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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식재료 이야기9] 청포도
[제철 식재료 이야기9] 청포도
  • 박신영 기자 | 양계탁 사진기자 자료출처 농촌진흥청
  • 승인 2020.09.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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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과일 청포도 이야기

계절은 땅의 기운과 인간의 감정을 좌우한다. 가을바람에 감성이 풍부해지듯 대지의 생명은 가지각색으로 무르익는다. 우리는 예부터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제철 식재료를 탐해왔다. 9월에는 여름과 가을 사이 식탁을 푸르게 물들이는 청포도를 만났다.

우리 식탁에 모습을 드러낸 포도
여름의 끝 무렵마다 새콤달콤함으로 입맛을 자극하는 포도. 한두 알 집어 먹다 보면 어느새 나 홀로 한 송이를 전부 먹어 치운다. 허겁지겁 먹는 것이 끝나면 먹다 버린 씨앗들과 파랗게 물든 손가락에서 달콤한 냄새가 솔솔 올라온다. 여름철 대표 별미로 손꼽히는 포도는 언제부터 식탁 위에 올랐을까?

포도가 식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로마제국의 와인 주조법이 퍼지면서부터다. 하층민부터 상층민까지 유럽 사람들은 와인을 즐겨 마셨다. 유럽 역사 드라마에서 거나하게 술에 취한 사람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와인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포도와 포도주는 유럽인에게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받는 식재료였다.

반면, 한반도의 포도 역사는 유럽만큼 오래되지 않았다. 삼국시대 신라 와당의 포도 문양을 시작으로 조선 전기 문신 박흥생이 찬술한 가정지침서 <촬요신서>, 조선 중기 문신 신속이 편술한 농서 <농가집성>, 조선 후기 학자인 박세당의 농서 <색경>에서 포도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문헌 외에도 신사임당의 <포도도>와 국보 107호로 지정된 백자 항아리 백자철화포도문호에서도 포도 그림을 확인할 수 있는데 대부분 이름 높은 가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과일이었다.

1906년에 들어서야 일반인들도 포도를 먹을 수 있었다. 조선 제26대 임금이자 대한제국 1대 황제인 고종이 칙령 제37호를 내려 뚝섬에 독도원예 모범장을 설치하고 ‘블랙 함부르크’ 등 외국 포도 품종 7종을 들여와 재배 시험을 한 것. 그 후부터 경기 안성, 충남 천안, 경북 김천과 상주 등에 대규모 포도단지가 조성돼 매년 9월 시장에서 탐스러운 포도를 만나게 됐다.

캠벨 얼리 VS 샤인머스캣
지난 몇십 년간 포도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한 검붉은 포도 캠벨 얼리. 국내산 청포도 샤인머스캣이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 2017년 이후 조금씩 재배량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포도 하면 떠오르는 품종이다. 그렇다면 캠벨 얼리와 샤인머스캣 두 품종의 차이는 무엇일까.

캠벨 얼리는 1892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캠벨 씨가 무어 얼리Moore Early에 벨비데레Belvidere와 머스캣 함부르크Muscat Hamburg를 교배해 육성했다. 1908년 국내에 도입된 캠벨 얼리는 달콤한 맛으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아 가을철 별미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샤인머스캣은 일본이 원산지다. 1988년 스튜벤과 알렉산드리아를 이종 교배한 아끼즈21호와 하쿠난을 인공 교배해 만든 청포도가 샤인머스캣이다. 2006년부터 샤인머스캣이 국내에 식재되고 2012년 이후 로열티 없이 재배와 수출이 가능해지면서 국내에 샤인머스캣 농가가 차츰 늘었다.

무엇보다 샤인머스캣이 ‘값이 나가도 맛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포도 농가들의 작목 전환이 활발해졌다. 18~20Brix의 고당도는 물론 저온 보관 시 최대 3개월까지 저장이 가능하며 껍질이 얇고 씨가 없어 먹기에도 편하다.

한국산 샤인머스캣은 해외에서도 러브콜을 받는다. 일본산과 품질 차이가 없으면서 저렴하고, 중국산보다 맛이 좋아 베트남, 싱가포르, 홍콩 등으로 날개 돋친 듯 수출된다.

충북 영동 석수농장 샤인머스캣
36년간 포도밭을 일군 석수농장의 포도나무에선 해마다 샤인머스캣 3천2백 송이가 열린다. 이곳의 주인장인 박근수 농부는 부모님의 포도 농장을 물려받아 2년째 샤인머스캣을 키운다. 캠벨 얼리에서 샤인머스캣으로 품종 전환한 지 6년 차, 몇 년 전부터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박 농부를 만나 영동 샤인머스캣의 이모저모를 물었다.

“탄소동화작용으로 만들어진 유기화합물이 포도의 당도를 결정하는데 영동군은 밤낮의 기온 차가 커서 포도의 탄소동화작용이 활발합니다. 영동군이 타지역보다 고당도 포도 재배에 유리한 셈이죠. 게다가 영동군은 소백산맥 추풍령 자락에 자리한 준 산간 지역에다가 일조량이 풍부해 여러모로 포도의 질이 높을 수밖에 없어요.”

석수농장 나무마다 주렁주렁 달린 샤인머스캣을 보자 식욕이 돋았다. 냉큼 한 알을 따 먹자 입안에서 달콤함의 폭격이 시작됐다. 그러나 단맛보다 놀라운 건 껍질이 얇고 씨가 없다는 것.
“석수농장은 씨 없는 샤인머스캣을 재배합니다. 아무래도 껍질이 얇고 씨가 없는 포도가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많기 때문이죠. 씨 없는 포도를 생산하려면 지베렐린 약품 처리가 필요해요. 포도가 꽃봉오리를 맺었을 때 지벨렐린을 바르면 암술과 수술이 성숙하기 전에 꽃이 펴 씨앗이 만들어지지 않죠.”

맛있고 먹기 쉬운 샤인머스캣. 그러나 캠벨 얼리보다 가격이 월등히 비싸 구매하기 망설여진다.

“포도의 원래 가격은 캠벨 얼리 수준이 적당하지만 샤인머스캣의 인기가 고공 행진하다 보니 비싸졌어요.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것이죠. 올해부터 샤인머스캣이 대거 출하될 거예요. 비만 가리는 비가림 하우스 샤인머스캣 농가가 늘었거든요. 비가림 하우스 포도가 10~11월에 출하하면 가격이 떨어질 겁니다. 그러나 현재는 구매처에 따라 가격이 달라요. 동일한 농장에서 출하한 포도라도 백화점, 시장, 농장 등 어디에서 사냐에 따라 몇 만원씩 차이가 나요.”

캠벨 얼리보다 세 배 이상 나가는 가격임에도 시장에 나오는 족족 팔리는 샤인머스캣 덕분에 석수농장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박 농부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고품질 샤인머스캣을 출하하기 위해 매일 새벽 농장으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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