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의 추억, 용산 보광동
개발의 추억, 용산 보광동
  • 김경선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21.03.09 07: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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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서울에서 여전히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동네. 힙하고 트렌디한 이태원 뒷골목을 돌고 돌아 만난 보광동에는 낡지만 짙은 향수가 가득했다.

늘어가는 빈집만큼이나 추억이 사라져가는 보광동은 재개발을 앞둔 동네다. 한강을 내려다보는 가파른 언덕에는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태원역에서 남쪽을 향 해 발길을 돌리면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골목들 사이로 낡은 집들이 어깨를 마주하고 있다. 한남1구역부터 5구역까지 구획된 동네는 보광동. 그중 에디터가 찾은 곳은 가장 빨리 재개발이 진행중인 한남뉴타운 3구역이다.

미로 같은 추억의 골목길
한남뉴타운 3구역은 지난해 시공 건설사를 확정하고 오는 6월 착공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라고 해야 불과 3개월. 수십 년간 보광동을 지키며 살아온 터줏대감들은 이제 곧 삶의 터전을 내어주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큰길을 벗어나 샛길로 접어들면 빈집이 자주 눈에 띄었다.

수퍼, 철물점, 빈대떡집…. 보광동에는 오래된 상점들이 많다. 주민 50% 이상이 터줏대감 어르신들이니 이곳에서 돈을 벌고 삶을 이어왔음이 분명하다. 무표정한 표정 뒤에 정겨움을 숨긴 주인장들은 길을 묻는 에디터에게 퉁명스럽지만 세심하게 길 안내를 하곤 했다. 에디터가 찾는 위치는 얼마 전 유튜브로 보았던 <비긴어게인>의 버스킹 장소. 가수 이영현이 보광동의 한 골목길에서 한강을 배경 삼아 노래를 부르던 장소다. 누군가 댓글을 단 ‘한광교회 인근’ 이라는 정보만을 가지고 수색에 나섰고, 매의 눈을 가진 터줏대감 몇 분 덕에 한강을 조망하는 전망 포인트(서울 용산구 한남동 568-295)를 찾아냈다.

담벼락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한강과 한남대교. 이곳이야말로 엄청난 한강뷰를 자랑하는 전망대다. 이 골목을 지나는 이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동네 주민과 타지 사람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다. 이 기막힌 풍광에 눈을 돌리지 않는 이가 있는 반면 가던 길을 멈추고 감탄 섞인 눈길로 한강뷰를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발걸음 너머 말라비틀어진 화분이 쓰레기처럼 골목에 버려져있다. 생기 넘치던 식물이 온기를 잃고 재개발을 앞둔 골목을 고독하게 지키고 있는 모습이 왠지 안쓰러웠다.

여기엔 여전히 삶이 있다
보광동에서는 길을 잃어도 괜찮다. 가고픈 방향을 어림잡아 미로 같은 골목을 걷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칙칙한 회색 담벼락을 채운 예쁜 벽화와 모퉁이에 덩그러니 놓인 쓰레기봉투가 있다. 인적 끊긴 늦겨울의 스산함이 골목을 훑고 지나간 자리, 빈집에 쌓인 가구들은 버려진 골목을 떠나지 못하는 유기견처럼 처연하다. 이제 곧 사람들이 떠나고, 허물어진 집터에는 고급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추억이라고는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천지개벽할 보광동이 벌써부터 아쉽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는 여전히 삶이 있다. 아침이면 골목을 쓰는 어르신과 정겨운 터전을 찾아 올라온 주머니 가벼운 젊은이들이 담벼락을 마주하고 소통하는 곳. 옆집 사람과 인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이 시대에 보광동은 서울에서 몇 남지 않은 사람 냄새나는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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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동주민 2021-03-10 11:29:09
주민의 삶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외부인 입장에서 센티멘탈 뽕만 들이키고 쓴 글

보광초등학교졸업생 2021-06-28 01:35:24
57년 살다 이사나온 사람입니다.
하루빨리 재개발해서 탈바꿈 하기를 멀리서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