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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덕질하는 지구여행자
쓰레기를 덕질하는 지구여행자
  • 조혜원 기자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20.03.04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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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숙 환경운동가

#호모쓰레기쿠스 #알맹망원시장 #제로웨이스트 #플라스틱프리 #미니멀리즘 #비건, 그녀를 수식하는 말은 이토록 다양하다. 제로 웨이스트로 세계 여행을 떠나거나 플라스틱 없이 사는 삶은 고단하지 않을까? 매일 밤 야식의 유혹도 뿌리치지 못하는 의지박약도 그런 삶을 실천할 수 있을지 묻고 싶었다. 직접 만나본 그녀는 독특하지도, 유별나지도, 예민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와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인 자연을 위해 불편을 조금만 감수하자고 이야기하는 평범한 이웃이다.

고금숙 씨를 설명하려면 긴 글이 필요하다. 본명은 고금숙, 활동명은 금자. 13년간 여성환경연대에서 일하며 대형마트 영업시간제한, 화장품 속 미세 플라스틱 사용 금지, 생리대 유해 물질 이슈화 등을 이뤄냈다. 현재는 일주일에 삼일은 환경단체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만들기 국민행동’에서 일하며, 나머지 날들은 플라스틱 프리, 쓰레기 덕질, 망원동 에코라이프, 알맹 캠페인을 외치는 활동가다.

어느 날 갑자기, 우연처럼 일어난 일들은 사실 금자 씨 같은 활동가와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공론화 된 것이다. 환경단체가 안건을 발의하고 정책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여론이 형성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10분의 편리를 위해 사용하는 비닐이 썩지 않고 지구를 유영하며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 그게 어떻게 우리에게 피해로 되돌아오는지 생각해보고 일상에서 실천할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이 금자 씨가 하는 일이다.

금자 씨는 본인이 사는 동네인 망원동에서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활동을 펼친다. 모든 활동은 뜻이 맞는 동네 주민들과 함께 한다. 망원시장에서 장 볼 때 비닐이다 PVC 포장 없이 알맹이만 사자는 ‘알맹’ 활동과 시장 상인회에서 운영하는 ‘카페M’에서 장바구니 대여, 세제 소분숍을 운영한다. 이윤을 내기 위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카페 한편에 소프넛, 구연산, 울 샴푸, 생리컵, 천연 수세미 등을 늘어놓은 정도다.

친환경 제품이 접근하기 어렵고 사용하기 번거로운 것들이 아니라 일상에 적용하기 쉽고 실용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다. 동네 주민들이 빈 용기를 가져와 세제를 필요한 만큼 담아 구매하고,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한 대나무 칫솔 한 개를 살 수 있는, 그 옛날 동네 구멍가게 같은 곳이다.

물론 망원시장에서의 활동도 처음부터 쉽지만은 않았다. 시장 상인들도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방식에 거부감이 있었다. 비닐에 담아서 팔면 빠르고 편한데, 물건을 사는 가지고 온 용기 무게를 재고, 다시 계량해야하는 번거로움 때문이다. 하지만 금자 씨와 친구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이제 망원 시장엔 반찬 통을 내밀면 두부를 담아주는 상인과, 장바구니를 빌려 장을 보는 주민들의 모습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환경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수 있도록 망원시장에서 장바구니 빌려주기, 비닐 안 쓰고 장보기를 성공한 사람에게 사 하나, 브로콜리 하나를 주는 행사 등을 이어가고 있다.

금자 씨는 동네에서 하는 활동에 그치지 않고 작년엔 비닐봉지 사용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케냐와 인도에 다녀와 유튜브와 다큐멘터리도 제작했다. 비닐봉지 규제는 북유럽 같은 선진국에서 더 빠르게 정책화 됐을 것 같지만 의외로 아프리카 케냐와 인도에서 강력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케냐의 경우 가로수에 비닐이 열매처럼 걸려있고, 비닐 때문에 하수도가 막혀 저지대에 물이 범람하고, 버려진 비닐 속에서 말라리아가 서식했다. 심각성을 느낀 케냐는 2017년부터 비닐봉지를 사용하면 우리 돈으로 약 사천만 원이 넘는 벌금을 내는 강력 규제를 시행했다. 물론 반대여론도 많았지만 현재는 국민이 더 정책에 자부심을 가지고 지지한다.

금자 씨는 해외에서도 제로 웨이스트로 여행한다. 정수 필터 물통, 샴푸바, 스텐 빨대, 손수건, 밀랍랩 등 몇 가지 준비물만 있으면 쓰레기 없이 여행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도시 곳곳에 잘 정비된 식수대가 있으며, 시장에서 마늘 하나도 낱개로 구매할 수 있을 만큼 개인 용기를 사용하는 환경이 조성돼 있으며, 작은 마을도 제로 웨이스트 숍이 활성화 돼 있다. 의외로 가장 많이 나오는 쓰레기는 영수증이나 티켓이다. 이 또한 어플이나 모바일 티켓을 사용하면 줄일 수 있다.

빠르고 편리한 삶을 위해 개발된 플라스틱과 비닐이 지구와 인간의 삶마저 일회용으로 만들고 있다. 그 피해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건 그것을 사용한 사람들이 아닌 바다 생명체와 소외계층이다. 바다 거북 코에 빨대가 깊이 박혀 있고, 자신의 삶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은 환경호르몬이 가득한 일회용품에 담긴 식사를 한다. 플라스틱 프리와 제로 웨이스트 운동은 단순히 먼 미래의 지구 환경을 위해서가 아니다. 세상 어떤 물건도 사람도 쓰레기로 취급되지 않는 삶과, 관계를 위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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