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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킹, 영원의 맥주
더 킹, 영원의 맥주
  • 글 사진 정다솜
  • 승인 2020.06.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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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nness, Ireland

2015년 5월 16일 오후 15시 50분, 더블린의 기네스 스토어 하우스 4층. 나는 어느 문 앞에 바투 붙어 서서 ‘Private. 사전 예약자만 출입 가능’이라 쓰인 팻말을 보고 있었다. 손에는 스물다섯 번째 생일을 자축하며 스스로 특별히 선물한 티켓이 들려있었다. 시곗바늘이 오른쪽으로 몇 차례 더 움직이고 딸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안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The Connoisseur Bar’로 통하는 문이 드디어 열린 것이다.

티켓을 확인한 바텐더가 내 이름이 적힌 자리로 안내했다. 적절한 조도에 적절히 서늘한 온도, 18세기와 21세기가 적절히 어우러진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바였다. 곧이어 나타난 다른 이들이 착석을 마친 뒤 참석자들은 서로 짧은 자기소개를 나눴다. 두 시간에 달하는 전문가 시음 코스의 장막이 정말로 오를 시간. 본인을 ‘머레이’라고 소개한 바텐더가 미소를 머금은 입을 뗐다. 환영합니다, 여러분. 세계 최고의 흑맥주, ‘기네스Guinness’의 고향에 오셨군요.

천하제일의 흑맥주를 뵙습니다
황금색 맥주가 다 같은 스타일이 아니듯 ‘흑맥주’ 역시 크게 에일과 라거로 나뉘고 여럿의 하위 스타일로 구분된다. 그러나 유독 기네스만은 스타일 구분에 구애받지 않는 독보적 장르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1759년 개업 이래 260년 가까이 스타우트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흑맥주 부문에서 판매 1위를 놓친 일이 거의 없는 데다, 무려 150여 나라에서 절찬리에 판매되는 중이고, 20억 파인트(=11.4억ℓ)에 달하는 생산량을 자랑해서다. 맥주 업계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린 지 한참 되었어도 기네스의 단일 브랜드 파워는 여전히 최상위권이다. 그저 우러르게 되는 제왕적 존재랄까. 짙은 흑색에 루비색이 옅게 비치는 맥주를 마셔보면 뭐, 수긍이 간다. 실크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거품이 쓸고 간 자리에 살포시 입혀지는 다크 초콜릿의 절제된 단맛과 견과류의 고소함, 커피의 쌉싸름함. 참 군더더기 없는 맛이다. 그 맛이 몸소 보여준다. 기네스가 가진 권위와 견고함의 원천을.

포터는 뭐고 스타우트는 또 뭐람
기네스의 정확한 스타일명은 ‘아이리시 드라이 스타우트Irish Dry Stout’이며, 스타우트는 기네스로 인해 공고화된 맥주 스타일이다. 스타우트의 유래를 살짝 엿보기 전에 포터Porter도 짚고 가면 좋다. 지금이야 구분에 의미를 두지 않고 혼용하긴 하나 어쨌든 둘 사이에는 엄연한 선후 관계가 있고 스타우트는 포터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17세기 영국은 맥주의 출고가와 도수에 따라 서로 다른 세율을 적용했다. 초기엔 세율 자체가 원체 낮아서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 왕위 계승을 둘러싼 다툼 전개로 변곡점을 맞았다. 정부는 세수를 올리고자 세율을 올렸고, 가격과 도수에 따른 세금 차이가 벌어지니 업자들은 세금을 덜 내기 위해 맥주를 섞어서 팔았다. 이후 세제가 바뀌었지만 대중의 입맛은 이미 섞은 맥주에 길들여져 있었다. 특히 짐꾼을 위시한 육체노동자들에게 크게 사랑받아서 맥주 이름을 포터라 불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맛과 종류의 포터가 등장했다. 그중 도수가 높고 맛이 진한 부류를 엑스트라Extra, 스타우트 등으로 불렀다.

가문의 이름을 걸고 만든 영광
1759년 12월 31일, ‘아서 기네스’는 더블린 시내의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 주변에 방치돼 있던 낡은 양조장을 임대했다. 9000년 동안 연 45파운드를 지불하는 계약 조건이었다. 양조장 감독관이었던 아버지 아래서 어릴 적부터 맥주 보는 눈을 키운 아서는 런던에서 촉발한 포터의 인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고, 곧바로 포터를 생산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이후 가업을 물려받은 아들 아서 기네스 2세가 레시피를 바꿔서 보통의 몰트 대신 태우듯 볶은 보리인 ‘로스티드 발리’를 넣는 변화구를 던졌다. 결과는 대성공. 영국 본토의 포터보다 풍부하고 씁쓸한 맛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아서 2세는 이 맥주를 브리티시 포터가 아닌 세상에 없던 이름, 아이리시 스타우트로 명명했다. 길이길이 이어질 기네스 가문의 영광이 탄생한 것이다.

온고지신의 도덕책
기네스는 신기술을 적극 활용한 맥주로 유명하다. 일찍부터 과학계 인재를 모아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결과, 수학자 마이클 애쉬가 이끄는 연구팀은 1959년 세계 최초로 질소를 주입한 맥주 거품 만들기에 성공했다. 기네스의 트레이드 마크로 꼽히는 두텁고 조밀한 거품과 부드러운 질감은 요 질소가 만들어내는 특징으로, 이 시기에 확립됐다. 나아가 1988년에는 영국 왕실 기술 대상에 빛나는 발명품까지 개발하기에 이르렀으니. 바로 질소 주입 장치 ‘위젯Widget’이다. 탁구공만 한 크기의 플라스틱 구슬인 위젯은 ‘기네스 드래프트’ 캔 내부에 담겨있는데, 캔이 오픈됨과 동시에 맥주 표면으로 떠올라 미세한 구멍 사이로 질소를 분출해낸다. 이 놀라운 장치 덕에 소비자는 펍을 가지 않고도 집에서 생맥주(Draft)와 똑같은 최상의 기네스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기네스는 수백 년의 전통과 고유성을 굳건히 유지하면서도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에 발맞춰 혁신을 이뤄낸 예시다.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발간한 양조장
천재적인 마케팅 능력도 기네스의 또 다른 자산이다. ‘성경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다름 아닌 맥주 양조장에서 만들어졌을 줄이야. 전 세계의 각종 최고 기록들을 엮어낸 책, 흔히 '기네스북‘이라 알려진 그 책 얘기가 맞다. 정식 명칭은 ’기네스 세계기록'. 실제로 기네스에서 매년 발간 중인 기록물이다. 1955년, 기네스의 대표이사 휴 비버는 ‘유럽에서 가장 빠른 사냥용 새’를 놓고 친구와 언쟁을 벌이던 중 기네스북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스포츠펍에서 술안주 삼아 떠들만한 잡학들에 주목했고, 통계 자료를 덧붙여줄 전문가까지 대동해다가 온갖 기이한 기록을 집합시킨 책을 만들었다. 다소 엉뚱해 보이던 전략은 명중했다. 기네스북은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기네스라는 브랜드를 전 지구에 알렸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37개 언어로 번역되어 40개국에 걸쳐 8천만 부가 팔린다고 하니 대단하단 말밖에. 재미로 한국이 보유한 기록 한두 개만 추려보자면 방송인 강호동은 ‘하루 동안 쉬지 않고 가장 악수를 많이 한 사람’으로, 정동진역은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으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온 나라가 사랑하는 맥주의 품격
더블린 공항 입국장에 들어서면 초대형으로 제작된 기네스 광고판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 나라의 모든 펍에는 당연히 기네스가 있다. 양조장이 설립된 이후 오늘날까지 260년 동안, 기네스는 매년 3월 17일에 돌아오는 아일랜드 최대 명절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 축제를 후원해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붕괴 위험에 처했던 세인트 패트릭 성당을 살렸으며 형편이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 의료 혜택을 제공해 왔다. 국내 소비자의 뿌리 깊은 충성도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선순환을 이루기에 가능한 일이다. 더블린 인구 절반이 기네스로 먹고산다는 말은 과연 과언이 아니며 기네스 로고가 아일랜드의 영혼이라 여겨지는 켈틱 하프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온 나라가 이 맥주를 사랑하고, 맥주 역시 온 나라를 사랑한다.

클래스는 영원하리
네 가지 라인업을 맛보며 기네스의 모든 것을 샅샅이 들여다보는 두 시간의 여정이 끝나고, 머레이의 노고에 감사하는 참석자들의 박수가 잦아들자 그가 꽉 조여진 제 넥타이를 잡아 느슨하게 풀며 말했다. ‘이제 기네스를 빼놓고 아일랜드를 얘기할 순 없다는 생각입니다. 누군가는 비약이라고 할지 몰라도요.’ 4층을 떠난 나는 그래비티 바Gravity Bar로 향했다. 양조장 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할 기네스 한 잔을 받아들고 더블린 시내를 굽어봤다. 양조장 너머 멀리 피닉스 공원과 세인트 패트릭 성당, 트리니티 대학과 리피 강의 운하까지 보였다. 그들을 찬찬히 훑는 동안 맴돈 것은 머레이의 말이었다. ‘기네스는 아일랜드에서 맥주 이상의 그 무엇이 된 지 이미 오래됐어요.’ 부럽다, 고 생각했다. 한 모금을 크게 들이켜자 그가 바에서 들려줬던 하프 선율과 닮은 부드러움이 입안 가득 퍼져 흘렀다. 아마도, 영원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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