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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날의 자전거 캠핑
이른 봄날의 자전거 캠핑
  • 이수현 | 최상원
  • 승인 2020.03.0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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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도 브롬핑

기분 좋은 바람과 따뜻한 햇볕, 푸릇하게 돋아나는 새싹들, 한결 가벼워진 옷차림. 어느새 봄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겨우내 얌전한 고양이처럼 웅크리던 브롬톤과 장봉도로 이른 봄 마실을 떠났다.

#떠나야 알 수 있는 것들
유난히 분주했던 금요일 밤엔 11시가 돼서야 귀가했다. 내일 오전 브롬핑을 떠나는 일정이었지만 아직 가방도 꾸리지 못한 채였다.

전국에 비가 내린다는 날씨 예보도 우리의 발목을 자꾸만 붙잡았다. 심지어 저녁 메뉴 탓인지 배탈도 났다. 모든 것이 브롬핑을 방해했지만 우리는 섬으로 떠났다. 가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 가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컸으니까.

우리는 많은 떠남과 돌아옴을 거치며 이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대처할만한 여유가 생겼다. 짜증을 내려면 한없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길은 어디에도 있다. 우리 앞에 놓인 여정에 즐거움만 가득하기를, 여기까지 와서 얼굴 찌푸리는 일은 없기를 기도할 뿐이다.

그러다 보면 아주 작은 행운에도 아이처럼 기뻐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가령 떠나기 직전 겨우 시간에 맞춰 배에 승선하는 일이라거나 우연히 들른 섬마을 식당에서 고양이의 느긋한 골골거림을 듣는 일 같은 아주 사소한 것에도 미소 짓게 되는 그런 기쁨 말이다.

#브롬톤과 함께 바다를 건너
낯선 역에 내려 익숙한 친구들과 오랜만의 브롬핑에 나섰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주변 풍경은 마치 멀리 떠나온 거 같아 괜스레 설렌다. 선착장에 도착해 배에 브롬톤을 싣고 바다를 건넜다. 갈매기의 마중과 시원한 바다 냄새에 어젯밤의 피곤이 금세 사라졌다.

서해의 작은 섬 장봉도. 적당한 라이딩을 즐길 수 있어 브롬핑으로 제격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가며 부지런히 달리자 우리가 머물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사락사락 고운 모래 알갱이와 바닷바람이 반겨주는 이곳은 늘 설레는 장소다. 캠핑 사이트를 옹기종기 짓고 난 뒤 브롬톤을 곱게 접어 텐트 옆에 세워놓는다. 너도, 나도 오랜만에 뜨겁게 달렸구나.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아침부터 분주했던 오늘. 누군가는 잠시 눈을 붙이고, 누군가는 주변 산책을 하고, 누군가는 텐트 안 침낭에서 빈둥거리고, 누군가는 바닷가를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다. 열심히 달려온 자신에게 선사하는 여유로움과 각자의 시간을 즐기는 지금이 좋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도 이따금 필요하다.

도란도란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눠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캠핑의 밤. 언젠가부터 술은 줄이고 따뜻한 차나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온몸에 퍼지는 따스함에 마음마저 노곤해졌고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계절을 좀 더 천천히
다음날 언제나처럼 아니온 듯 자리를 정리하고 돌아오는 길. 내리막이었던 곳은 오르막이 되고 오르막이었던 곳은 내리막이 되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자전거 라이더들에게 지형은 이리도 공평하다. 갈 때 고생이면 올 때가 편하고, 갈 때가 편하면 올 때가 고생스럽다. 내리막의 통쾌함도 오르막의 수고로움도 딱 반대로 선사해주는 공평함이란.

앞뒤로 캠핑 짐을 실은 덕에 평소보다 페달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너무 무리하지 않고 힘들면 적당히 내려 브롬톤을 끌고 가며 체력을 비축하는 것이 좋다. 천천히 주변 풍경을 둘러보는 여유도 부려본다.

조금 쌀쌀했지만 그만큼 서로의 작은 온기가 소중하게 느껴졌던 그날 밤. 걱정했던 모든 것들은 말간 모래알처럼 사르르 흘러내렸다. 얄궂던 날씨 덕에 의외의 것들이 고맙게만 느껴졌던 캠핑의 기억은 어느 때보다도 오래 남을 것만 같다.

생활모험가 부부
사진가 빅초이와 작가 블리는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생활모험가 부부입니다.
일상과 여행, 삶의 다양한 순간을 남편 빅초이가 찍고, 부인 블리가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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