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빚은 거리
열정이 빚은 거리
  • 고아라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1.03.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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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열정도

골목 여행하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다. 화려한 야경이나 알록달록한 벽화, 혹은 이름난 맛집이 모여 핫플레이스가 된 거리를 일부러 찾아가는 것. 다른 하나는 보물찾기 하듯 발길이 닿는 곳을 따라 걷다 마음에 쏙 드는 거리를 발견 하는 것이다. 개성 넘치는 젊은 장사꾼들의 상점이 밀집한 열정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전자에 속하지만 에디터에겐 후자에 가깝다. ‘오늘은 어디서 놀까?’가 유일한 고민이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지금은 열정도가 된 원효로 인쇄골목은 근처에 살던 에디터의 단골 놀이터였다.

한때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인쇄소들이 쉴새 없이 기계음을 내던 동네라던데, 여느 인쇄골목처럼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활기를 잃었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재개발마저 무산되자 노동자와 주민들은 공장과 집을 버려둔 채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인근 지역은 모두 재개발돼 마치 방치된 섬처럼 둥둥 떠있게 된 것. 동네 친구들과 골목을 누비다 우연히 발견한 빈 공장과 폐가는 사정을 알 턱이 없는 아이들에겐 최고의 놀이터였다. 공장 속 낡은 기계는 고무줄놀이 땐 고무줄을 거는 기둥, 술래잡기 땐 몸을 감추는 방패 역할을 했다. 폐가가 된 빈집에서 해가 저무는 줄 모르고 귀신 이야기에 열을 올리다 부모님에게 불려 나가기도 했다.

원효로 인쇄골목을 다시 찾게 된 건 ‘사회인’이라는 딱지를 이제 막 달게 된 2014년 말이었다. 청년 장사꾼들이 다양한 상점을 꾸리면서 ‘열정도’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한산하기 그지없던 동네는 온데간데없고 개성 넘치는 맛집과 아기자기한 카페가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낡은 공장과 주택을 철거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활용해 레트로한 분위기까지 넘쳐흘렀다.

열정도는 약 300m의 짧은 거리지만 고기, 곱창, 떡볶이, 주꾸미, 치킨, 커피 등 다양한 가게가 골고루 모여있어 알찬 느낌이다. 직장인들은 회식 1차부터 3차까지 모두 이 거리에서 해결하기도 한다. 저녁이면 지나가는 이 하나 없어 으슥하던 골목이 밤새 시끌벅적한 핫플레이스로 거듭난 건 열정도를 꾸린 청년들 덕분이다. 청년 상인들은 큰 목소리와 밝은 표정으로 전국에서 손님을 끌어모았다. 어떤 이들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기 위해 일부러 열정도를 찾는다.

감탄을 부르는 열정도 맛집4

열정도 고깃집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고기 마니아들의 맛집. 인근 지역만해도 수십 개의 고깃집이 있지만 굳이 열정도 고깃집을 찾아오는 이들은 크게 3가지 이유를 꼽는다. 고기의 질, 서비스, 재치 있는 캐치프레이즈다. 이곳의 고기는 동물복지농장인 무항생제 성지 농장에서 가져와 판매한다. 일반 농장의 것보다 원가가 높지만 좋은 품질의 고기를 저렴하게 제공해 고객만족도를 높였다. 고기는 습식 숙성 공법으로 10~14일간 숙성해 선보인다. 이렇게 탄생한 저지방육의 두툼한 목살은 부드러운 식감과 씹을수록 고소한 맛을 선사한다. 명이나물과 장아찌, 백김치 등이 제공되는데 취향에 따라 함께 먹으면 맛이 배가 된다. 아기와 함께 찾은 부모님들을 위해 아기 의자나 식기도 구비하고 있다.

바이커스 버거
2층짜리 주택을 개조한 카페 겸 수제 버거 집. 더블 치즈버거, 에그 베이컨 버거 등 기본적인 메뉴부터 칠리 라구 버거, 아보카도 파인애플 버거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독특한 메뉴를 선보인다. 모두 두툼한 수제 패티를 넣고 만들어 한입 배어 무는 순간 육즙이 입안 가득 퍼지는 것이 특징. 버거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에일, I.P.A 등의 다양한 생맥주도 준비돼 있다. 넓은 테라스 좌석이 있어 선선한 날에는 맥주 한 잔을 즐기는 이들로 늘 만석이다. 카페로도 운영하고 있으며 애견 동반이 가능해 산책을 나온 애견인들도 많이 찾는다. 이름처럼 매장 내에 빈티지한 오토바이가 전시돼 있으며 오토바이를 타고 매장을 방문한 사람에겐 15% 할인된 가격에 제공하기도 한다.

두화당
열정도 끝자락, 골목 여행이 마무리될 때쯤 아기자기한 외관과 몰려든 인파로 눈길을 끄는 가게가 있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주택에 콩 ‘두’, 꽃 ‘화’, 집 ‘당’ 자가 걸려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두유를 베이스로 다양한 디저트를 선보이는 카페다. 내부는 화려한 자개장과 샹들리에, 나무 반상으로 꾸며졌다. 마치 개화기 어느 다방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독특한 인테리어에 반해 찾아온 손님은 특별한 메뉴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매일 아침 직접 불린 콩을 갈아 내린 두유로 음료와 디저트를 선보이는 것. 우유 대신 두유를 넣은 라테부터 두유 아이스크림, 두유 푸딩 등 다채롭게 선보여 선택의 폭이 넓다. 특히 아이스크림은 생두유와 코코넛으로 만들어 고소하고 녹아도 맛이 좋다.

열정도 쭈꾸미
열정도 골목 한가운데 자리한 주꾸미 맛집. 열정도의 시작을 함께한 터줏대감이자 대표적인 맛집이다. ‘쭈꾸미 팔아 장가가자’는 유머러스한 문구가 눈길을 끌고, 입구 앞에서 숯불에 구워내는 주꾸미 향이 군침을 돌게 한다. 대표 메뉴는 철판 쭈꾸미. 매콤 달달한 양념이 잘 스며든 주꾸미와 삼겹살의 조화가 기막히다. 밑반찬으로 제공되는 천사채 샐러드를 곁들여 먹으면 매운맛은 완화되고 고소한 맛은 배가 된다. 깻잎에 잘 익은 주꾸미와 천사채, 날치 알을 넣어 쌈으로 먹는 것이 꿀팁. 매운 음식에 약하다면 소금구이로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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