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취하다, 아침고요수목원
꽃에 취하다, 아침고요수목원
  • 박신영 기자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0.06.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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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콘텐츠로 버무러진 가평의 정원

‘아침고요수목원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그렇다면 왜 진작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을까. 원인을 찾기 위해 기억을 되짚었다. 6년 전 아침고요수목원에서 한겨울 조명 축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덜컥 ITX 청춘열차에 탑승했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자리는 화려한 조명으로 물들어 있었다. 미끄러운 바닥을 조심히 지르밟으며 수목원으로 입장하는데 동행한 아이가 괜한 투정을 부린다. 생각보다 별로라는 둥, 춥다는 둥, 꽃은 어딨냐는 둥. 세상에 이 겨울에 꽃이 있을 리 만무하건만 그 아이는 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자꾸만 해대는지. 그 짜증을 받아내다 못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수목원에서 나와 아이와 헤어졌다. 여행 후기를 묻는 엄마에게 “몰라 별로였어”라는 말을 끝으로 아침고요수목원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5월의 어느 날씨 좋은 낮, 전익기 숲 해설사와 함께 다시 아침고요수목원을 방문했다. 매표소를 지나자 해설사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시작됐다. 1993년 삼육대 원예학과 한상경 교수가 한국의 미를 알리고자 이곳을 오픈했다. 본디 화전민이 정착했던 가평 축령산 한 자락에 열 개의 테마 정원을 조성했다. 곡선, 여백, 비대칭의 균형미를 담아 한국의 우아함과 멋스러움을 그대로 전하기 위함이다. 야생화, 수국, 국화, 튤립을 포함 약 5천여 종의 식물이 아침고요수목원을 다채롭게 물들이는데 곳곳에 아기자기한 포토존을 마련해 남녀노소에게 모두 즐거운 산책을 선사한다.

관람객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출렁다리다.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나 파주 감악산 출렁다리처럼 짜릿한 맛은 없지만 무궁화동산과 허브정원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 대표 포토존으로 손꼽힌다.

분재정원을 지나면 이곳의 대표 나무인 천년향이다. 안동 당산목으로 지난 1000년간 보존됐다가 이곳으로 새롭게 터를 잡은 천년향. 절제된 곡선, 우아한 나뭇가지, 이리저리 꼬아진 기둥이 천년의 세월을 짐작하게 한다.

J의 오두막 정원은 영국의 목가적인 정원을 재현한다. 영국 코츠월드의 비버리 마을에서 영감받았으며 코츠월드 지방의 건축 양식과 재료로 제작됐다. 나지막이 펼쳐진 들꽃 뒤로 아담한 가정집이 연출됐는데 그 앞에 서면 마치 18세기 유럽의 시골 아낙네가 된 듯하다.

아침고요수목원 가장 안쪽으로 향하면 하얀 교회가 등장한다. 단 여섯 명이 입장할 수 있는 자그마한 교회로 특별한 때마다 예배를 진행하는데 평소에도 관람객이 들고 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뒀다. 일본잎갈나무 군락지 앞으로 줄지은 튤립과 하얀 교회의 조화로움에 넋을 놓게 되는 건 당연지사다. 할 수만 있다면 이곳에서 웨딩 촬영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이외에도 양반집 대청마루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한국정원, 붓꽃과 연꽃이 우아함을 더하는 서화연, 피톤치드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아침고요산책길 등 이곳을 둘러보려면 한나절도 모자를 성싶다.

기억의 파편들과 달랐던 아침고요수목원. 화려함보다는 소박함, 요란함보다는 고요함으로 비밀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언제고 다시 방문하게 될 이곳에서의 추억이 머릿속 새로운 퍼즐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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