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남동부 시간 여행
터키 남동부 시간 여행
  • 이지혜 | 사진제공 터키문화관광부
  • 승인 2020.07.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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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르우르파부터 넴루트 산까지

전설 속 미지의 땅 터키 동서부로 떠났다. 샨르우르파ŞANLıURFA에서 모든 종교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의 흔적을 만났다. 초고대문명 괴베클리 테페Göbeklitepe에서는 지구의 시간을 재정립해야 하는 근거를 눈으로 확인했다. 산꼭대기에 걸친 넴루트Nemrut에서는 황망한 산을 휘어 싼 뜨거운 욕망의 유적을 마주했다.

시간 여행자의 도시, 샨르우르파
이스탄불에서 국내선으로 두 시간. 국경과 인접한 터키 남동부의 샨르우르파 공항에 다다르자 사막처럼 메마른 땅이 내려다보인다. 화려한 이스탄불의 조명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눈으로 확인하며, 이곳이 과연 같은 터키가 맞는지 갸웃댔다. 아직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샨르우르파는 성경과 코란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탄생지로 다양한 종교적 신화의 배경이 되는 성스러운 도시다.

샨르우르파는 ‘예언자들의 고향’, ‘선지자들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하란과 더불어 3대 종교인들의 성지순례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기독교에서 179년 기독교가 국가 종교로서 공인된 최초의 도시 에데사를 이곳 샨르우르파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샨르우르파에서 가장 성스럽게 여겨지는 발륵르 골Balıklı Gol 연못을 찾았다. 전설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이곳에서 화형 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불은 물로 만들어졌으며, 장작은 물고기로 변했다. 이곳 사람들은 연못에 사는 물고기조차 성스러이 여겨 절대 잡지 않는데, 이 물고기를 잡아먹을 경우 큰 불행이 닥친다고 전해진다.

성스러운 전설을 간직한 이곳은 작은 도시 샨르우르파 시민들의 나들이 장소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연못 주위를 가볍게 산책하거나 인근 공원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공원에는 아브라함의 무덤을 모신 사원이 있고 시내 중심부 근처에는 그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동굴도 자리한다.

해가 넘어가면 샨르우르파는 다른 색깔을 낸다. 성 중턱까지 오르면 새로운 도심의 야경을 구경할 수 있다. 일대의 전통 음악과 춤을 구경할 수 있는 고급 레스토랑, 고대 동굴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전통적인 커피숍 등 땅거미 진 어둠을 밝히는 예언자들의 도시가 반짝, 하고 활기를 찾는다. 어디를 가든 말간 웃음과 부끄러운 친절함을 내미는 소박한 사람들의 도시, 샨르우르파 올드타운의 첫날이 그렇게 지났다.

인류 역사를 새로 쓰는 유적
샨르우르파를 찾은 진짜 이유는 괴베클리 테페 때문이다. 이곳으로의 여정은 한국에서부터 나를 잠 못 들게 했다. 세계 역사학계를 들썩이게 한 고대 유적으로 1963년 처음 발견돼 지난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이곳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신전이다. 얼마나 오래됐냐면,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1만 천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록은 스톤헨지나 피라미드보다 최소 6천년 이상 앞선다. 말 그대로 역사를 재정립해야 할 가장 따끈따끈한 증거가 발굴되고 있는 곳이다.

샨르우르파 도심에서 40분가량 피스타치오 가득한 밭을 달리면 해발 760m 언덕 정상에 자리한 괴베클리 테페를 마주할 수 있다. 잘 정리된 계단을 따라 오르니 둥글게 조성된 관람객용 통행로 아래 폐허가 된 고대 신전의 모습이 나타났다. 거의 형태만 남은 원형의 돌무더기가 모여있고, T자 형태의 석회암 기둥이 사방에 솟아 있다. 이런 기둥은 현재까지 200개가 넘는다. 석재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여러 동물의 형태가 새겨져 있다. 토기도, 바퀴도 없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 시대에 인류가 어떻게 거대한 석회암 덩어리를 옮겨 다듬었을까?

존재만으로 미스테리함을 증폭시키는 괴베클리 테페는 터키어로 ‘배불뚝이 언덕’이라는 뜻이다. 기존의 학설에 따르면 인류가 이토록 거대한 유적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노동력, 그전에 농경 생활에 따른 사회적 계급과 종교가 존재해야 한다. 괴베클리 테페는 존재 자체로 역사의 시간적 가설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심지어 현재까지의 발굴 규모는 전체의 10% 정도이다. 탄소 측정기에 따르면 이들의 연대는 매머드가 활동하던 시대인 플라이스토세에 해당되는 1만 4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이는 현재까지 발견된 어떠한 문화 유적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괴베클리 테페는 1996년부터 2014년까지 발굴을 주도했던 독일의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 교수에 의해 대대적인 조사가 이뤄졌다. 슈미트 교수는 돌기둥 속 동물 형상들이 수렵의 사냥감으로 묘사된 것이 아니라, 신격화된 형상의 사자나 거미, 뱀, 전갈 등의 다양한 동물이라는 점에서 이곳이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지어진 사원이 아닌, 죽은 자들을 보호하는 신들을 모시는 장소로 해석했다.

가이드에 따르면 최소 60년이 더 걸려야 나머지 유적이 발굴된다고 한다. 지구의 역사를 뒤바꿀 수 있는 키를 쥐고 있는 땅에 서있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다. 1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땅속에서 몸을 숨기고 이제야 일부분만을 내어놓은 괴베클리 테페를 바라보고 있으니 지금의 현실이 우주의 점처럼 작게 느껴졌다.

물에 잠긴 유적, 할페티 보트 투어
할페티Halfeti는 샨르우르파에서 1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소도시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연산 흑장미가 자라는 곳 정도로 알려진 이곳은 사실 물에 잠긴 마을로 더욱 유명하다.

1990년대 정부의 농업, 경제 정책으로 댐을 건설하면서 사바산, 룸크엘레, 이스키 할페티 마을 세 곳이 물에 잠겼다. 당시 3만여 명이 이로 인해 새로운 마을로 이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물에 잠겨있는 유적 덕분에 관광객이 늘었다. 물가에서는 아이들이 수영을 하고, 시간이 삼킨 마을은 연인의 데이트 장소가 됐다. 강변을 따라 플로팅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고 물 위로 튀어나온 뾰족한 지붕은 과거 이곳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상상하게 한다.

이곳에는 다양한 보트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보트를 타고 돌며 물에 잠긴 과거 마을을 구경할 수 있는데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거품 파티를 하는 것부터 조용한 가이드 투어, 2층 보트, 터키의 전통 혼례식으로 꾸며진 화려한 보트 등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터키의 혼례식이 연상되는 화려한 보트를 타고 할페티의 잠긴 유적을 둘러보기로 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은 조용한 호수를 가로지르며 뾰족한 성과 과거의 마을을 떠올렸다. 과거, 이곳은 아시리아 사람들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장소였다. 성벽 안에 숨겨진 도시는 독특하고 성스러운 존재였다. 푸른 물과 튀어나온 암석, 요새로 사용되던 벽을 영겁의 시간이 지난 뒤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 속에 뒤엉켜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가이드와 터키 안내자가 배 위에서 전통 터키 춤을 추기 시작했다. 흥겨운 음악에 어느새 관광객들도 어울려 춤을 추고 있다. 과거의 부흥을 뒤로하고 물에 잠긴 도시. 잔잔한 호수 위의 들썩이는 배 위의 춤. 이질적인 풍경을 뒤로하고 배 뒤편으로 빨간 노을이 펼쳐지고 있었다.

신이 되고자 했던 왕의 욕망, 넴루트 산
터키 동서부 여행의 종지부를 찍을 하이라이트, 신들의 산으로 불리는 넴루트 국립공원Nemrut Mountain National Park or Nemrut Dağ으로 가기 위해 새벽부터 바지런히 움직였다. 샨르우르파에서 차로 두 시간이면 도착하는 아드야만Adıyaman은 넴루트 산을 가기 위한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도시다. 일출 시각에 맞춰 꼭대기에 도착하기 위해 어둠이 내려진 길을 달려 입구에 도착했다.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두꺼운 겉옷과 담요를 들고 올라가는 사람들 사이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맞췄다.

꼭대기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해가 뜨고 환해져 고개를 돌렸을 때, 나도 모르게 터지는 탄성을 막을 수 없었다. 산의 꼭대기에는 거대한 바위로 만든 수많은 조각상이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넴루트 산은 기원전 1세기경, 유프라테스 유역과 시리아 북쪽에 건설된 콤마게네Commagene 왕국을 다스린 안티오쿠스 1세의 무덤이다. 안티오쿠스는 넴루트 정상의 동쪽과 서쪽에 거대한 테라스를 만들어 성소를 설치하며 스스로를 신격화하고자 했다. 왕은 그리스와 페르시아 신화 속 신들 사이에 그의 석상이 함께 자리하도록 했다. 오랜 세월 동안 지진으로 인해 얼굴과 몸이 분리된 채 신과 나란히 앉아 있는 안티오쿠스의 석상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왕은 결국 신이 되지 못한 채 왕국의 짧은 역사와 함께 사라졌다.

예언자의 도시 샨르우르파, 욕망의 무덤을 간직한 넴루트로의 여행이 끝나간다. 모든 종교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이 살아 숨 쉬는 도시를 걷고, 신이 되고자 했던 욕망의 무덤을 탐험했다. 과거로의 여행을 끝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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