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여행] 마을호텔 18번가
[정선여행] 마을호텔 18번가
  • 박신영 기자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0.08.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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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호텔 18번가

서울에서 내리 2시간 영동고속도로를 타면 평창 진부, 거기서 국도를 타고 또 1시간. 도로가 구불구불해질수록 선명해지는 푸른 산등성이와 선녹색 조양강을 따라 마침내 정선 고한 읍내에 도착했다.

실개천 앞에 주욱 늘어선 나지막한 빈집들과 화려한 전당포가 낯선 호기심을 자아낸다. 허물어진 벽엔 언제 그렸는지 알 수 없는 그림이 흔한데 고개를 돌리면 초호화 하이원리조트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1989년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의 일환으로 강원도 탄광 지역 대부분이 폐광됐다. 폐광부가 늘어날수록 그들의 쉼터였던 고한은 점점 쇠락했다. 사람들은 삽시간에 고한을 빠져나갔고 거리엔 빈집이 수두룩했다.

1995년부터 제정된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2004년까지 6차례 개정됐다. 석탄 산업 사양화로 낙후된 폐광 지역의 경제를 진흥시키자는 목적이었다. 강원랜드와 하이원리조트가 고한에 건설됐고, 도박사들이 고한으로 몰려들었다. 고한 주민들은 강원랜드 덕분에 경제가 살아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거리는 점점 황폐해졌고 탄광 마을의 활기는 점점 희미해졌다.

고한 토박이인 김진용 씨는 터전이 망가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는 2017년 하늘 기획이라는 회사를 고한 18번가로 이전하고 청년 창업 공간인 이음 플랫폼을 개소했다. 2018년엔 유영자 이장과 고한 18번가 협동조합을 구성해 마을로 청년 예술가들을 끌어 모았다. 마을의 기록소인 들꽃 사진관, 주민들의 재능을 키우는 공예품 카페 수작 등 거리에 예쁜 가게들이 생겼다.

처음엔 낙후된 거리를 변경하겠다는 것에 주민들의 반발이 심했다. ‘석탄과 먼지로 가득한 거리를 바꿔봤자 무엇하냐고, 귀찮은 일만 생긴다’는 반응이었지만 유 이장과 김 대표는 주민을 설득했다.

골목의 폐전선과 쓰레기를 치우고 담장을 허무는 것으로 거리는 변했다. 몇몇 빈집이 아름다운 가게로 변신하는 모습을 본 주민들은 하나둘 스스로 집 앞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집 앞에 주차된 자동차를 치웠으며 화단을 만들었다. 고한 18번가 협동조합에서 제공하는 공예 수업을 듣고 LED 야생화를 만들어 대문에 걸기도 했다. 2년 만에 거리는 아기자기한 마을로 거듭났다.

고한 18번가 협동조합은 올해 5월 19일 마을호텔 18번가를 오픈했다. 마을호텔 18번가는 마을 전체를 마치 호텔처럼 운영한다. 빈집을 수리해 호텔을 만들고 마을회관을 컨벤션룸으로 리모델링했다. 골목 상점들은 호텔의 부대시설 역할이다. 골목은 로비, 이음 플랫폼은 프론트, 카페 수작은 커뮤니티 공간, 구공탄구이는 레스토랑, 사진관과 방탈출 카페는 오락 시설인 셈이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톱다운 방식이 아닌 아래로부터 시작된 변화는 단단한 힘을 갖는다. 쉽사리 무너지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고한 주민의 힘으로 일군 고한 18번가는 이곳뿐만 아니라 근처 폐광부의 주거촌도 변화시킬 예정이다. 마을호텔 18번가의 2, 3호점을 오픈해 고한을 아름다운 여행지로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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