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오늘의 기분은 카레
[신간] 오늘의 기분은 카레
  • 김경선 | 사진제공 위즈덤하우스
  • 승인 2020.10.04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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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에게 작은 쉼표가 되는 카레 이야기

‘카레… 좋아하세요? 그렇다면 어떤 카레를 주로 드시나요?’ 오뚝오뚝 일어나는 장난감 이름을 딴 브랜드의 카레뿐만 아니라 일 년 내내 매일 다른 카레를 맛봐도 될 만큼 세상에는 수많은 카레가 존재한다. 들어가는 재료가 한데 어우러져 저마다 다른 색과 향, 풍미를 전해주는 카레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다양한 기분과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 카레를 좋아한 뒤로 매년 300번 가까이 카레를 먹는 진정한 카레 덕후가 들려주는 는 오늘의 나에게 작은 쉼표가 되는 카레 이야기.

접시를 반 정도 비웠을 때 카레에 집중하는 나를 보았습니다. 비 오듯 흘리는 땀도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무언가에 푹 빠진 기분이 새로웠습니다. 고객의 거센 피드백, 끝이 안 보이는 프로젝트, 쌓여가는 집안일, 만성 거북목 통증도 잊었습니다. 접시에 담긴 주황색 액체, 카레에 빠졌습니다.
10쪽

몇 년 전 초겨울, 동료가 회사 근처에 새로운 식당이 생겼다고 알려줬다. 이때만 해도 누가 내게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보면, 내 선택은 ‘아무거나’였다. 딱히 좋아하는 게 없었다. 음식이든 뭐든 말이다. 그러니 회사 주변에 어떤 식당이 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점심마다 별생각 없이 배를 채웠다. 공기식당의 카레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21쪽

‘꼭’ 먹어보라던 비프 카레가 눈앞에 있다. 친구 앞에는 치킨 카레가 놓였다. 수개월 동안 하지 않았던 식사 기도를 했다. “신이시여, 본디 카레를 먹을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카레 소스를 만든 요리사를 축복하시고, 카레를 서빙하는 직원을 축복하시고, 밥이 된 쌀을 키운 농부를 축복하시고, 쌀을 포장할 포대를 만든 공장 직원을 축복하시고….” 감사의 기도는 평소보다 길었다. 모았던 두 손을 떼고, 카레 포트에 있는 작은 국자로 카레 소스를 퍼올렸다.
33쪽

새로움과 변화 앞에서 두려워할 때 카레가 떠올랐다. 살면서 계속 변화해야 한다면, 변화를 따라가는 노력에 시간을 쏟기 전에, 더 늦기 전에 한 번쯤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 온전한 시간을 써보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일 년 정도는 카레에 집중해보기로 하고 퇴사를 결정했다. 퇴사를 하고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회사에 다닐 때보다 일하는 시간을 줄였다. 카레와의 시간을 늘렸다. 도쿄로 카레 여행을 다녀오고, 여행에서 만난 카레들을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번역기를 돌려가며 일본에서 산 카레 요리책에 나온 레시피를 연습했다.
54쪽

지난 삶은 ‘○○ 같아요’로 가득했다. “좋은 것 같아요.” 이상할 건 없으나 조금 자신 없어 보이는 말이다. 카레를 좋아하게 되면서, 적어도 카레를 이야기할 때만큼은 ‘같아요’를 붙이지 않기 시작했다. “카레가 좋아요”라고 말할 수 있다. 다양한 카레 안에서도 나의 취향을 분명히 말한다. 단맛도 좋지만, 요즘에는 감칠맛과 신맛이 강한 카레가 좋다. 카레 덕분에 분명해진 말투를 회사에서 써보기 시작했다. ‘좋은 것 같아요’ 대신에 되도록 ‘좋겠어요’나 ‘좋다고 생각해요’를 쓴다. 작고도 큰 변화다.
56쪽

마음에 부탁했다. ‘일할 때 두려움이 찾아오면 카레를 만나는 일처럼 생각해보자.’ 주어진 상황에서 잘하고 싶은 내 마음을 알아주고 최선을 다하면, 실패하고 후회하더라도 곧잘 ‘다시 해보자’ ‘다음엔 더 잘해보자’ 같은 마음이 자연스레 생길 것 같았다. 카레 덕분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101쪽

‘오늘은 어떤 카레를 먹을까?’ 질문 하나에 반복되는 밥 한 끼가 기다려진다. 시간을 내서 먼 식당으로 카레를 먹으러 가는 길이 설렌다. 새로운 카레를 만나면 심장이 뛴다. 카레에 빠졌을 뿐인데 삶이 조금은 달라진다. 나만의 박자를 찾은 기분이다. 카레 덕분에 삶 곳곳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반응하는 내가 있다.
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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