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란 참 신기하다. 감각이 그때와 같다는 이유만으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기억이 떠오른다. 기분 좋은 햇살이 유리창을 뚫고 들어올 땐 주말 아침의 침대가 생각나고 펄럭이는 셔츠 밑단이 손목에 닿으면 평일 오후 3시의 한강이 연상된다. 이 느닷없는 기억은 여행할 때 더욱 심해지는데 그때마다 풍부한 감수성이 온몸에서 뿜어진다.
이번 쁘띠프랑스 탐방도 마찬가지였다. 분수대에서 튀는 물방울과 차양에 반쯤 가려진 테이블 그리고 무심하게 놓인 아이스커피 한 잔이 노천카페를 연상시켰다. 게다가 청각을 홀리는 샹송과 시각을 사로잡는 빨간 지붕이라니. 모든 공감각이 프랑스 남부의 프로방스로 향할 수밖에.
아담한 광장을 중심으로 좁고 길게 뻗은 건물은 목재 골조가 밖으로 드러난 독특한 전통 건축 기법인 콜롱바주 양식을 따른다. 만화 영화 <미녀와 야수> 여주인공 벨이 책을 빌리러 가는 장면 중 마주치는 건물이 바로 콜롱바주 건물이다. 원형 분수대, 외벽마다 걸린 귀여운 철제 간판, 대문 밖으로 늘어선 빈티지 가게 역시 프랑스의 추억을 소환한다.
골목마다 특색을 자랑하는 건물엔 볼거리도 가득하다. 입구에 위치한 유럽 인형의 집엔 19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제작된 삼 백여 개의 인형이 전시됐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것부터 희귀한 것까지 다양하다. 귀엽고 예쁜 인형도 있지만 약간의 공포를 유발할 만큼 사실적으로 제작된 인형도 있어 취향을 탈 것 같다.
프랑스의 전통미를 보이는 전시관도 여럿 있다. 150년이 넘은 프랑스 고택을 통째로 옮긴 프랑스 전통 주택 전시관에서는 18세기 프랑스 생활상을 엿 볼 수 있다. 벽 전면을 채운 화려한 접시부터 고풍스러움이 물씬 느껴지는 탁자와 빛바랜 액자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칠 것이 없다.
프랑스 전통 주택 전시관 뒤로는 프랑스 청년과 여인의 방이 전시됐다. 두 개의 아담한 건물엔 18세기 프랑스 부유층 자녀들의 생활상이 자리한다. ‘메종 드 장’과 ‘메종 드 마리’라는 전시관 이름은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던 이름을 차용했다. 프랑스 부유층답게 가구와 소품 하나하나 고급스럽다. 도자기 명가인 독일 마이센에서 제작한 도자기 인형,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 귀여운 커튼, 굴곡미가 느껴지는 테이블 등 영화에서 봤던 고급 가구들이 주류를 이룬다. 어린 시절 한 번쯤 꿈꿨던 방이 눈앞에 나타나다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카메라를 켜게 된다.
진정한 감탄사는 앤티크 도자기 전시관에서 터진다. 1700~1900년대까지 독일 마이센과 드레스덴에서 만든 명품 도자기 인형이다. 고작 주먹만 한 크기의 도자기 안에 실감 나는 표정, 옷자락의 구김, 근육의 형태, 화려한 빛깔 등이 전부 담겼다. 보통 좁은 공간을 빽빽이 채우면 조악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명품은 명품이다. 자세히 살펴볼수록 도자기에 대한 경외심이 든다. 손을 대면 와르르 무너질까 봐 눈으로만 감상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다. 프랑스 사람들이 독일 도자기 인형을 그토록 사랑했는지 알 법하다.
이외에도 생택쥐베리 기념관, 프랑스 전통 놀이방, 유럽 동화 의상 체험실, 갤러리 꼬르다쥐르 등 프랑스를 보고 느낄 공간이 있으며 봉쥬르 산책길, 나비공원, 뽕드 파브르 등 산책로도 있다. 매일 열리는 오르골 시연과 마리오네트 인형극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