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모험가 부부] 봄과 여름 사이, 섬으로
[생활모험가 부부] 봄과 여름 사이, 섬으로
  • 이수현 | 최상원
  • 승인 2020.06.1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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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이작도 백패킹

봄에서 여름으로 향하는 이 계절이면 문득 섬으로 마음이 기운다.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날씨가 섬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리라. 되도록 처음 가보는 곳이 좋겠다. 왠지 모를 낯섦이 우리를 섬으로 이끌었다.

#어떤 날씨라도 괜찮아
배를 타기 위해 이른 아침 인천 연안부두로 향했다. 공항과 항구가 있는 도시 인천. 이곳을 통해 해외로 나가거나 배를 타고 외딴 섬으로도 나갈 수 있다. 그래서일까. 현실과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관문을 향하는 것처럼 인천을 갈 때마다 미지의 세계와 가까워지는 듯 설레곤 한다.

두 시간여 배를 타고 오늘의 목적지인 인천 옹진군 대이작도에 도착했다. 서해의 다른 섬은 몇 번이고 가봤지만 여기는 처음이다. 출발할 때만 해도 비가 내리고 잔뜩 흐렸던 하늘에 악천후를 각오하고 왔건만 대이작도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은 맑고 청명해졌다. 다년간의 아웃도어 활동을 하면서 오락가락한 날씨에는 이미 익숙해졌지만 이렇게 예상치 못한 햇살엔 늘 무방비상태로 미소가 새어 나온다. 난데없는 소나기나 난데없는 햇살 등 그 어떤 날씨라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을 그동안 자연에서 배워왔기 때문일까.

#무심한 듯 따뜻한
항구에서 야영장이 있는 작은 풀안해수욕장까지는 도보 30분 정도다. 버스가 없는 작은 섬 대이작도에서는 걷거나 자가용을 이용하거나 둘 중 하나다. 펜션 이용객들은 삼삼오오 마중 나온 펜션 차를 타고, 백패커인 우리는 기분 좋은 햇살을 받으며 뚜벅뚜벅 걸어가기로 한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아까 손님을 태우고 지나갔던 펜션 미니버스 문이 열리며 기사님이 어서 타라 손짓하신다.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라며 무심한 듯 건넨 그 한 마디에 따뜻함이 절로 배어 나온다.

친절한 기사님 덕분에 편하게 작은 풀안 야영장에 도착했다. 해변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소담하고 전망 좋은 야영장, 부지런히 첫 배를 타고 온 덕분에 아직 열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다. 해변 나무 방갈로에 짐을 풀고 잠시 쉬기로 한다. 맑게 갠 하늘과 푸른 바다. 제법 먼 곳으로 나온 것 마냥 이국적인 풍경에 나른해지고 노곤한 기분에 낮잠이 쏟아질 것만 같다.

#소박한 섬의 일과
취사가 가능한 야영장이지만 음식은 데워먹을 수 있을 정도로 준비했다. 메뉴는 구운 주먹밥과 순살 치킨. 소박한 백패커의 식탁이지만 타프도 필요 없는 소나무 그늘에 있으니 이마저도 훌륭한 정찬이다. 다행히도 야영장 인근 매점과 식당도 정상 운영 중이라고 한다. 내심 든든해진다. 푸르른 바다 뷰, 깨끗한 화장실과 개수대, 거기에 매점과 식당까지 있는 야영장이라니. 첫 만남이지만 이곳에 마음 한 조각 놓아두고 싶어졌다. 해루질하는 이들의 바지런한 움직임으로 늦은 시간까지 분주하던 서해 밤바다. 잔뜩 흐리던 아침의 풍경은 꿈이었던 것처럼 밤하늘마저 맑고 반짝였다.

올해 처음으로 삼계절 침낭을 가져왔다. 혹시 추울까 봐 우모 재킷과 핫팩을 챙겨왔는데 바닷바람이 차긴 해도 삼계절 침낭만으로도 충분한 밤이다. 이 정도로도 충분한 밤. 한결 가벼워진 계절이 이제야 실감이 난다. 바닷가와 한참 먼 곳에 자리했는데도 텐트 안에 있으니 파도 소리가 더 가까이 들리는 것만 같다. 쏴아아, 쏴아아,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유난히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조금 더 가까워진 우리
다음 날 아침, 갈매기 소리를 알람 삼아 일찍 눈을 떴다. 도시에선 아침잠이 많은 나인데 묘하게도 자연에만 오면 일찍 눈이 떠진다. 부지런히 커피를 내리고, 토스트를 굽고, 소시지를 구워 아침을 마련했다. 오후 배라 시간은 여유 있지만 섬을 좀 더 둘러보고 싶어 아침부터 조금 바지런히 움직여보기로 했다. 음식도 다 먹었고 물도 마신 덕분에 올 때보다 배낭 부피가 많이 줄었다. 가벼워진 배낭을 메고 섬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점심엔 인근 식당에 들러 해물이 잔뜩 들어간 칼국수도 먹었는데 해물의 종류가 도시와는 사뭇 다른 것이 신기하다. 인심 좋게 내어주시던 반찬들과 푸짐한 정성에 마음마저 푸근해졌다. 백패킹이나 캠핑을 할 때 한 끼는 캠핑장 인근 음식점에서 맛보는 것이 좋다. 이렇게 자연스레 지역의 음식을 맛보면 조금이나마 이곳과 가까워지는 마음이 들곤 하는 것.

인천으로 돌아가는 배에 올라타 멀어지는 섬을 바라보았다. 고작 1박 2일 있었을 뿐인데도 벌써 그립고 아련해진다. ‘또 이곳에 마음을 줘버렸구나’ 싶어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생활모험가 부부
사진가 빅초이와 작가 블리는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생활모험가 부부입니다.
일상과 여행, 삶의 다양한 순간을 남편 빅초이가 찍고 부인 블리가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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