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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순라길, 계동] 사심 가득 골목길 여행
[서순라길, 계동] 사심 가득 골목길 여행
  • 김경선 | 김경선
  • 승인 2020.08.18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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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우아하게 시간을 잃는 법

한적한 평일 오후, 서울의 골목길은 고요했다. 세월이 켜켜히 쌓인 골목길 어귀에는 붉게 녹슨 자전거 한 대만 남아있었다. 사람을 피해 다녀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코로나 시대, 어슬렁어슬렁 골목길을 배회하며 추억을 되새겨본다.

우연히 발견한 숨은 보석, 서순라길
서순라길을 발견한 건 정말 우연이었다. 몇 해 전 종묘에 들른 후 떡볶이 집을 찾으려고 우연히 들어선 샛길이 서순라길이다. 오른쪽으로 종묘의 예스런 담벼락을 끼고 이어지는 좁은 길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20~30년은 족히 됐을 간판, 전성기를 그리워하는 낡은 오토바이, 칠이 벗겨져 빨간 속살을 드러낸 녹슨 자전거…. 옛것의 정겨움이 남아 있는 골목길 곳곳에는 젊은 주얼리 디자이너들의 공방이 드문드문 들어앉았다. 금은방으로 유명한 종로 어귀답게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역량을 맘껏 뽐낸 아름다운 작품들을 쇼윈도에 펼쳐놓았다. 인근의 익선동이 온갖 액세서리로 화려하게 꾸민 주연배우라면,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룬 서순라길은 나만 알고 싶은 소박한 신예 배우랄까.

서순라길은 종로3가 종묘 입구부터 권농동 26까지 창경궁 방향으로 넘어가는 골목길로 종묘를 순찰하는 순라청의 서쪽에 위치한다고 해 서순라길이라고 불린다. 에디터의 첫 방문 이후 서순라길에는 갤러러며 개성 있는 카페, 브루잉 수제맥주집 등이 늘어났다.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와 골목에 활기를 주는 것은 좋지만 익선동처럼 핫플로 변모해 에디터의 애정 리스트에서 빠지는 불상사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종묘 인근에는 무료한 시간을 때우는 노인들, 때 묻은 테이블에 저렴하게 차린 술안주가 전부인 선술집, 스르르 잠이 올 것만 같은 이발소, 이렇게 주인장과 함께 늙어가는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빵빵 대는 경적과 끊임없이 대로를 관통하는 버스를 피해 골목으로 들어서면 차도 사람도 소음도 사라진,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 년을 되돌아간 듯한 풍경을 만난다. 서순라길은 비움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 발을 들이면 번잡한 마음도 비워지는 듯하다.

레트로가 살아 있는 계동 골목길
북촌한옥마을과 맞닿은 계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올드타운이다. 정겨운 골목길에는 오래된 주민들과 소소한 자영업자들이 공존하고 있다. 늘 북적이는 북촌한옥마을과 맞닿은 계동은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동네다.

고풍스러운 한옥이 몰려있는 북촌 일대는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빠르게 상업화 되었다. 특히 삼청동 일대가 그렇다. 한 때는 전통과 현대의 미가 어우러진 힙한 동네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삼청동은 이제 젠트리피케이션의 대명사로 낙인 찍혀 예전의 명성을 잃어 ‘임대문의’가 난무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의 전통미를 찾아 방문하는 국내외 관광객들은 북촌 일대를 맴돈다.

북촌은 에디터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하지만 번잡함을 유독 싫어하는 에디터에게 더 이상 자주 가고 싶은 공간은 아니다. 사람을 피해 골목으로 빠지고, 다시 인적 드문 샛길을 따르다 보면 드디어 번잡함이 추격을 멈춘다. 이제 길은 조용해지고 더 동네다운 동네로 접어든다. 그곳이 계동이다. 계동은 어느 골목으로 들어서도 멋이 살아있다. 방앗간, 이발소, 세탁소, 잡화점, 옷가게…. 작고 소박한 가게들 사이로 빛바랜 철문들이 자리한, 진짜 동네 계동은 서울에서 만나는, 서울의 시골 같은 동네다.

계동에 들어서면 옛추억이 되살아난다. 응답하라 7080. 수십 년 전 개발이 멈춘 동네는 촌스러움이 살아있다. 자그마한 상점 입구에는 주인장의 사진이 걸려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한 곳이 아니라 가게마다 비슷한 콘셉트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계동 일대의 가게들이 전부 사진을 걸어놓은 듯했다. 주인장의 흑백 사진은 계동을 단순한 상업골목이 아닌 이웃이라는 연결고리로 엮어놓았다. 순박한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처럼 친근하게 웃는 사진 속 얼굴은 아련한 추억을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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