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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의 지구를 위한 작지만 소중한 발걸음
파타고니아의 지구를 위한 작지만 소중한 발걸음
  • 김경선
  • 승인 2020.09.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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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과 환경, 공정무역을 최우선하는 착한 기업

기업은 이익 추구 집단이다. 산업화 이후 기업의 생태는 언제나 그래왔다. 그러나 파타고니아는 돈을 버는 것이 기업의 선(善)으로 여기지는 현대사회에서 늘 반항으로 일관해왔다. 기업의 최우선 목적이 이윤, 즉 돈이 아닌 환경에 있다는 파타고니아는 2019년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한다’는 사명을 발표하며 괴짜 기업으로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겠다고 선언했다.

©PATAGO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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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잎부터 남달랐던 소년
캐나다 퀘벡 출신 프랑스계 가정에서 자란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 1938~)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영어를 할 줄 몰랐고, 여자 같은 이름과 작은 키 탓에 끊임없이 놀림을 받는 소년이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는 그를 외톨이로 만들지만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는 않았다.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호수까지 자전거로 달려가 송어와 농어를 낚았고, 작살을 만들어 토끼를 사냥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친구가 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힌 그는 반항아 기질이 다분한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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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쉬나드는 지인을 통해 등반을 처음 접한다. 위험천만하지만 짜릿한 등반에 매력을 느낀 쉬나드는 제대로 된 장비 하나 없이 등반에 몰두했고 대장간 일을 독학해 직접 등반 장비를 만든다. 당시 유럽산 피톤(암벽 등반에서 갈라진 바위의 틈에 끼워 넣어 중간 확보물로 사용하는 금속 못)은 연철로 제작해 한 번 암벽에 박아 넣으면 회수가 불가능했다. 자연에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던 그는 1957년 크롬몰리브덴 강철로 만든 수확기계의 날로 피톤을 제작해 바위에서 뽑아내 몇 번이고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후 집 뒷마당의 낡은 닭장에서 피톤과 카라비너 같은 등반장비를 직접 만들었고, 알음알음 친구들을 통해 주문 받은 장비를 제작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가난했고, 장비를 팔아 푼돈이 모이면 미련 없이 등반 여행을 떠났다.

1962년, 쉬나드는 입영통지서를 받고 한국에 파병된다. 반항아였던 쉬나드는 성실한 군 생활 대신 등반에 대한 열정을 불태워 한국의 젊은 등반가들과 함께 북한산 인수봉을 오르며 길(쉬나드 A, B)을 내기도 했다. 1964년 명예제대 후 미국으로 돌아간 쉬나드는 본격적으로 등반 장비 만들기에 돌입한다. 그렇게 쉬나드 이큅먼트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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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 헛간에서 시작된 역사
버뱅크의 양철 헛간에서 본격적으로 장비를 제작하면서 쉬나드는 친구들을 고용했고, 생산 품목과 가격을 표기한 첫 번째 카탈로그를 제작한다. 장비를 직접 디자인하고 손으로 만들면서 선(禪)을 통해 단순해지는 법을 배운 쉬나드는 이때부터 파타고니아의 디자인 철학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쉬나드 이큅먼트의 장비는 선이 간결했고, 가벼웠으며, 강하고, 다목적으로 쓰였다. 쉬나드와 동업자 톰 프로스트는 ‘제거를 통해 보호라는 목적이나 강도를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무게와 부피를 줄이는 방식’으로 목적을 달성했다.

평생의 동반자 멜린다와 결혼을 한 쉬나드는 1970년 미국 최대의 등반 장비 공급업체의 사장이 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모험가이자 등반가였다. 틈 날 때마다 요세미티에서 등반을 했고, 연약한 크랙에 경강 피톤을 반복적으로 박아 넣고 빼낸 탓에 흉하게 망가진 암벽을 마주한다. 피톤은 쉬나드 이큅먼트 사업의 중추였지만 자사의 장비가 자연 훼손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회사 구성원을 힘들게 했다. 쉬나드는 피톤을 대체하기로 결정한다. 크랙에 끼워 넣는 초크Choch를 개선해 스토퍼(Stopper)와 헥센트릭(Hexentric)를 출시하고 최초로 클린 클라이밍Clean Climbing 운동을 시작한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등반가들도 쉬나드 이큅먼트의 선의를 받아들였고, 새로운 장비에 적응하며 등반 문화를 변화시키는데 동참했다.

1960년대 후반, 쉬나드는 ‘내구성이 좋은 코듀로이 원단으로 등산복을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옷감을 구입해 반바지와 니커스를 만들고 지인들에게 판매했다. 생각 보다 옷은 잘 팔렸고, 폴리우레탄 코팅 카굴(Cagoule, 우천 시 입는 모자 달린 상의), 슬리핑 백, 양모 장갑, 양면 모자, 배낭 등으로 라인을 늘려갔다. 옷과 잡화의 품목이 늘면서 의류 라인의 이름이 필요했다. 이미 알려진 ‘쉬나드’라는 안전한 선택지가 있었지만 그들은 의류 라인이 오직 등산에만 연관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이디어 회의 끝에 나온 ‘파타고니아’. 아득하고 흥미로운 이상향이었던 파타고니아는 험준한 남부 안데스와 케이프 혼의 척박한 환경에 맞는 의류를 만들고픈 그들의 바람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리고 1973년, 폭풍우가 몰아치는 하늘, 파타고니아 피츠로이(FitzRoy) 산의 스카이라인을 본 딴 삐죽삐죽한 봉우리, 푸른 바다가 공존하는 상표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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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
파타고니아는 쉬나드 이큅먼트의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정신을 계승했다. 그러나 쉬나드와 직원들이 직접 장비를 만들어 파는 쉬나드 이큅먼트와 달리 파타고니아는 모든 제품을 직접 만들어 파는 것이 불가능했다. 사업가라는 직함 보다 등반가이자 서퍼, 카약커, 스키어, 대장장이로 불리길 원했던 쉬나드가 감당하기에 회사의 덩치는 너무 커져버렸고 그 사이 실수와 좌절을 겪기도 했다. 그때마다 파타고니아는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브랜드를 만든 이유, ‘최고의 제품’을 위해 아이디어를 모아 소재 개발에 몰두한 파타고니아는 시행착오 끝에 버려진 플라스틱 병을 재활용해 가볍고 보온성이 뛰어난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신칠라(Synchilla) 플리스를 개발한다. 이후에도 파타고니아의 소재 개발은 멈추지 않는다. 내구성이 탁월하고 속건성이 우수한 캐필린(Capilene)으로 베이스레이어 라인을 제작했고, 소재의 장점을 재빨리 눈치 챈 소비자들 덕분에 매출이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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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의 반항아적 기질은 디자인에서도 드러난다. 1980년대 초, 당시 아웃도어 제품은 황갈색과 황녹색 잔치였다. 천편일률적인 색상에 염증을 느낀 파타고니아는 코발트색, 청록색, 트렌치 레드색, 망고색, 산호색, 크림색 등 다채로운 색상을 도입해 단조로운 분위기에서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이미지로 변신한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파타고니아 스타일은 독보적이었다. 이제 파타고니아는 아웃도어 마니아를 넘어서 패션 소비자들에게로 인기를 확장시켰다. 회사는 커졌고 직원도 늘었다. 파타고니아는 이제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사명을 넘어 환경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한다. 천연 서식지를 보호하고 복구하는 소규모 단체에 정기적으로 기부하기 시작했고, 1986년 지역 풀뿌리 환경단체에 매년 수익의 10%를 기부하기로 결정한다. 이후 세전 수익의 10% 혹은 총매출액의 1% 중 더 큰 액수로 분담금을 높였으며, 호황이든 불황이든 지금껏 그 약속을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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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파타고니아는 알파인 등반의 본거지인 프랑스 샤모니에 유럽 1호점을 개설했고, 1989년에는 일본 도쿄에 아시아 첫 매장을 열었다. 그러나 무리한 사업 확장은 위기로 되돌아와 창립 후 처음으로 직원을 감축하면서 ‘사업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어떤 회사가 되길 원하는지’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직원들은 토론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최고의 제품을 만들되 불필요한 환경 피해를 유발하지 않으며 환경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사업을 이용한다’는 사명을 선언하며 복잡한 퍼즐을 풀어낸다.

파타고니아에게 환경만이 유일한 가치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환경만큼 중요한 것이 품질이다. 필요한 기능을 갖추었는가, 다기능적인가, 내구성이 있는가, 수선이 가능한가, 소비자에게 잘 맞는가, 디자인과 제품 라인이 단순한가, 혁신적인가, 전 세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인가, 관리와 세탁이 쉬운가, 부가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아름다운가, 패션만을 좇고 있는 것은 아닌가,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원료 생산이 가능한가, 독성이 적은 염료를 사용하는가…. 파타고니아가 제품 하나를 만들 때마다 고민하는 요소에는 그들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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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
완벽을 추구하는 파타고니아도 모든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직물 공장에서 원단을 구입하고 공급업자들에게 지퍼나 안단 같은 부자재를 구입해 외부 봉제 작업장과 계약을 맺는 외주 형태로 제품을 생산한다. 꼼꼼하게 박음질이 되어 있는지, 단추는 잘 달려있는지 직접 확인하기 힘든 상황에서 일선의 제작자들과의 신뢰 관계는 제품의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파타고니아는 공급업자나 도급업자와 많은 일을 함께 하며 서로 의존한다. 연결된 미래는 친구 혹은 가족 같은 사업 파트너를 만든다. 이런 관계 속에서 파타고니아는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수준 높은 품질을 요구한다.

2014년 파타고니아는 공정무역 인증 의류 판매를 시작한다. 미국공정무역협회(Fair Trade USA)와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협회가 인증한 제조 공장과 협력 관계를 맺어 수익 중 일부를 공정무역 지원금 형태로 노동자에게 돌려주는 시스템이다. 파타고니아는 모든 공정무역 인증 제품에 대해 지역사회 개발을 위한 지원금을 지불하고, 이 돈은 직원들의 생활 임금 수준을 높여 삶의 질을 개선한다. 처음에는 인도 내 세 개 공장에서 열 가지 의류를 만들었지만 2015년에는 33개, 2016년에는 200개 품목으로 그 수를 확대했다. 2020년 현재까지 전 세계 10개 국 6만6천명의 노동자들이 추가 금액을 지원받았다.기업은 이익추구 집단이다. 이익은 새로운 이익의 밑재료로 사용된다. 반면 파타고니아는 환경 위기를 해결하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업을 한다. 이로써 2012년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비랩B Lab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수여하는 인증 마크인 비콥(B Coperation) 자격을 얻게 된다. 비콥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환경, 근로자, 고객, 커뮤니티, 경영 다섯 개 부문의 점수를 합산해 평가하며, 이윤 보다 환경 및 사회적 영향을 우선순위로 고려한 파타고니아는 2012년 캘리포니아주 최초의 비콥 회사가 된다. 비콥 지수는 2년 단위로 재평가 하며 파타고니아의 점수는 첫 해 107점, 2014년 116점, 2016년에는 152점으로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2016년 비콥 전체 평균 점수가 55점인 것을 감안하면 파타고니아의 점수는 월등히 높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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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파타고니아는 월마트와 연합해 지속가능한의류연합(Sustanable Apparel Coalition, SAC)을 설립하고, 2013년 힉 인덱스(Higg Index) 검증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힉 인덱스 프로그램은 의류 및 신발 산업에 관련된 제조 및 유통 브랜드를 대상으로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고 공동체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한 평가 제도다. 브랜드나 제조 공장이 지속가능성에 대해 노력하는 부분을 평가하고 수치화해 제품에 점수를 표기하거나 바이어에게 제공함으로서 소비자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이다. 설립 5년 만에 230개 회사가 연합에 합류했고, 비영리조직과 정부 등이 참여한 큰 조직으로 발전해 7년 만에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의류&신발 연합 조직이 됐다.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 패션 기업들은 SAC의 힉 인덱스 프로그램을 도입해 지난해부터 지속가능한 상품을 상용화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에서는 힉 인덱스를 가져야 상품 판매가 가능하도록 법을 통과시키는 등 환경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사회적 합의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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