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여행] 소반장, 김춘식
[나주여행] 소반장, 김춘식
  • 박신영 기자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0.10.30 0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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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 김춘식의 가는 길

소반이 집마다 있던 시절이 있었다. 웃어른에 대한 공경, 예절, 인성을 무엇보다 우선으로 생각하던 때 소반은 대화와 교육의 장이었다.

“옛날에는 아이를 낳을 때 시어머니가 정화수상 앞에서 기도하고 그 후에 삼신상을 차려 안전 출산을 기원했어. 아기가 돌이 되면 돌상을 받고, 생일에는 생일상을 받았지. 신랑과 신부가 처음으로 마주할 때는 혼례상이 있었고 말이야. 죽어서는 자식들에게 제사상을 받지. 그러니까 소반은 인생과 결을 같이해.”

소반은 한국의 전통 탁자로 노비부터 임금까지 누구나 하루에 세 번 이상 쓰는 생활 가구다. 그러나 소반 중 최고라 불리는 나주반은 일제시대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사라졌다. 공장에서 나온 저렴한 입식 테이블이 소반의 자리를 차지한 것. 오랜 시간 장인의 손으로 만든 나주반은 현대화의 물결에 잠식됐다. 국가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 김춘식 선생은 끊어진 나주반의 맥을 부활시켰다. 그가 처음 나주반을 접한 건 1961년, 그의 나이 25세 때다. 김 선생은 대바구니 공장을 하던 형님의 권유로 나주반에 손을 댄다. 그러나 나주반의 모양과 제작 기술 등 관련 자료가 전무했다. 김 선생은 나주반에 일가견이 있던 장 영감을 스승으로 모시고 나주반의 기초를 다졌다.

“장인들은 기록 문화가 어두워. 깎고 다듬는 건 백과사전인데 글 쓰는 건 안 되니까 나주반 자료가 없었던 것이야. 요것을 파헤쳐서 복원해야 쓰겄는디 기록이 없으니 전국으로 흩어진 나주반을 모으는 수밖에. 그때부터 헌상을 고친 거여. 헌상을 100% 분해해서 수십 년 묵은 때를 칼로 벗겨내고 정식으로 구멍을 뚫어 대못을 박았어. 영산포 광주상집에 가면 헌상을 새것으로 고쳐준다는 소문이 돌자 전국에서 상이란 상은 내게 보낸 거야. 할아버지가 쓰던 것부터 창고에서 먼지 쌓인 것까지. 한마디로 내가 고친 헌상이 나주반을 부활시킨 거지.”

김 선생의 2평 남짓한 작업장엔 나주반 모형을 본뜬 그림 수십 장, 수십 년의 세월이 묻은 대패와 망치, 켜켜이 쌓아 올린 나주반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러면 딱 김 선생 한 명 들어갈 공간이 남는다. 김 선생은 좁은 작업장에 앉아 몇 시간이고 나주반 제작에 몰두한다.

“나주반은 전통 한옥 구조와 닮았어. 나주반 천판은 한옥 천장, 변죽은 처마, 다리는 기둥이야. 한마디로 집에 또 다른 한옥을 들여놓은 셈이지. 무엇보다 나주반은 나무속을 파낸 뒤 휘어서 접합하는 기술이 뛰어나. 나주반 모서리는 전부 나무를 휘어붙인 거지, 잘라 붙인 게 아니야. 접합 기술은 오직 나주반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기법이지.”

나주반의 주재료인 느티목과 은행목을 말리는 데만 5년, 나무를 깎고 옻칠을 마무리하기까지 꼬박 60일. 상 하나에 들이는 비용과 노력을 환산하면 당연히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몇십만원을 호가하는 나주반을 사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요즘엔 대부분 입식 테이블을 사용하고 인터넷에서 값싼 탁자도 구할 수 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주반 사는 사람이 없어. 나주반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거야. 무엇이 팔려야 일을 하지 않겠어? 그런데 공예가들은 작품이 안 팔려도 항상 놀지 말고 일을 해야 해. 그러면 먹고 살길이 열려. 일단 작품을 만들어서 점방에 걸어 놓으면 손님들이 와서 흡족하게 작품 구경하고 갈 거 아냐. 그러면 소문이 나서 마니아들이 찾아오고. 그럼 밥을 먹고 살던가 말던가(웃음). 내가 그래요. 살면서 차압 세 번, 경매 세 번을 당했어. 자식들 학교 등록금 한번 제대로 줘 본 적 없다고. 노상 나주반 복원하는 데 돈 다 갖다 써버렸으니까. 그래도 하나 보람 있는 건 나주반을 평생 연구하니까 경매를 당해도 살아갈 길이 열려. 한 15년 전에 빚 다 갚고 아무 걱정 없이 나주반 만드니까 지금은 매일이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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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lc 2020-11-13 16:31:00
So...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