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류의 식탁에서 앞으로 자주 보일 거예요
신인류의 식탁에서 앞으로 자주 보일 거예요
  • 정다솜
  • 승인 2020.03.16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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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푸차, 유럽

지구의 병환이 하루가 다르게 깊어가는 모양이다. 남극 기온이 사상 처음으로 영상 20도까지 치달았고 오세아니아 대륙은 사상 최악의 산불로 10억의 생명을 잃었다. 몇 달째 세계가 두려워하고 있는 바이러스 역시 절절 앓고 있는 지구와 무관하지 않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알아가고 있다. 이제 대재앙은 SF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일이 아니란 것을.

식탁 위의 로하스LOHAS 물결
내가 사는 런던을 비롯해 유럽에서 지금 가장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단어는 Ethical과 Sustainable, 다시 말해 '윤리적'이고 '지속가능한'이다. 환경 이슈가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구가 되면서 도시 브랜딩이나 건축 디자인부터 패션과 출판, 식음료에 이르기까지 실로 인간이 영위하는 문화 전방위에 걸쳐 두 단어가 끈질기게 언급된다. 내 경우는 매일 마주하는 식생활 측면에서 실감하는 편인데, 이전의 웰빙이나 오가닉 열풍이 인간 개개인의 건강을 챙기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오늘날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지구까지 아울러 생각하는 사회적 웰빙 개념, 로하스(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적 식문화가 빠르게 확산 중이다.

예로 런던엔 소비자가 유리병이나 도시락통을 가져와 필요한 양의 음식을 무게로 달아 구매하는 방식의 Zero-waste(어떤 쓰레기든 최소화하는 방식)를 실천하는 마트와 식당이 많아졌다. 한편 대부분의 카페가 소젖 우유를 대체하는 옵션으로서 아몬드, 캐슈넛 등의 견과류 우유, 두유, 귀리 우유와 같이 다양한 Animal-Free/Plant-based(동물성을 배제한 식물 기반 제품) 우유를 갖춰뒀으며 펍에서도 100% Plant-based를 전면 홍보하는 맥주와 사이더가 늘고 있다.

콤부차, 이거 진짜 상징적이다
특히 음료 부문에서 크게 선전하고 있는 것이 콤부차Kombucha다. 국내엔 소위 셀럽 배우들이 건강 유지와 다이어트를 위해 즐겨 마시는 음료로 소개된 바 있는 콤부차는 식물성 기반의 발효 음료란 점에서 로하스 식문화의 상징으로 진작 자리매김했다. 이미 영국의 대표 유기농 마켓 프랜차이즈인 '플래닛 오가닉'이나 '홀푸드 마켓'엔 콤부차 코너가 거하게 따로 마련돼 있고 비건 레스토랑을 포함한 일반 식당과 카페 메뉴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이다. 콤부차를 맥주처럼 탭으로 제공하고 칵테일을 선뵈는 바까지 생겼을 정도.

시황제가 불로장생을 꿈꾸며 마신 차
아니, 그래서 콤부차가 정확히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녹차나 홍차를 우린 물에 설탕과 ‘스코비SCOBY (Symbiotic Colony Of Bacteria & Yeast, 또는 콤부라 불림)’라는 유익균을 넣고 발효시킨 음료다. 정말 쉽게 말해서 유익균 발효차. 유래를 짧게 훑자면 기원전 220년경 중국 진나라 대에 만주 일대에서 해독과 원기 회복을 목적으로 만들었으며, 불로장생을 좇던 시황제가 매일 마셨단 설이 전해진다. 이후 러시아 북동부 지역에서 인기를 누리다 독일을 거쳐 유럽 대륙으로 전파됐는데 2000년대 중반부터 북미 대륙에서 불기 시작한 열풍이 유럽과 아시아 대륙으로 다시 회항하고 있다. 어느 차를 바탕으로 우려내는가에 따라 맛이 달라지긴 하나 보통 무난한 홍차나 녹차, 허브차를 사용한다. 플레인 콤부차를 마시면 대체로 시큼하면서 달짝지근하다. 레몬차 혹은 홍초와 상당 부분 흡사하달까. 발효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탄산 덕에 톡 쏘는 청량감도 따라온다. 최근에는 설탕을 빼고 보다 건강한 루바브, 복숭아 등 과일을 넣어 당을 보충하거나 코코넛, 엘더플라워, 생강 같은 다양한 부재료를 활용한 콤부차가 대거 등장하면서 선택 가능한 맛의 스펙트럼이 한결 넓어졌다.

버섯을 닮은 발효의 마법사
콤부차를 만들기 위해선 앞서 언급한 스코비, 즉 ‘홍차 버섯’이 반드시 필요하다. 홍차 버섯은 발효를 위한 여러 효모종과 미생물이 집합을 이루고 있는 배양 균체로, 젤라틴처럼 몰캉한 듯 탄력 있는 질감을 가졌으며 미색을 띤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사실 버섯은 아니고 배양체 모양이 버섯 갓과 닮아서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 아무튼 이 홍차 버섯이 콤부차의 시작이자 끝이라 이것만 있으면 집에서도 손쉽게 콤부차를 만들 수 있다. 일단 설탕을 녹인 찻물을 완전히 식힌 다음, 홍차 버섯을 넣고 공기가 통할 수 있도록 병 입구를 거즈 등으로 덮으면 준비 완료. 이후 볕이 미치지 않는 서늘한 장소에 열흘 가량 두었다가 발효가 완성된 콤부차를 살살 따라내어서 냉장고에 보관하며 음용하면 된다.

지속가능성이라는 열쇠까지 쥐었네
홍차 버섯은 콤부차가 가진 ‘지속 가능성’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선 단일한 홍차 버섯은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최대 3회까지 재사용할 수 있다. 또 발효시 기존 홍차 버섯(엄마)은 점점 두꺼워져 밑으로 가라앉고 위에 얇은 막이 형성되는데, 이것이 자라서 또 하나의 홍차 버섯(아기)이 된다. 말인즉 매번 새로운 홍차 버섯이 생성되는 구조이므로 사실상 영구적인 배양이 가능한 것. 따라서 공장에서 만들든 집에서 만들든 콤부차를 생산하는 데 드는 환경적 비용은 여타 음료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적은 편이다. 게다가 공정 무역과 친환경 재배가 보증된 차를 베이스로 하는 콤부차를 선택한다면 산림 벌채나 살충제 남용 등 기존 차 산업이 지적받는 환경 문제로부터도 보다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으며, 콤부차를 집에서 만들어 마실 경우엔 수송 및 유통에 따른 탄소 발자국 줄이기까지도 가능하다.

Do What Comes Natural
“많은 이들이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죠.
그래서 자연의 세계로 들어가 그것을 침범하고 착취합니다.
소를 인공수정시킬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어미의 울부짖음에도 송아지를 훔치고,
송아지 몫인 우유를 가져다 우리 밥상 위의 커피와 시리얼에 넣죠.
그러나 한편 우리 ​인간은 매우 창의적인 존재들이기도 해요.
지구상 모든 존재와 환경을 위해, 우리는 분명 유익한 방식으로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
- Joaquin Phoenix

얼마 전 영화 <기생충>의 4관왕 쾌거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던 아카데미 시상식. 여러모로 기록적인 일이라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소감을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꽤 인상적이다. 한 가지 더 흥미로웠던 것은 이 시상식의 파티 음식이 완전 채식(Vegan) 뷔페였다는 점. 아카데미뿐 아니라 앞서 열린 골든글로브와 미국 배우 협동조합 시상식 등 올해 초 열린 세계적인 영화 시상식 파티 모두가 채식 뷔페로 구성됐다는 사실은 분명히 시사적이다. 무분별하고 잔인한 도살로 점철된 현대의 식산업과 재앙적 개발이 야기한, 더는 좌시할 수 없는 수준의 환경 위기를 맞닥뜨린 인류의 식탁은 이제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할까. 대단히는 말고 그저 할 수 있는 가장 작고 유익한 선택을 종종 시도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좋겠다. 우유 대신 헤이즐넛 밀크를, 콜라 대신 콤부차를 마셔보는 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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