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인간이 소통하는 산
하늘과 인간이 소통하는 산
  • 글ㆍ김경선 기자 | 사진ㆍ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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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TRAVEL 강화도 | ① 마니산 트레킹

▲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참성단. 하지만 바로 옆 465봉에 서면 창성단이 훤히 보인다.

상방리~참성단~함허동천 코스 4km 3시간30분 소요…장쾌한 암릉길 따라 산행 재미 물씬

유순한 오르막을 올라 마니산 주능선을 밟으면 산은 암팡진 암릉으로 자태를 드러낸다. 작지만 이토록 다부지기에 민족의 ‘머리’로서 수천 년 세월을 버텨온 것이 아닐까. 살랑살랑 기분 좋은 해풍이 얼굴을 간질거리는 가을날, 하늘과 통하는 마니산 정수리로 올라봤다.


▲ 등산로 초입은 계곡의 포장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기원전 2500년 경, 하늘의 아들과 인간으로 거듭난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은 한반도에 고조선을 세웠다. 아마도 천신을 숭배하던 부족과 토테미즘을 숭배하던 부족이 만나 국가를 이룬 것이리라. 한민족의 시조 단군은 나라의 번영과 안위를 위해 마니산(469m) 참성대에서 제를 올렸다. 한반도에서 기가 가장 세다는 민족의 성소는 그렇게 하늘과 인간이 소통하는 통로였다.

강화대교와 초지대교, 바다를 가르는 두 다리 덕분에 이제는 정체성마저 모호해져버린 섬이지만, 강화도는 여전히 전원의 평화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이 안식의 섬에서 가장 높은 마니산은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민족의 성소로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마니산은 ‘머리’다. 1970년대 ‘마리산’이라는 이름 대신 마니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마리’는 고어에서 ‘머리’를 뜻한다.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산, 민족의 머리를 뜻하는 산의 이름은 의미를 상실한 채 마니산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강화도에서만큼은 마니산은 여전히 마리산이다. 시내버스 터미널에서도 군내버스에서도 온통 ‘마리산행’뿐이다.

민족의 머리는 한반도 중앙에서 솟아올랐다. 한반도 남과 북을 호령하는 한라산과 백두산의 가운데 위치한 마니산, 세 산을 연결한 삼각형의 머리에 해당한다.

▲ 마니산은 크지 않지만 수려한 산세와 기암이 일품이다.

무속인들의 발길 끊이지 않는 기도처
산 북쪽 상방리 마니산 국민관광단지에서 시작해 참성단~마니산 정상을 지나 함허동천야영장으로 하산하는 산행 코스를 잡았다. 보통 산행객들은 산방리에서 산행을 시작해 정상까지 오른 후 다시 원점회귀하는 코스를 많이 걷지만, 마니산의 백미는 정상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암릉 코스다.

▲ 918개의 계단이 이어지는 계단로. 참성단으로 오르는 가장 빠른 길이다.
초입은 포장도로가 이어졌다. 아직 녹음이 짙은 마니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산이 민족의 ‘머리’라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제 올릴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산을 오르는 무속인들 때문일까. 낯선 기운이 산에서 뿜어져 나왔다.

초입에서 500m를 지나자 삼거리다. 오른쪽은 단군로, 왼쪽은 계단로다. 참성단으로 가기 위해 계단로를 따랐다. 포장길을 따라 5분 정도 오르니 마리산기도원. 기도원을 지나면 참성단까지 918개의 계단이 이어진다.

등산인들은 대부분 등산로에 만들어 놓은 인위적인 계단을 싫어한다. 울퉁불퉁한 흙길과 바위길을 올라가는 맛이 없고 끊임없이 지루한 발품을 팔아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니산 계단로는 정상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 산행객들이 많이 찾는다.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계단로를 20여 분 올라가니 뒤로 강화도의 멋진 절경이 드러났다. 수림 사이로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는 서해바다와 벼가 넘실대는 들녘이 오르막에 지친 산행객들을 위로했다.

▲ 참성단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암릉미가 빼어나다.
참성단은 현재 출입이 금지됐다.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서다. 유구한 한민족 역사의 뿌리가 바로 코앞에 있지만 들어서지 못하고 방향을 틀었다. 참성단에서 3분 정도 동쪽으로 능선을 걸으니 헬기장이다. 헬기장에 서면 사방으로 트인 시야가 강화도의 전경을 드러내고 서쪽으로 참성단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신성한 돌 제단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알려졌다.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까지 제를 지냈으며 지금도 매년 개천절이면 하늘에 제를 올린다. 참성단은 둥글게 돌을 쌓은 하단 위로 네모반듯하게 상단을 쌓아 올려 천원지방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마니산을 제단 삼아 하늘을 향해 신성한 머리를 들어 올린 참성단에서 칠선녀의 몸짓이 아른거리는 듯했다.

정상까지 이어진 주능선의 암릉미 일품
헬기장을 지나 길이 잠시 암부로 이어지더니 주능선을 따라 아기자기한 기암이 펼쳐졌다. 어찌 보면 계룡산 자연성릉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암릉미가 빼어났다. 경사가 심한 능선길은 화강암 기암절벽이 이어져 장쾌한 맛이 일품이다. 밧줄에 의지해 암릉을 타고 올라서니 감탄사가 절로 나는 강화도 전경이 펼쳐졌다.

사방팔방 어느 곳 하나 막힘이 없는 능선의 조망은 멋스러운 암릉과 어우러졌다. 산사면을 타고 올라오는 해풍의 간질임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참성단을 지나 암릉길을 40여 분 걸으니 마니산 정상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니 지나 온 암릉 너머 참성단이 아스라이 보였다.

▲ 마니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넘실대는 들판 너머로 너른 바다가 펼쳐진다.

▲ 기화가 거대한 너럭바위 위에 새겼다는 ‘涵虛洞天(함허동천)’.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이라는 의미다.
정상에서 길은 함허동천과 정수사 방면으로 나뉘었다. 사기리까지 쭉 뻗어있는 능선을 따르면 정수사, 능선을 내려서 계곡을 따르면 함허동천이다. 함허동천 이정표를 따라 왼쪽 계단길로 내려섰다.

산길을 따라 20여 분 내려가니 ‘←능선길, 계곡길→’ 이정표가 나타났다. 빼어난 산세 속에 수려한 계곡미를 자랑하는 함허동천을 보기 위해 계곡길을 따랐다. 계곡은 조선 전기의 승려 기화가 수도한 이후 그의 당호 ‘함허’를 따 이름 지었다.

함허동천은 독특하다. 널찍하고 완만한 너럭바위로 계곡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계곡의 하류부에 다다르자 오른쪽으로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타났다. 다리 가운데서 보니 와폭 한 가운데 기화가 썼다는 ‘涵虛洞天(함허동천)’이 멋스럽게 새겨져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이라는 의미다. 아마 기화도 계곡의 수려함에 넋을 놓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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