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여행] 곤드레 농장 박상봉
[정선여행] 곤드레 농장 박상봉
  • 박신영 기자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0.08.13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쾌한 청년 농부

출장 내내 비가 오더니, 마지막이 되어서야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곤드레 농장으로 향하는 1차선 도로 양옆에는 벌거벗은 뼝대와 옥색 강물이 줄지었고 머리 위에는 새파란 하늘이 있었다.

곤드레 농장은 여량면이라 불리는 산골 마을에 있다. 여량면은 예부터 마을에 항상 농작물이 풍년을 이뤄 식량이 남아돌았다. 가리왕산과 노추산에 폭 들어앉아 산 기운을 듬뿍 받은 구절천과 골지천이 만나 조양강을 이루는 아우라지에서 수량도 풍부하게 흐른다.

곤드레 농장을 운영하는 박상봉 씨는 여량면에서 나고 자랐다. 토마토 농장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어릴 때부터 갖은 농사일을 배웠다. 날 좋을 땐 근처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잣나무에 성큼성큼 올라가 잣 송을 땄다. 털털거리는 농기계를 몰고 농장 이곳저곳을 헤집기도 했다. 박상봉 씨는 전형적인 산골 아이였다.

여량면 일대에서 꽤 큰 토마토 농장을 운영하던 상봉 씨의 가족은 어느 날 위기를 맞는다. 농장은 전부 넘어가고 가진 것은 농기계뿐이었다. 상봉 씨의 유유자적한 유년 시절로 그길로 끝이었다. 대학은커녕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동네 버스에 붙은 ‘한국농수산대학교’ 홍보물을 보고 그는 인생의 갈피를 잡았다. 그는 입학금, 등록금, 기숙사비 전액 면제와 해외 연수를 무료로 제공해준다는 이야기에 한국농수산대학교에 입학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농사밖에 없었다.

상봉 씨는 대학 3년을 미친 듯이 공부하고 정선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농사지을 땅 한 평도 없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남은 농기계를 가지고 동네에서 아르바이트해 농사 자금을 모았다. 씨앗을 사기에는 터무니없는 돈이었지만 농자재상은 상봉 씨의 아버지를 믿고 300만원 어치의 고추와 피망 씨를 외상으로 해주었다.

그의 나이 22살에 시작한 첫해 농사는 대박이었다. 대학에서 배운 농업 기술과 아버지의 농사 경험을 접목해 8천만원의 매출액을 얻었다. 2억이 넘는 빚을 차근차근 갚아 나갔다. 그러나 다음 해 농사는 형편없었다. 농작물은 농사꾼이 얼마나 관리하느냐에 따라 생장이 달라지는데 그해에 상봉 씨에게 복잡한 사정이 생겼다. 결국 농사를 포기하고 농기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급히 상봉 씨를 찾았다.

“아이고, 야야 지금 네가 이거 할 게 아니다. 빨리 와서 곤드레 심어라”

2014년부터 곤드레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상봉 씨는 바로 밭에 곤드레를 심었다. 해발 700m에서 재배되는 곤드레는 심기만 해도 알아서 쑥쑥 자랐다. 질 좋은 곤드레는 소비자가 먼저 알아보는 법. CJ 비비고의 곤드레나물밥을 생산하는 하청업체에서 상봉 씨에게 곤드레 판매를 요청한다. 덕분에 꿈에 그리던 빚을 청산하고 지금은 땅 만 평을 임대해 곤드레를 대규모로 재배한다.

상봉 씨는 8년째 곤드레를 생산중이다. 아직 30세도 되지 않았지만 곤드레에 관한 애정은 남달랐다. 유쾌하고 즐거운 상봉 씨가 기르는 곤드레 역시 생기 넘쳤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