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의 고통을 입고 있습니까?
거위의 고통을 입고 있습니까?
  • 김경선
  • 승인 2021.02.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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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털은 살아있는 거위에서 잡아 뜯는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 가운데 가장 현명하고 똑똑한 인간이 다양한 동식물을 지배하는 것은 순리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지만 오랜 세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며 동식물을 통제해왔다. 문제는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동물을 학대하고 죽이는 일이 많아지면서 그동안 동물의 권리를 외면했던 사람들이 각성하기 시작했고 착한소비운동으로 이어졌다.

사진출처 nick-fewings
사진출처 nick-fewings

소비자들의 착한소비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분야는 단연 패션이다. 이익을 위한 냉혹한 기업의 생리가 작동하는 패션계에서 동물권에 대해 가장 먼저 주목한 분야는 아웃도어다. 침낭, 동계용 보온재킷 등에 많이 쓰이는 다운의 생산과정이 학대라는 논란이 일면서 브랜드들의 고민이 시작됐다.

좋은 다운일수록 동물의 고통은 심해진다. 다운은 가볍지만 보온성이 탁월한 천연소재로 복원력(필파워)이 높을수록 더 가볍고 따뜻하다. 그런데 복원력이 높으려면 솜털이 많아야하며, 솜털은 살아있는 거위에서 잡아 뜯어야 한다. 우리가 입고 있는 다운 재킷의 상당수는 거위나 오리의 고통의 산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솜털은 물새류의 가슴과 배 아랫부분, 날개 밑에 감춰져있다. 다 자란 거위 한 마리에서 얻을 수 있는 솜털은 고작 140g. 몇 해 전부터 한국에도 롱패딩이며 숏패딩이 매년 겨울마다 유행하고 수많은 다운 재킷이 판매된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거위와 오리의 털이 뽑혔는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동물권은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소비자가 진실을 외면하고 다운재킷을 소비하는 사이 멀리 떨어진 생산지에서는 동물 학대가 만연하다. 다행스러운 점은 몇몇 브랜드가 앞장서 반성하고 개선하는 모습을 보이며 동물복지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특히 RDS(Responsible Down Standard)는 거위와 오리의 사육 및 도축, 가공, 봉제 등의 생산 전 과정에서 동물복지시스템 준수를 인정하는 제도로 2014년 미국 비영리 섬유 협회인 텍스타일 익스체인지Textile Exchange와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가 공동 연구해 만들었다. 노스페이스, 랩, 블랙다이아몬드 등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RDS 사용에 앞장섰고, 이후 잔혹한 방법으로 동물들이 학대당한다는 사실을 안 소비자들이 RDS 다운을 찾기 시작하면서 블랙야크, 코오롱스포츠, K2, 네파 등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들도 RDS 인증 다운을 사용중이다.

친환경을 표방하는 대표적인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생산, 가공, 유통 과정을 모두 감시해 만든 트레이서블 다운Traceable Down을 사용한다. 트레이서블 다운은 살아있는 거위와 오리, 강제 사육한 조류에서 다운을 채취하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여기며 100% 유통과정이 투명한 다운만을 사용한다. 파타고니아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버려지는 다운을 재가공한 재활용 다운으로 제품을 선보이며 동물권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다운뿐만 아니라 가죽 역시 동물 학대 논란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럭셔리의 대명사 에르메스 버킨백을 만들기 위해서는 악어 3마리가 필요하다. 오로지 인간의 욕망을 위한 몇 천 만 원짜리 가방을 만들고 애꿎은 악어가 죽어나가지만 버킨백은 여전히 없어서 못 파는 희귀템이다. 모피와 패딩 모자에 사용하는 라쿤털도 마찬가지. 아이템이 유행할수록 동물은 죽어나가는 아이러니한 시장경제사회에서 가치소비에 대한 각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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