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삭풍에게 이별하는 법을 배운다 - 몽골 유목민의 아들 지지게
시베리아 삭풍에게 이별하는 법을 배운다 - 몽골 유목민의 아들 지지게
  • 글 사진·안광태 여행작가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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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흡스골 호수의 악동 지지게와 할머니의 해맑은 미소.
도끼는 손가락만한 불쏘시개 하나 제대로 쪼개지 못하고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장작개비처럼 마른 노파의 손이 다시금 도낏자루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장작 패는 일이 그녀에게는 아름찼는지 연방 헛손질을 해댔다.

“싸인 바이나 우(sain bai-na uu, 안녕하십니까)?”
뜬금없이 나타난 젊은이에 당황했는지 그녀는 멀거니 바라만 보았다.
“그 장작 제가 쪼개드릴게요. 도끼 이리 주세요.”
말도 통하지 않는 젊은이의 선심이 그다지 달갑지 않은 듯 노파는 대답이 없었다.

“뭐 하세요, 도끼 달라니까요?”
그래도 젊은이의 재촉이 계속되자 노파는 머뭇거리며 도끼를 건넸다.
“아이고! 이게 도끼날이야? 차라리 숟가락으로 장작을 패지.”

도끼날은 무디다 못해 뭉툭한 망치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자루 끝이 문드러져 휘두를 때마다 도끼머리가 떨어져 나가 도무지 장작을 팰 수 없었다. 하지만 해가 서산 자락을 어슬렁거리는 바람에 급한 대로 도끼 자루와 날을 손보고, 근처 숲에서 좀 더 많은 나무를 주워 장작 한 더미를 팼다. 녀석이 돌아온 것은 그때였다.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제와 실크로드를 열어 로마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한 무제가 죽을 때까지 두려워했던 민족이 있다. 바로 흉노족이다. 동아시아를 호령했던 당태종을 항상 근심하게 만들었던 민족이 있다. 돌궐족이다. 전 세계가 그들 앞에서 벌벌 떨어야 했던 민족이 있다.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족이다. 그들은 모두 지금의 몽골 땅에서 시작하여 말과 낙타를 타고 대초원과 사막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바꿨다. 그런데 그들은 초원과 사막만을 가로질렀던 것이 아니다. 그 땅에는 아름드리 침엽수들로 가득 찬 산림지대가 있고, 드넓은 호수와 까마득한 설산들이 하늘을 찌르는 산악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지지게를 만난 것은 흡스골(Hovsgol) 호수 트레킹의 초입에서였다. 머리가 길어 처음에 계집아이인 줄 알았던 지지게는 사내아이였다.

우리 식으로 치자면 다섯 살인 녀석은 노파의 외동 손자였다. 소꿉동무가 사는 건너편 게르(몽고 사람들이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둥근 천막)에 놀러 갔던 지지게는 그 집 식구들과 함께 저녁 무렵에 돌아왔다. 추위 때문에 녀석의 얼굴은 틀대로 터 있었고, 옷차림은 개구쟁이에 걸맞게 꾀죄죄했다. 얼굴 가득 장난기를 담고 요란하게 등장한 녀석은 처음부터 말썽을 피웠다.

이방인 아저씨가 낯설지도 않은지 다짜고짜로 자기와 놀아 달라고 졸라대지를 않나, 제멋대로 배낭을 뒤져 있는 대로 꺼내 놓고 소꿉질을 하지 않나, 그러던 녀석은 자기가 장작을 패겠다고 도끼를 달라 떼를 썼다.
“이것은 위험해서 안 돼. 얼른 들어가지 않으면 맴매다.”

▲ 가축을 몰고 목초지를 떠도는 칭기즈칸의 후손들.
그래도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녀석에게 꿀밤을 한 대 먹였더니, 이번에는 호수가 떠나가라 울어댔다. 알사탕 하나로 간신히 녀석을 달래놓고 저녁을 준비할 즈음, 동네 사람 여럿이 모여들었다. 동네라고 해 봤자 가뭄에 콩 나듯 듬성듬성 자리한 게르 몇 채뿐이었지만, 소문은 빨랐다. 자기들 딴에는 꽤나 엉뚱스런 이방인을 구경하러 모여든 것이었다. 덕분에 그날 밤 때아닌 동네잔치가 벌어졌다. 모여든 사람들 중에 다행히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이 있어 짤막하게나마 지지게네의 사정 얘기를 들었다.

“올해 스물여덟 살인 지지게의 아버지 슈르는 가난에 찌든 유목민 생활이 싫어 일찌감치 대처인 울란바토르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엇비슷한 처지였던 지지게의 엄마를 만났고 살림을 차렸답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사는 것 또한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았던지, 지지게를 낳고 둘이는 곧 헤어졌습니다. 할 수 없이 고향 집에 내려온 슈르는 다시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남의 집 가축이나 키워주는 신세가 되었고, 지지게는 할머니가 맡아 키우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한 번씩 집에 들르는 슈르를 대신하여 동네 사람들이라도 노파와 지지게를 잘 보살펴야 하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으니 사는 꼴이 이렇습니다.”

갑자기 많아진 사람들 때문에 게르 안이 비좁아졌지만, 지지게는 해질 무렵 들여놓은 새끼 야크와 씨름하느라 바쁘기 그지없었다.  “이 게르도 그렇습니다. 여기가 몽골에서는 이름 있는 관광지인지라 외지인들이 들어와 야금야금 땅을 소유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예전처럼 마음대로 게르를 칠 자리조차 없습니다. 지금은 비수기인지라 지지게네가 이곳에 게르를 치고 있지만, 주인이 따로 있는 땅이라 성수기 이전에 곧 자리를 비워줘야 합니다.”

패놓은 장작더미로 난로 가득 푸짐하게 불을 지폈지만, 아직 얼음이 채 녹지 않은 흡스골 호수의 찬바람은 여전히 살을 에었다. 춥든지 말든지 발가벗은 채로 잠자리까지 파고들어와 성가시게 굴던 녀석은 팔베개가 따뜻했는지 어느새 쌔근거렸다.

넓디넓은 몽골 땅 중북부 끝에 흡스골 누르(누르는 호수란 뜻)라 불리는 국립공원이 있다. 러시아와 국경을 이루며 시베리아의 타이가(아한대의 침엽수림지대) 속으로 움푹하니 파고들어간 곳이다. 지질학적으로 형제지간이며 시베리아를 대표하는 바이칼 호수와는 채 200㎞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흡스골 누르는 몽골에서 두 번째로 넓은 호수다.

▲ 흡스골 호수에 서면 얼음 바다 건너온 시베리아의 삭풍만이 외로운 인사를 건넨다.
넓이로 두 번째이라지만 흡스골 누르는 수심이 262m나 되는 담수호로 몽골 전체 지표 담수량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수심이 깊어서인지 그 담수량 또한 엄청나 지구에서도 열여섯 번째로 큰 담수호다. 남북으로의 길이가 135㎞나 되는 흡스골 누르에 서면 그것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다. 그뿐만이 아니다. 호수 주변으로 3000m 넘는 고봉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스위스의 알프스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흡스골 누르는 바다가 없는 몽골에서 일찍부터 ‘몽골의 푸른 진주’, ‘몽골의 스위스’라 불리며 유명세를 누려왔다. 우리로 치자면 ‘금강산’이나 ‘제주도’쯤 되는 곳이다. 몽골 사람 누구에게나 죽기 전에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은 곳, 그렇지만 선 뜻 가기 어려운 곳, 그곳이 바로 흡스골 누르다.

흡스골 누르는 춥다. 여름 한 철 빼놓고는 늘 흡스골 누르에 시베리아의 삭풍이 몰아친다. 한겨울에는 1m가 훨씬 넘게 얼음이 얼고, 그 위로 트럭이 지나 다닐 만큼 두껍게 얼어붙은 호수는 이듬해 6월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흡스골 누르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과 고요함이 있다. 호수가 얼어붙은 비수기에 흡스골 누르 주변을 걷다 보면 인간의 자취는 사라진다. 싸늘한 얼음 바다를 건너온 시베리아의 삭풍만이 외로운 인사를 건넨다. 흡스골 누르, 그곳은 길 떠난 자들에게 고독을 위한 천국이다.

열흘 동안의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금 지지게의 게르를 들렀다. 게르의 문을 열고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자 심심했던 지지게가 환호성을 질러대며 반겼다.
“지지게, 말썽 피우고 않고 잘 지냈어?” 알아들을 수 없는 녀석의 대답은 무엇이 그리도 신이 났는지 그칠 줄을 몰랐다. 지지게의 종알거림 속에 가지고 있던 털실 모자 하나를 그에게 씌워주었다. 녀석은 껑충껑충 뛰며 함지박만 하게 커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아프지 말고, 그리고 울지 말고, 씩씩하게, 알지? 아저씨 이제 간다. 추우니까 밖에 나오지 말고 안에 있어!” 녀석을 한 번 안아주고, 하룻밤 더 머물고 가라는 노파의 손을 뿌리치며 문을 나섰다. 게르를 나서 몇 발짝 떼지 않아 다시 문이 열리더니 지지게가 뛰어나왔다.

“지지게! 아저씨가 춥다고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했잖아. 왜 말을 안 들어. 또 맴매 맞고 싶어? 빨리 들어가지 못해!” 녀석은 이방인 아저씨의 무정한 호통이 억울했는지 입을 삐죽거리며 연방 눈물을 글썽거리다가 끝내 울음보를 터뜨렸다. 지지게의 울음소리에 흡스골 누르의 차디찬 얼음이 아픈 신음소리를 내며 길게 깨어져 나갔다. 하지만 울고 있는 녀석을 모른 체하고, 시베리아의 삭풍이 되어 싸늘하게 돌아섰다. 그리고는 시리도록 짙푸른 흡스골의 하늘에서 차마 시선을 빼어내지 못하고,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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