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테이블 이동도 금지하고 있다. 실내는 다소 어둡지만, 사방에 나 있는 창을 통해 자연광이 쏟아져 들어온다. 엉덩이를 붙일 새도 없이 커피 한 모금 마신 후 잠시 잔을 내려놓고 곳곳을 둘러봤다. 파란만장한 100년의 이야기가 카페 곳곳에 스며 들어있다.
브라운핸즈백제
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209번길 16
051-464-0332
꼬부랑 골목 끝에서 만난 계단
카페를 나와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1892년 설립된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인 초량교회와 1937년 개교한 초량초등학교에 발이 닿는다. 교회와 학교 사잇길엔 초량동의 옛 역사를 담은 담장 갤러리가 조성되어 있다. 학교 담벼락에 붙어 있는 흑백사진들을 두 눈에 담고 다시 길을 나섰다. 사진 속 마을 풍경들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랑논처럼 산 중턱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빨래터로 이용되던 우물 등은 색이 바랜 채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두 사람이 지나면 어깨가 스칠 만큼 좁은 샛골목이 산복(山腹) 도로까지 꼬불꼬불 이어져 있다.
담장 너머로 자연스레 인사를 건네게 되는 정겨운 동네 분위기에 취해 걷다 보면, 어느새 깎아지른 듯한 168계단이 나온다. 168개 층계로 이루어진 이 계단은 부산항에서 산복 도로를 잇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그 시절의 아낙들은 우물물을 길어 이고지고 올라갔고, 부두 노동자들은 부산항에 배가 들어오면 하역 일을 얻기 위해 뛰어내려갔다. 산업화 이후엔 방직, 연탄 공장에서 일을 마친 노동자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터덜터덜 올라왔던 길이다. 6층 높이의 계단은 이들의 고단한 삶의 무게를 대변하는 듯했다. 단번에 오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 계단 중턱에 앉아 숨을 고르거나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들고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 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걱정은 접어둘 것. 길이 60m의 모노레일을 타고 단번에 오를 수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다 보면 구석구석 얽히고설킨 골목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모노레일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언덕 끝자락에서 이바구 공작소를 만날 수 있다. 부산 동구의 역사와 산복 도로 사람들의 이야기 등을 수집, 전시하는 자료관으로, 시대별 이바구길의 변천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옥상에 오르면 바다를 향해 뻗은 갑판 모양의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 서면 부산항과 부산항 대교가 한눈에 내다보이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준다. 이바구 공작소를 가기 전, 당산에 잠시 들러도 좋다. 마을의 풍요와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는 곳으로 100년 넘게 마을을 지켜주는 할매신과 할배신이 있다.
할매 손맛에 반하고, 추억에 취하다
이바구길 구석구석을 오르내리다 보면 금세 출출해진다. 마침 고소한 어묵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168계단 옆에 붙어 있는 ‘영진어묵 & 공감카페’는 초량에서 50년간 어묵을 만들어온 영진어묵이 운영하는 곳이다. 주문 즉시 요리하는 게 이곳의 특징. 오픈 키친을 통해 어묵을 만들고 튀기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이곳의 인기 메뉴는 ‘모둠어묵 앤 칩스’. 치즈 어묵 고로케, 새우 어묵 등 다양한 수제 어묵과 감자튀김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다. 갓 튀긴 어묵은 입안에서 살살 녹고, 통유리 너머로 펼쳐지는 전망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시원한 봄바람을 맞으며 맥주 한잔하기 딱 좋다.
영진어묵 맞은편에 있는 ‘625막걸리’에선 초량동 할머니들이 주문부터 요리, 서빙까지 직접 한다. 손이 큰 할머니들은 손주에게 요리를 해주듯 재료를 아낌없이 팍팍 넣는다. 두툼한 해물파전은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다. 톡 쏘는 막걸리 한 잔에 고소한 파전 한 점이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신다. 초량동 할머니들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 한 곳 더 있다. 바로 168계단 초입에 있는 ‘168도시락국’. 점심시간이 되기 전, 도시락을 까먹던 그 시절 꼬마들에겐 추억을 곱씹을 수 있는 곳이다. 사각형 양은 도시락에 쌀밥을 꾹꾹 눌러 담고, 분홍색 소시지와 멸치볶음, 김치, 계란 프라이를 담아 내온다.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도시락 뚜껑을 닫고 마구 흔들면 된다. 특별한 조리법도 없다. 마음을 녹이는 푸근한 고향의 맛이다.
영진어묵 & 공감카페
부산광역시 동구 영초윗길 22-1
051-462-0055
625막걸리
부산광역시 동구 영초윗길21 0
51-467-7887
168도시락국
부산광역시 동구 영초길 191
051-714-2619
이국적인 풍광의 산복도로 전망대
평지에서 시작된 이바구길은 하늘 아래 산복 도로까지 숨 가쁘게 이어진다. 산 중턱을 지나는 산복 도로는 한국전쟁 후 산비탈에 집들이 오밀조밀 생겨나면서 1964년에 만들어진 부산만의 독특한 길이다. 지대가 높아 발길 닿는 어디든 전망 포인트다. 그중 백미는 ‘유치환 우체통 전망대’. 부산 동구에서 생을 마감한 유치환 시인은 산복 도로와 인연이 깊다. 청마 유치환의 작품과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전망대로, 빨간색 우체통 너머로 펼쳐지는 기막힌 바다 풍광에 감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유치환의 시 ‘행복’의 한 구절이 오버랩 되는 낭만적인 풍경이다. 우체통이 있는 옥상에서 부산항을 두 눈 가득 담고, 2층 전망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소중한 이에게 편지를 썼다.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너의 추억을 나는 이렇게 쓸고 있다’ 등 카페 곳곳이 유치환 작품으로 물결친다. 편지는 1년 뒤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쯤 선물처럼 받을 수 있다니 아날로그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어둑어둑 해 질 무렵, 범일동 안창마을 인근에 있는 만리산 전망대로 발길을 돌렸다.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도로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장난감 같은 집들, 알록달록 불을 밝힌 골목, 부산항을 가로지르는 부산항 대교 등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명당이다. 산복 도로는 낮과 밤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해가 지면 부산항 대교에 환하게 조명을 밝혀 화려함이 극에 달한다. 산등성이에 그림 같은 집들이 얼기설기 들어선 그리스 산토리니가 퍼뜩 떠올랐다. 산복 도로 어디서든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지지만, 사실 깊숙이 파고들면 산동네 사람들의 눈물이 고여 있는 애틋한 길이다.
유치환 우체통 전망대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580번길 2
051-469-9818
카페로 돌아온 적산가옥
브라운핸즈백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등록문화재 제330호로 지정된 카페가 있다. 바로 적산가옥을 개조해 만든 ‘문화공감 수정’. 1943년 지어진 일본식 목조 2층 건물로, 일제강점기에 부산에 거주한 일본인 철도청장의 관사였다 광복 이후 한국인이 인수하면서 요정(料亭)으로 바뀌었다. 일본 규슈 지방의 서원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정란각은 웅장한 지붕과 높은 천장이 특징이며 다다미방과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재와 유리 등 모든 건축 재료가 일본산. 비바람을 막기 위해 설계된 미닫이 덧창, 방에 앉아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일본식 창호, 엔가와(툇마루)와 장마루로 이루어진 복도, 도자기나 액자를 진열하는 도코노마 등 일본 건축 특유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1층 작은방엔 기모노를 보관하던 옷장이 있는데, 여자 손가락 3개가 딱 들어가는 사이즈로 손잡이 홈을 제작한 것이 인상적이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장군의 아들>과 아이유의 <밤편지>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등장해 더욱 이름을 알렸다.
전쟁 당시 피란민들은 깡통을 지붕 삼아 판잣집을 짓고 살았는데, 기세등등한 일본 저택을 보니 왠지 서글픈 기분이 든다. 과거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부산을 조선 침략의 교두보로 삼았고, 부산항 인근 초량동과 수정동엔 아직 일본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카페로 변한 적산가옥을 보니 과거의 아픈 기억을 끌어안고 사는 것 같아 가슴이 아리다. 어두운 역사를 마주할 때마다 불편하고 씁쓸한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 하지만 흔적을 지우고 없애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찬란한 것만이 우리 문화유산이 아니기에.
문화공감 수정
부산광역시 동구 홍곡로 75
051-461-0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