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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민둥산 트레킹
정선 민둥산 트레킹
  • 박신영 기자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0.11.0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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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머리카락

여태 다녔던 산들은 대부분 밀당의 고수였는데 민둥산은 밀당이고 뭐고 없다. 체감상 45도가 넘는 산비탈이 들머리부터 시작된다. 화려한 억새군락지를 보기 위한 여정은 쉽지 않았다.

민둥산에 가기까지
한 5년 전인가. 그러니까 코스모스 졸업 기념으로 친구들과 민둥산에 가기로 했었다. 등산이라면 질색하던 친구들이었지만 억새꽃이 만발하다는 말 한마디에 기차 매표부터 맛집까지 전부 예약했다. 그런데 에디터는 예상치 못한 발목 상처를 입었고 친구들은 회사 면접이 잡혀, 우리의 계획은 수포가 됐다.

아쉬운 마음은 몇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민둥산에 갈 기회는 만들면 생기는 일이었지만 우리나라엔 왜 이렇게 좋은 산들이 많은 건지. 민둥산은 몇 번이나 가을 산행지의 후보로만 존재할 뿐 선정되지 않았다. “민둥산 갈 바엔 영남 알프스를 가지”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억새의 규모로 따졌을 때 당연히 영남 알프스가 민둥산보다 훨씬 크니까 당연한 말이었다.

민둥산에 대한 아쉬움과 집착이 고집으로 변하기 일보 직전, 산행 기회를 얻었다. 코로나19로 2020년 민둥산 억새꽃축제가 전면 취소됐지만 대한민국의 5대 억새 군락지 중 하나인 민둥산에는 언제나처럼 황금빛 물결이 일렁거렸다.

하이킹 고수들도 처음 가는 민둥산
민둥산 하이킹 메이트는 지난 4월 북한산 트레일 러닝에 함께한 김희남 씨와 박현우 씨다. 산은 두 남자에겐 제2의 고향이랄까. 언제나 산에 오를 준비가 된 두 남자는 민둥산 산행 요청에 환한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정선으로 향하는 자동차에 탄 네 명은 모두 민둥산이 처음이었다. 새로운 산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민둥산 들머리인 증산초등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됐다.

민둥산은 강원도 정선군 남면과 화암면에 걸친 산으로 1119m의 높이를 자랑한다. ‘산의 나무가 없어 번번하다’라는 뜻의 ‘민둥하다’는 표현처럼 정상에 나무가 없고 능선을 따라 약 66만여㎡ 부지에 참억새밭이 펼쳐졌다. 9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진행되는 민둥산 억새꽃축제에 매년 방문객 30만 명이 다녀갈 만큼 민둥산 정상에 황금빛 장관이 펼쳐진다. 등산 코스는 증산초등학교, 능전마을, 삼내약수, 화암약수터, 남면사무소를 들머리로 하는 다섯 개의 코스가 있지만 우리는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증산초등학교~완경사 숲길~정상~급경사~증산초등학교를 선택했다.

처음부터 치고 올라가는 민둥산 클라쓰
코로나19의 여파는 민둥산에도 불어 닥쳤다. 등산로 입구에서 방문 명부를 작성하고 발열 검사를 통과해야 산행이 가능했다. 산행 중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현수막도 붙어있다.

10월 6일 중앙방역대체본부 정례 브리핑 중 안전한 가을 산행을 위한 당부 말씀
● 단체 산행은 자제하고 동행 인원을 최소화하는 게 좋다.
● 개방된 야외 공간에서도 다른 사람과 2m 이상 거리 두기가 어려우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 산행 중 숨이 차서 호흡이 어려운 경우에는 거리 두기가 가능한 공간에서 마스크를 벗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 타인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경우에는 가급적 마주 보지 않고 대화를 자제하며 음식은 개인별로 덜어 먹어야 한다.

오랜만에 밟은 흙길이 꽤 푹신했다. 중간중간 바위가 만든 자연 계단들도 산행의 지루함을 덜어줬다. 관리가 전혀 안 된 숲속은 그만의 투박한 멋을 보여줬다. 다람쥐가 먹다 버린 도토리 한 뭉치가 길가에 흩뿌려져 있었고 누군가 등산 스틱 대신 사용한 나뭇가지들이 한편에 고스란히 놓여있었다.

처음에는 주변의 풍경들이 전부 보였다. 시원한 바람, 맑은 새소리, 상쾌한 숲 냄새에 다들 온몸을 쭉 펴고 자연을 만끽했다. 그러나 등산 20분 뒤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평지를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이만큼 올라갔으면 평지나 내리막길이 나올 거라 예상하는데 어째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온몸에 주렁주렁 카메라 장비를 맨 사진 기자와 에디터는 한 걸음 내디디고 숨을 내쉰다.

그러다 완경사/급경사 표지판을 만났다. 오른쪽으로 가면 급경사, 직진하면 완경사다. 급경사로 가자는 일행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에디터는 완경사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분명 완경사로 왔는데 왜 오르막은 계속되는 걸까. ‘민둥산 너 정말 깜찍한 아이구나?’라고 어이없는 웃음이 이어진다. 다들 예상치 못한 산행 난이도에 놀란 눈치다. 은연중에 민둥산을 굉장히 쉬운 산이라고 생각했는데 강원도에 위치한 산을 무시해서는 안 됐다고 푸념한다.

또 한참을 올라가면 그제야 임도가 나타난다. 막걸리를 파는 작은 포차와 화장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마지막 스퍼트를 내는 순간 체감상 경사 60도에 이르는 산비탈이 나온다. 그 정도로 민둥산은 만만하게 볼 산이 아니라는 말이다.

억새로 보상받다
억새밭은 산행 1시간 30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참 숲길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억새 군락지가 나타나더니 산등선을 따라 억새가 줄짓는다. 시선을 멀리 던지면 초록색 산맥들이 넘실거린다. 가리왕산, 함백산, 태백산은 물론이고 산맥 사이에서 고개를 내민 풍력 발전기와 강원랜드의 모습도 보인다.

예부터 민둥산은 정선 화전민의 근거지였다. 배를 곯던 시절, 화전민들이 민둥산으로 들어와 불을 질렀다. 이듬해 봄, 불태운 초목의 재는 거름이 되어 각종 산나물을 재배하는 데 큰 도움이 됐고, 화전민들은 이 산나물로 배고픔을 달랬다.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면 산나물이 사라진 자리에 억새가 가득 피어나 민둥산을 억새 군락지로 만들었다. 손끝에 닿는 억새꽃이 마치 처녀의 긴 금발을 쓸어내는 듯 부드럽고 유연했다.

억새 능선을 십 분간 오르면 민둥산 정상이다. 정상석 앞에 서자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 한낮 최고기온 22도를 웃도는 10월 중순이었지만 산 정상은 한 계절을 앞서 나간다. 칼바람이 뺨을 할퀴고 묵직한 어퍼컷을 날리자 몸을 가누기 어렵다.

정상석에서 내려와 화암약수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민둥산의 또 다른 볼거리인 돌리네doline가 나타난다. 돌리네란 석회암이 빗물에 서서히 녹아내리면서 접시처럼 오목하게 팬 지형이다. 민둥산에서는 열두 개의 돌리네가 흩어져 있는데 그중 해발고도 800m에 자리 잡은 발구덕마을에서 여덟 개의 돌리네를 만날 수 있다.

붉은 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질 기미를 보인다. 얼른 짐을 꾸려 하산길에 오르는데 앞쪽에서 박 배낭을 짊어진 사람이 걸어 올라온다. 그는 오늘 나 홀로 민둥산 백패킹을 할 예정인 듯하다. 우리에게도 시간적 여유가 주어졌다면 민둥산 백패킹에 도전했을 텐데. 게다가 오늘처럼 맑은 날엔 일몰과 일출이 장관일 게 분명하다. 아쉬움에 자꾸만 고개를 돌렸더니 민둥산이 마지막 장관을 연출해줬다. 푸른색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면서 민둥산의 밤이 더욱 화려해진다.

가을 산행 필수품 BEST3

가벼운 등산화
<아이더> 로스터

당일 또는 1박2일용 미드컷 등산화를 추천한다. 로스터는 갑피에 고어텍스를 적용해 방수와 방풍에 효과적이다. 신발 끈 대신 보아를 적용해 빠르고 정교한 피팅이 가능하다. 밑창엔 패턴을 적용해 미끄러짐을 방지했다. 29만9천원.

등산 스틱
<레키> MCT 12

등산, 트레일 러닝, 노르딕 워킹 등 다양한 활동에 적합한 등산 스틱이다. 손잡이형 스트랩은 한 손으로 쉽게 탈부착할 수 있고 스틱을 42cm로 접을 수 있어 편리함을 극대화했다. 스피드락2 시스템을 적용해 스틱의 길이를 쉽고 안전하게 조절할 수 있다. 39만원.

두툼한 재킷
<하이퍼옵스> 레오 라이딩 재킷

산은 초가을부터 쌀쌀하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더라도 산 정상에서는 두툼한 재킷을 입는 게 좋다. 레오 라이딩 재킷은 등산 전용 재킷은 아니지만 내구성이 강하고 다양한 수납공간을 갖춰 가벼운 당일 산행에 적합하다. 11만9천원.

MINI INTERVIEW
하이커가 코로나를 이겨내는 법? (with 김희남, 박현우)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하이커가 늘었나요?
김희남
지난 주말 불수사도북(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을 종주했는데 북한산 구간에서 많은 하이커를 봤어요. 코로나19 이전에는 연령대가 있는 장년층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엔 고등학생, 20대 초반 등 젊은 사람들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혼자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3~4명 친구들끼리 소규모로 온 젊은 층이 많아졌어요.

박현우 러닝 하는 사람들도 산으로 많이 올라왔죠. 코로나19를 즈음해서 올해부터 유독 트레일 러너가 많이 보여요. 보통 러너들은 한강에서 러닝을 하잖아요. 그런데 한강에 산책하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달리기 어렵게 됐죠. 또 마스크를 끼고 러닝 하기 어려우니까 한강보다 마스크 제재가 덜한 산으로 올라오는 거 같아요. 그래서 러닝 복이나 일반 운동복을 입고 산을 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등산객이 많아져서 생기는 불편함도 있을 거 같아요.
김희남
불편한 건 없어요. 오히려 산을 찾는 사람이 많아져서 등산 문화가 확장되는 장점이 있죠. 대신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정상에서 인증 사진을 못 찍는 경우가 생깁니다.(웃음) 주말에 북한산 정상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정산 초입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서 올라가 애를 먹었어요.(웃음)

박현우 쓰레기 무단투기에 대한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대부분 당일 산행객입니다. 산에서 음주 가무나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난 건 아니에요. 게다가 몇 년 전부터 산에서 쓰레기를 줍는 클린 하이킹 문화가 SNS로 확장돼 환경에 대한 인식도 크게 발전했죠. 증가한 산행객 대부분이 SNS를 활용하는 젊은 층인 만큼 쓰레기를 산에 투기하는 사람이 많아진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등산객이 늘어나면 트레일 러너들의 설자리가 없어질 거 같아요.
김희남/박현우 트레일 러닝을 못할 만큼 등산객이 늘지는 않았어요. 주말에야 산에 줄을 서서 올라가지, 주간에는 코로나19 이전과 비슷해요. 다만, 마스크 착용 때문에 야간에 산을 뛰게 됐어요. 밤에는 등산객이 적거나 거의 없으니까 마스크에서 해방될 수 있거든요. 새로운 트레일 러닝 루트를 개발해 인적이 드문 곳을 다니기도 하고요.

코로나19가 끝난 후에도 등산 문화가 커질까요?
김희남 /박현우
등산객이 꾸준히 늘어날 거 같아요. 한번 산의 매력에 빠지면 못 헤어 나오잖아요. 러너들도 산으로 많이 올라오고 있고요.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운동 크루들이 활동을 자제하고 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 등산, 캠핑 크루들이 많이 생겨나지 않을까요? 확실한 건 코로나19가 등산 문화를 긍정적으로 바꿨다는 사실이에요. 젊은 등산객의 증가, 산에서 음주 가무와 쓰레기 무단투기 감소로 곧 지금보다 훨씬 좋은 등산 문화가 자리 잡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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