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신선봉 트레킹
금강산 신선봉 트레킹
  • 박신영 기자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1.01.06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희망을 여는 봉우리

천지를 뒤흔드는 바람과 힘없이 바스러지는낙엽의 구슬픈 울음이 귀를 찢었다. 말라비틀어진 생명이 내는 신음과 등정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여명 앞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강렬해지는 붉은 빛 아래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금강산 제1봉 신선봉. 그곳은 여전히 시간이 멈춰 있었다.

금강산 찾아가자 희망 2천봉
2020년은 다사다난했다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고난과 역경의 해였다. 절망과 좌절 속에서 너무나 많은 생명을 잃었으며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깨달았다. 다행스럽게도 모든 걸 끝낼 희망의 불씨가 이제 막 타올랐다. 아직 춥고 진눈깨비가 흩날리지만 비관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의 계절은 혹한기를 지나 봄으로 치닫고 있으니까.

김희남 씨와 김강은 씨의 2020년도 우리와 같았다. 희남 씨가 오랫동안 준비했던 트레일 러닝 대회 참가도, 강은 씨가 떠나기로 한 모로코 국민공공외교 활동도 무산됐다. 각자의 꿈과 목표가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길을 꾸준히 걸으면서 2021년의 또 다른 미래를 그려나갔다.

이번 산행은 우리에게 다가 올 희망의 신호탄을 쏘기 위해 금강산 신선봉이 보이는 성인대로 향했다. 대한민국에서 휴전선을 넘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금강산 제1봉 신선봉. 금강산 1만2천봉 중 남쪽 끝자락에 위치하는 첫 번째 봉우리다. 동해로 불쑥 떠오르는 태양이 가장 먼저 빛을 내어주는 곳이자 평화와 통일의 씨앗으로 불리는 금강산. 자연의 생명과 바람 소리만이 들리는 암흑을 뚫고 2021년의 새아침을 기도했다.

까만 밤을 세로지르는 한줄기 빛
새벽 5시 30분, 금강산 들머리인 금강산화암사 앞에 도착하자 번쩍이는 두 눈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숲속에서 노루 한 마리가 텅 빈 도로를 지긋이 바라본 것. 낯선 불청객을 경계하는 생명의 숨소리에 우리는 모두 침묵했다. 조심스럽게 산행 준비를 마치고 등산로 입구에 서자 등산 코스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보였다.

금강산 성인대로 가는 코스는 강원도 고성의 금강산화암사와 산림치유의 길 단 두 개다. 사실 두 개라고 할 것도 없다. 두 코스는 이어져 있으며 보통 금강산화암사에서 출발해 성인대를 거쳐 산림치유의 길로 회귀한다. 산림치유의 길 역시 금강산화암사 바로 앞에 위치해 원점 회귀나 다름없다. 우리는 금강산화암사~성인대~금강산화암사 코스를 선택했다. 금강산화암사 코스에는 전설이 깃든 바위 두 개를 만날 수 있는데, 등산할 때는 주변이 어두워 하산 할 때 제대로 바위를 보기 위함이다. 등산 난이도는 대체적으로 가볍다. 보통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넉넉히 두 시간이면 등·하산 할 수 있다. 암릉이나 계단도 많지 않아 초보 등산객이나 어린이도 쉽게 올라갈 수 있다.

랜턴의 조도를 올리면서 등산이 시작됐다. 야트막한 나무 계단을 십분 간 오르자 탁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변한 장소에 놀라 고개를 돌렸더니 거대한 수바위가 등 뒤를 가로막고 있었다. 금강산화암사는 민가와 멀리 떨어져 스님들이 시주하기 어려웠다. 어느 날 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수바위에 구멍이 있으니 그곳을 찾아 끼니때마다 지팡이를 세 번 흔들라”고 말했다. 스님들이 노인의 말을 듣고 수바위에 올라가 지팡이를 흔들었더니 신기하게도 구멍에서 두 사람 몫의 쌀이 쏟아져 나왔다. 그 후 스님들은 먹을 것 걱정 없이 불도에 열중할 수 있었다. 몇 년 후, 사찰을 찾은 객승이 수바위 전설을 듣고 엉뚱한 생각을 한다. 지팡이를 세 번 흔들어서 두 사람 몫의 쌀이 나온다면, 지팡이를 여섯 번 흔들면 네 사람 몫의 쌀이 나온다고. 그러나 객승이 수바위 구멍에 지팡이를 여섯 번 흔들자 구멍에서 피가 쏟아졌다. 객승의 욕심이 산신의 노여움을 사게 된 것. 그 후 수바위에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수바위의 구멍을 찾기 위해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구멍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하산할 때 다시 찾자고 기약하며 성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바위 이후부터는 어둠과 추위와의 싸움이다. 좀처럼 밝아 오지 않는 하늘 아래서 랜턴 불빛에 의지하는 건 생각보다 공포였다. 게다가 동해의 거친 바닷바람이 뺨을 때리자 두려움이 배가됐다. 낮에 등산할 때는 체력적인 한계로 인한 고통만이 있었는데, 야간 산행에는 힘든 것보다 어둠과 자연의 공포에 제압됐다. 말라비틀어진 낙엽이 내는 신음과 간간이 들리는 야생동물의 울음도 귀를 할퀴었다. 앞뒤로 들리는 호흡 소리로 사람의 온기를 느끼며 정신없이 암흑을 헤쳐 나갔다.

핑크빛 날개
여전히 까만 밤이었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왔지만 천상의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성인대는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무리자연이 좋다지만 여명이 밝아올 때까지 성인대에 서 있기엔 무리였다. 우리는 바람이 들지 않는 곳을 찾아 잠시 몸을 녹였다. 텀블러의 뜨거운 물로 라면을 먹기도 했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여명을 기다렸다.

6시 45분이 되자 동해 수평선 너머에서 붉은빛이 일렁였다. 우리는 곧바로 자리를 정리하고 낙타의 등과 꼭 닮은 낙타바위로 걸어 들어갔다. 어둠이 걷히고 광명이 찾아오는 시간, 그 애매하면서도 영롱한 순간에 우리는 금강산 능선에 서 있었다. 설악산에 눌러앉은 울산바위의위용 아래로 시간이 멈춘 미시령 옛길과 아침을 알리는 속초의 불빛이 어우러져 묘한 이미지를 연출했다.

온도는 영상 2℃였지만 금강산 정상의 날씨는 한겨울이었다. 능선에 움푹 팬 구멍 속엔 얼어붙은 웅덩이 두 개가 금강산 추위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얇은 패딩과 두꺼운 겨울 파카를 껴입었지만 맹추위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겉옷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넥워머를 눈 바로 밑까지 끌어 올리면서 칼바람을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산은 마치 “너희는 금강산의 아침을 맞기에 부족하다”며 채찍질해댔지만 우리는 끝까지 낙타바위에 올라섰다.

하늘이 점점 붉게 변하고 있었다. 구름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면서 날이 밝아 왔다. 태양은 구름 속에 자취를 감췄지만 핑크빛 광명은 머리 위에서 지상을 비추고 있었다. 마치 천사가 지상에 강림한 듯, 구름은 천사의 한쪽 날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날개 깃털의 결을 따라 분홍빛이 더욱 진해지면서 금강산의 아침이 기지개를 켰다. 험악한 맹추위가 클라이맥스로 치달았지만, 하늘이 내어준 핑크빛 희망과 금강산의 영검함이 정신적 온기를 불어넣어줬다.

불타는 조약돌을 먹은 호랑이
태양의 뜨거운 열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성인대로 복귀했다. 밝은 하늘 아래의 성인대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성인이 서 있는 모습, 사람의 얼굴 측면, 거북이를 보여주는 성인대에도 수바위처럼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주 먼 옛날, 나그네가 성인대 옆에서 모닥불을 피우던 중 호랑이를 만났다. 나그네는 위기를 모면하고자 모닥불에 굽던 조약돌을 호랑이입에 집어넣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호랑이는 이리저리 뒹굴다 조약돌을 내뱉고 생을 마감한다. 호랑이의 입을 불태운 조약돌은 금강산 일부가 되어 성인대를 지키고 있으며 호랑이는 강원도 고성 토성원 인흥리 주민들이 신성시하는 성황산이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성인대를 지나 원점 회귀하면 시루떡 바위를 만날 수 있다. 누군가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듯한 이름 없는 바위가 시루떡 바위다. 어릴 적,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할머니가 만들어 준 시루떡과 꼭 닮아 정겹다.

한밤중 지나친 수바위도 다시 만났다. 한낮에 본 수바위는 기암이라 불릴 만큼 그 모습이 독특했다. 천천히 발을 내디디며 수바위를 걸어 올라갔다. 바위 표면이 만질만질했지만 접지력이 좋은 등산화 한 켤레 덕분에 쉽게 오르내릴 수 있었다. 수바위의 중간 지점에 오르자 낙타바위에서 봤던 모습과 또 다른 절경이 펼쳐졌다. 금강산화암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 것. 스님과 보살님이 아침을 시작하고 있었고 등산객과 금강산화암사 방문객이 모여들고 있었다.

<블랙야크> 크라운 DD GTX
피팅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듀얼 보아는 일반 신발 끈 또는 싱글 보아와 다르다. 각각 발목과 발등에 위치한 두 개의 주요 피팅존에 강력한 피팅력을 제공한다. 등·하산 시 사용자가 원하는 부위별로 피팅감과 압박 정도에 변화를 줄 수 있어 쾌적한 등산이 가능하다. 또한 신발 내측 아치 부분에서 발등까지 스트랩으로 감싸는 특수구조가 발과 신발의 밀착감을 최대한 높인다. 크라운 DD GTX는 통증 없는 강력한 피팅과 탁월한 아치 지지력을 가진 등산화다. 32만9천원

<아이더>로스터
아이더는 당일 산행 및 1박 이하의 산행에 적합한 미드컷 트레킹화 로스터를 선보였다. 로스터에는 보아의 M4 다이얼을 적용해 더욱 강력한 피팅 기술이 돋보인다. 견고하면서도 강력한 조임을 제공하는 보아의 M4 다이얼은 혹독한 환경에서도 힘과 충격을 견뎌야 하는 작업화와 안전화, 특전대 전술화, 소방화에 사용되는 프리미엄 솔루션이다. 또한 미드솔 안쪽에 충격 흡수 기능을 적용해 장시간 산행 시 발의 피로도를 줄여준다. 엑스그립XGRIP 아웃솔은 트레킹과 리지 산행에서도 뛰어난 접지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29만9천원

금강산화암사에서 바라본 아미타불 황금불상벽화
하산을 마치자 온몸의 긴장이 풀어졌다. 추위에 떨었던 몸이 따뜻한 차 한 잔을 요구했다. 우리는 금강산화암사의 전통 찻집 란야원을 찾아 몸을 녹였다. 대추차와 백연근차 등 산사에서 맛볼 수 있는 전통 차를 주문하자 금강산 수바위 방향으로 난 통유리창이 보였다.

강은 씨가 배낭에서 여행자용 수채화 컬러링 키트인 소울파레트를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예술혼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엽서 크기의 도화지에 물감이 총총 박혀 있었다. 그녀는 물붓으로 도화지 위를 쓱쓱 색칠하더니 금세 멋진 풍경화를 내주었다. 맛있는 차, 멋진 풍경, 아름다운 그림이 란야원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시선을 창밖으로 던지자 수바위 한편에 음각된 황금불상벽화가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멀리서도 그 모습이 온전히 보일 만큼 거대한 벽화였다. 금강산화암사는 부처의 자비와 진리의 소리를 전하기 위해 2019년 말 수바위에 황금불상벽화를 음각했다.

신라 혜공왕 5년(769년), 진표율사가 창건한 금강산화암사는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해체와 재건을 반복하며 불교의 도리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곳엔 다른 사찰에서 쉽게 보지 못하는 수하항마상이 한 편에 자리한다. 수하항마상은 부처가 보리수 아래에서 명상하던 모습을 재현한 불상이다. 기원전 544년, 인도 카필라 샤카족의 왕자인 싯다르타로 태어난 부처가 출가 후 6년간 보리수 아래에 앉아 마왕의 9개 유혹과 위협을 물리친 순간을 모티브로 삼았다. “이 자리에서 내 몸의 가죽과 뼈와 살이 다 없어져도 좋다. 우주와 생명의 실상을 깨닫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를 일어나지 않으리라”라고 말했던 싯다르타는 갈비뼈가 완전히 드러날 정도로 앙상하게 메마른 뒤에야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될 수 있었다. 금강산화암사 방문객들은 수하항마상을 보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이겨내고 정결한 마음가짐을 갖곤 한다.

속세로 회귀하는 다리 위를 건너던 중 종소리가 들렸다. 정갈한 법복을 입은 스님이 범종을 울리고 있었던 것. 청아하면서도 묵직한 종소리가 금강산 성인대 에서 느꼈던 희망과 열정을 뜨겁게 달구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