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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그림자
도시의 그림자
  • 고아라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1.03.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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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인쇄골목

서울은 그 어느 도시보다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화려한 고층 빌딩이 사방을 둘러싼 메트로폴리스인가 하면 개성 넘치는 개인 카페와 빈티지한 쇼룸으로 채워진 일명 ‘힙스터 성지’기도하다. 또 어떤 동네는 연대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낡고 정겨운 옛 얼굴을 하고 있다. 충무로 인쇄골목이 그렇다. 과거 어느 순간부터 시간이 멈춘 걸까. 좁은 골목을 수십 년 달려온 삼륜 오토바이와 또박또박 글자가 걸린 녹슨 간판이 높고 거대한 건물 뒤편에 그림자처럼 번져 있다.

영화와 인쇄
충무로 인쇄골목은 을지로 3가와 4가, 충무로 일대의 인쇄 관련 업체가 밀집된 지역을 이른다. 행정구역으로 ‘인현동’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6천 곳에 가까운 인쇄소가 모여있다. 꽤 넓은 부지인데도 아담한 각 사업장이 어깨를 맞댄 채 다닥다닥 붙어있다. 지금이야 셔터가 내려가 있거나 속이 텅 빈 가게가 많아 한산하지만 인쇄 산업으로 흥했던 골목의 화려한 과거를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충무로 인쇄의 역사는 무려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403년 조선시대 활자를 주조하고 책을 찍어내는 주자소가 자리를 잡으면서부터다. ‘주자동’, ‘필동, ‘묵정동’ 등의 인근 지명 역시 주자소의 입지, 붓과 먹을 파는 상점들의 밀집 등 조선시대 인쇄출판문화의 흔적과 관련이 깊다. 조선의 인쇄 직공들이 인현동 부근에 모여 살았고 일본식 인쇄술을 받아들이며 성장해나갔다.

1910년에는 ‘경성극장’, ‘중앙관’ 등 대형 영화관이 들어서면서 영화 전단지를 만들기 위한 인쇄골목이 형성됐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큰 피해를 입고 주춤했던 적도 있지만 인쇄 산업은 쉽게 저물지 않았다. 한국 영화 산업이 황금기를 맞으며 다시 호황을 누리게 된 것. 영화사들이 강남으로 옮겨간지 오래지만 한때 ‘한국 영화’라 하면 ‘충무로’로 약칭할 만큼 한국 영화의 메카였다. 영화사와 카메라, 장비 상점이 몰려 있어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할 수 있었다. 이때 등장한 영화는 모두 충무로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현동 일대에 ‘스카라극장’, ‘대한극장’ 등이 들어서면서 영화 포스터 및 홍보 전단지를 제작하기 위한 민간 업체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골목 깊숙한 곳까지 인쇄기가 들어섰으며 2층, 옥상까지 각기 다른 이름의 인쇄 관련 업체가 문을 열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충무로의 주인’이라 불리던 인쇄소들은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며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뉴트로 열풍과 독립 서적의 유행으로 인쇄소를 찾는 사람들이 근근이 있었지만 그나마도 성수동이나 파주로 떠난 젊은 인력에게 몰렸다. 현재 인쇄골목을 지키는 이들은 수십 년간 골목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장인들이다. 전쟁과 IMF, 디지털 시대의 도래 등 거대한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은 이들은 충무로 인쇄골목이 서울의 명물로 거듭난 지금도 여전히, 묵묵히 인쇄기를 돌리고 있다.

인쇄 골목의 재발견
한국 영화 황금기에 인쇄소와 함께 전성기를 맞았던 카메라 가게는 여전히 운영 중인 곳이 많다. 당시 배우들이 프로필 사진을 찍기 위해 충무로의 사진 스튜디오로 몰리고, 영화 제작을 위한 카메라 장비를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카메라 가게가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영화가 사라진 이후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디지털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갈 곳을 잃은 종로와 남대문 일대의 카메라 가게들이 옮겨오면서 또 다른 골목을 형성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그 수가 늘어나기도 했다. 디지털카메라가 흉내 낼 수 없는 ‘필카(필름 카메라)’가 유행하면서부터다. 아날로그와 뉴트로의 매력에 흠뻑 빠진 젊은 층은 단종된 필름과 구형 카메라를 구하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196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듯한 골목 풍경도 한몫한다. 낡고 녹슨 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정겨움에 반해 필사를 나온 사진가들이 많다. 블록을 쌓듯 좁은 골목 위를 차곡차곡 점령한 간판과 페인트로 꾹꾹 눌러쓴 글자, 많은 사연을 품은 만큼 내려앉은 지붕은 절로 셔터를 누르게 한다. 일제 강점기에 세워졌던 2층짜리 적산가옥도 온전히 남아있어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충무로 인쇄골목을 걸으며 가장 많이 마주치는 것은 ‘삼발이’라는 이름의 삼륜 오토바이다. 더 많은 짐을 더 안정감 있게 옮길 수 있도록 개조했는데 무려 500kg까지 실을 수 있다. 차가 드나들기 힘든 인쇄골목 곳곳을 누비는 작은 체구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효율성이다. 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든 덮개가 있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종이를 빠르게 운반할 수 있다. ‘인쇄골목’이라는 특수 상황에 맞춰 개조된 만큼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어 진귀한 구경거리가 된다.

인쇄소와 운명을 같이하는 노포들은 더욱 많은 사람들을 충무로 인쇄골목으로 불러 모은다. 인쇄골목이 형성될 무렵 노동자들의 배를 따뜻하게 채워주던 식당들이 젊은 층에게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온 것. 지금 남아있는 노포들은 인쇄골목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품고 있어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듯한 인테리어는 물론, 저렴하고 푸짐한 양으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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