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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 조혜원 기자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0.02.0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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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탄고도 썰매 트레킹

요즘 겨울은 ‘삼한 사미’라고 한다. 삼일은 춥고 사일은 미세먼지라는 이야기. 눈다운 눈은 안오고 시린 바람만 잔뜩 부는 서울의 겨울은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기 어렵다. 눈이 가득 쌓인 설산의 풍경이 보고 싶어 정보를 찾던 중 재미난 SNS 게시물을 발견했다. 바로 썰매 트레킹이다. 운탄고도가 썰매 트레킹 명소라는 이야기에 썰매를 배낭에 메고 겨울을 찾아 떠났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백패킹 성지이자 썰매 트레킹 명소인 운탄고도는 해발 1100m에 정선 백운산과 두위봉을 따라 이어진 임도로 1960년부터 1980년까지 석탄을 나르는 트럭이 다니던 길이었다. 1980년대 석탄 사업이 막을 내리며 자연스럽게 잊힌 길을 1998년 강원랜드에서 ‘하이원 하늘길’로 조성하며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운탄고도는 널찍한 임도가 길게 이어져 눈이 쌓이면 천연 썰매장으로 변신한다.
산행 당일 썰매를 차에 싣고 들뜬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날씨가 너무 포근하다. 강원도에 들어섰는데도 눈은커녕 가을 같은 풍경이 펼쳐져 만항재에 가도 눈을 볼 수 없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언덕을 오를 때부터 조금씩 눈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주차장에 도착하는 순간 하얀 세상이 펼쳐진다. 운탄고도의 시작점인 만항재는 해발 1330m에 위치해 주차장부터 눈이 가득 쌓인 풍경이었다.

이번 여행은 본지의 단골 산행 동반자인 하이커 김희남 씨와 희남 씨의 지인인 최수임 씨가 함께 했다. 미국 삼대 장거리 트레일 중 하나인 PCT(Pacific Crest Trail)을 다녀온 인연으로 알게 된 두 사람은 친남매처럼 투닥 거리면서도 서로를 살뜰히 챙겼다. 희남 씨가 PCT를 완주했거나 갈 예정인 사람들이 정보 교환을 하고 소소한 모임을 갖는 카페를 운영해 수임 씨도 그곳에서 정보를 얻어 긴 여정을 다녀왔다.

만항재 야생화 쉼터에 도착하니 곧게 뻗은 소나무 숲이 겨울왕국처럼 펼쳐지고, 커다란 관광버스에서 내린 등산객이 우르르 함백산으로 향한다. 시끄러운 산행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운탄고도 방향으로는 아무도 걸음 하지 않았다. 운탄고도도 주말엔 백패킹과 썰매 트레킹을 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던데 평일이라서인지 넓은 길에 우리뿐이다.

따뜻한 날씨 탓에 눈이 얼고 녹기를 반복해 빙판길이 이어졌다. 수임 씨가 한번 미끄러질 뻔하더니 에디터는 초입부터 대차게 넘어졌다. 안전을 위해 모두 아이젠을 꺼내 착용했다. 한결 안정적인 발걸음에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좋아 걸음에 리듬이 실린다.

운탄고도는 만항재에서 시작해 새비재로 연결되는 40km의 긴 코스다. 만항재 출발 기준으로 백패커들은 중간에 비박을 하고 풀코스를 완주하지만 트레킹만 원하는 이들은 17km 지점인 강원랜드호텔 폭포 주차장으로 내려오거나, 13km 지점의 하이원리조트나 하이원CC로 내려오면 된다.

운탄고도 초입은 넓은 평지 같은 길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풍경이 탁 트이면서 풍력발전기 동산이 펼쳐진다. 언제쯤 썰매를 탈 수 있을지 경사도를 눈여겨보다가 조금만 내리막이 나타나면 바로 썰매에 앉아 열심히 발로 시동을 걸어보지만 쉽게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이때 수임씨 가방에 등산 스틱이 눈에 들어온다. 썰매에 앉아 스틱으로 열심히 땅을 밀어내니 빙판에서 나무 썰매를 타듯 앞으로 쑥쑥 나가지만 그럼에도 경사가 약해 격한 팔운동만 될 뿐이었다.

드디어 썰매 타기 딱 알맞은 내리막이 나타났다. 재빨리 가방에서 썰매를 내려 나란히 출발선에 앉았다. 비장한 마음으로 내리막을 향해 발을 구른다. 으아아악~! 수임 씨는 얼마 못가 기우뚱 넘어지고 희남 씨도 조금 내려가고 멈춰 선다. 셋이 나란히 출발하니 범퍼카처럼 부딪힐뻔하기도 하고 조종이 쉽지 않다.

<산행을 위한 애플리케이션>
국립, 도립공원이 아니면 이정표가 드문 곳이 많다. 운탄고도는 비교적 쉬운 길이지만 이정표는 없다. 산행에 도움을 주는 애플리케이션이 있으면 길을 잃지 않고 산행할 수 있으며 멋진 영상으로 추억도 남길 수 있다.

램블러Ramblr
램블러에서 산행할 지역을 검색하면 사용자들이 작성한 산행 경로, 리뷰, 준비물 팁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산행 루트를 미리 다운로드해 따라가기 기능을 활용하면 초행길도 든든하다. 개인의 기록을 업로드해 블로그 형태로 운영할 수 있다.

트랭글Tranggle
트랭글은 위대한 도전에 대한 발자취와 지리적 기록의 합성어다. 등산, 걷기, 뛰기, 자전거 등의 활동을 할 때 속도, 칼로리 소모량, 전체 거리, 시간 등을 기록하고 내 운동 통계를 비교할 수 있다. 또한 트랭글 사용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클럽이 있어 함께 운동할 친구를 찾을 때 유용하다.

리라이브Relive
등산뿐 아니라 달리기, 사이클링, 수영, 카누, 스노보딩 등 다양한 활동의 기록을 3D 영상으로 남길 수 있다. 이동 경로 중 원하는 지점에 포인트를 두고 사진이나 영상을 추가하면 멋진 3D 영상이 자동으로 만들어진다. 무료 버전만 사용해도 충분히 멋진 결과물을 만들 수 있어 인기다.

‘아, 왕년에 자연농원에서 썰매 좀 탔는데. 너무 옛날 일인가. 눈이 너무 안 쌓여서 그런가. 배낭까지 메고 타서 무거워서 인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조금 더 경사진 길을 만났다. 다시 한번 타보자! 이번엔 발을 살짝만 굴렀는데도 썰매가 가볍게 미끄러지고 순식간에 속도가 붙어 제법 빠르게 달린다.
썰매가 잘 미끄러지니 신이 나서 가방을 아래 벗어두고 다시 언덕 위로 내달렸다. 처음엔 방향을 마음대로 조절하기도 어렵고 멈추려면 길 옆에 눈이 많이 쌓인 곳이나 수풀로 넘어지다가 몇 번을 반복하니 요령이 생기기 시작한다. 줄을 팽팽하게 잡고 살짝 눕는 자세로 좌우로 기울이면 서서히 방향 전환이 된다.

"나 이제 썰매 컨트롤하는 거 완전히 터득했어. 이렇게 발로 살짝 땅을 짚고 몸을 기울이면 방향 전환이 돼!"
자신감을 얻은 희남 씨가 썰매 타는 비법을 전수한다. 한번 재미가 들리니 이제 썰매에 배낭을 싣고 끌고 가다가 내리막이 나오면 재빨리 썰매에 올라탔다. 급커브가 나타나도 여유롭게 한쪽 발로 브레이크를 걸면서 방향 전환을 할 수 있게 됐다.

썰매 트레킹은 재미는 물론이고 내리막을 빠르게 내려갈 수 있어 일석이조다. 지루할 수 있는 내리막길을 빠르게 내달려 산행 시간을 단축시킨다. 단점은? 완벽한 경사의 내리막을 만났을 때 가방을 던져놓고 다시 올라가 썰매를 타느라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이랄까.

<겨울 산행필수 아이템>
블랙야크 캐슬 GTX
블랙야크 캐슬 GTX는 보아테크놀로지사의 M4 다이얼이 적용된 중등산화로, 발목을 단단하게 잡아줘 미끄러운 길에 넘어질 위험이 있는 겨울 산행에 제격이다. 보아의 M4 다이얼은 특전대 전술화, 소방화 등에 사용되는 프리미엄이다. 캐슬 GTX는 고어텍스를 적용해 100% 방수, 투습이 되며 내부에는 투습 및 향균 소재를 사용해 눈길에 오래 산행해도 신발이 젖지 않는다. 접지력이 뛰어난 아웃솔로 겨울산에서도 든든하다.

아이젠
겨울 산행엔 아이젠이 필수다. 곳곳에 얼음이 도사리고 있어 조금만 방심해도 넘어질 위험이 크고, 눈 아래 숨어 있는 큰 돌이나 나무뿌리에 부딪혀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눈이 발목 이상 쌓이는 곳을 대비해 스패츠도 준비하면 좋다.

썰매
눈이 잔뜩 쌓인 산에서 썰매는 여러모로 유용하다. 내리막이 나오면 썰매를 타고 신나게 내려가고, 평지에선 썰매에 배낭을 싣고 끌면 가볍게 걸을 수 있다. 쉬어 갈 때도 썰매를 의자 삼아 앉을 수 있다.
Tip 고리가 달린 스트링이 있으면 가방에 썰매를 매달 때, 썰매에 가방을 싣고 동여멜 때 유용하다. 다O소에서 4개 2천원에 살 수 있다.

신나게 썰매를 타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듣고서야 아직 점심을 안 먹었다는 게 생각났다. 만항재 도착 직전 고한역 앞마을에서 사온 김밥, 휴게소에서 사온 빵과 초코바로 배를 채운다. 겨울엔 뜨끈한 국물이 필수. 겨울산에서의 컵라면은 새벽 두 시의 야식보다 맛있다. 단, 라면 국물은 절대 산에 버리지 않는 것이 매너다.

처음 계획은 만항재에서 시작해 하이원CC로 하산하는 일정이었는데, 도착시간이 늦어진 데다 여러 번 썰매를 타고 노느라 고작 3km 지점인 혜선사에 도착하니 이미 4시가 넘었다. 당일 산행을 계획하고 온 터라 캠핑 장비도 없고 해가 지면 위험해질 것 같아 혜선사에서 다시 만항재로 돌아가기로 했다. 올 때는 신나게 내려오던 길이 돌아갈 때는 오르막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험한 산길이 아니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 좋은 길이다. 썰매에 배낭을 싣고 끌면서 걸으니 힘도 들지 않고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육 개월 간 PCT를 완주한 두 하이커에게 이 정도는 산책 수준.

수임 씨는 PCT를 완주했을 때 다시는 장거리 트레킹은 떠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은 다시 떠나고 싶어 마음이 들썩인단다. 그래서 한국에서 여자들의 등산 모임도 나가고 러닝도 시작했다. 한국에도 멋진 곳이 가득해 다니고 싶은 리스트가 많다는 수임 씨. 날씨가 따뜻해 만항재의 눈꽃 풍경을 보지 못해 아쉬운 일행은 다음번엔 비박을 하며 운탄고도를 완주하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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