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방울은 금방 얼음 알갱이로 변해버렸다!”
“땀방울은 금방 얼음 알갱이로 변해버렸다!”
  • 글·사진 안병식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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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식의 극한 마라톤대회 참가기 ⑥ 북극점

▲ 세계에서 가장 추운 지역인 북극에서의 마라톤은 극한의 체력을 요구하는 레이스다.

영하 30℃의 강추위와 변덕스런 기상 변화…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최악의 레이스

글·사진 안병식 오지 마라토너 http://blog.naver.com/tolerancel사진제공·www.npmarathon.com

사막이든 정글이든 극지방이든, 누구나 한 번쯤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꿈꾼다. 하지만 막연한 두려움과 망설임 때문에 오지 여행을 선택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특히 북극점은 수많은 탐험가들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맡기며 떠났던 곳이다.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는 순수한 세계, 북극점에서 극한의 레이스를 경험한다.

지난 남극 마라톤대회와 마찬가지로 이번 북극점 마라톤대회도 심적 부담이 컸다. 북극은 세계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라는 악명을 가진 만큼 그저 개인적인 욕구만으로 선택하기에는 그리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엇이 나를 그곳으로 이끄는 것일까.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는 순수한 세계에 대한 욕심 때문일까. 그곳에서 난 또 무엇을 배우고 느끼게 될까. 해답은 북극에 발을 내딛는 순간 깨닫게 될 것이다.

▲ 새벽 3시에 비행기를 타고 북극에 도착한 선수들이 대회 본부로 향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곳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
사전에서 북극(Arctic)은 ‘북극점을 중심으로 펼쳐진 고위도 지방’이라고 정의되어 있고,  면적은 2500만~3000만㎢으로 적혀 있다. 남극과는 달리 북극은 북극점을 중심으로 면적 약 1400만㎢의 북극해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즉, 북극점 마라톤은 빙하 위를 달리는 대회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에 유라시아·아프리카·캐나다·그린란드 지역의 일부 고위도 지방이 포함되어 있다.

북극이 사라진다는 말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이 빙하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과 같다.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곳에서 마라톤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이라는 표현은 나 또한 북극에 가는 것만으로도 침입자이고 파괴자라는 말이 포함된 것이고, 그러한 인간들의 욕심이 지구를 병들게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 본격적인 대회가 시작되기 전 롱이어 바이엔에서 몸을 풀고 있는 필자.

북극점 마라톤대회는 2002년 아일랜드의 리차드 도너반이 남극과 북극을 마라톤으로 완주하고 난 후 2003년부터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기네스북에서는 북극점 마라톤을 ‘세상에서 가장 추운 마라톤’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대회는 북위 89도에서 북위 90도 사이에서 열리며 노르웨이 북쪽 북극해에 위치한 스발바르 제도(Svalbard Is)에서 참가자들이 모인 후 대회 측에서 마련한 소형 항공기를 이용해서 대회 장소로 이동한다. 스발바르 제도는 80% 이상이 빙하로 덮여 있고 노르웨이령이며 스피츠베르겐(롱이어 바이엔)을 포함한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포함한 약 13시간의 비행을 거쳐 노르웨이의 오슬로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에 대한 적응과 혹시나 하는 비행기 지연 사고로 인해 대회 일정에 늦지 않으려고 며칠 일찍 출발했다. 저녁 늦게 오슬로에 도착하는 바람에 그날은 그냥 오슬로 공항에서 하루를 지냈고, 다음날은 쌀쌀한 날씨 속에서 박물관과 오슬로 대학 등 시내를 구경하며 보냈다.

▲ 마라톤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얼음 알갱이로 뒤덮혔다.

오슬로의 시내는 영하 10℃ 가까이 내려가는 추운 날씨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붐비지 않았다. 소박하고 포근한 도시처럼 느껴졌다. 서울의 인구 집중과 높은 빌딩들을 보면서 독일의 어느 학자는 ‘재앙’이라는 표현을 썼다. 외국의 수도나 도시들을 보면 작고 소박한 도시들이 많다. 하지만 ‘왜 이렇게 작지?’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비정상적인 서울의 거리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노르웨이는 핀란드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물가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해서 한국에서 가져간 여러 가지 과자랑 음료수로 대신하며 하루 종일 오슬로 거리를 배회했다. 시내에서 잠을 자려고 했던 계획도 취소하고 오후 늦게 다시 공항으로 되돌아왔다. 개인적으로 신문지 하나만 있으면 아무데서나 잘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라 공항에서 자는 게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다.

다음 날 오슬로를 출발하여 트롬스 공항을 거쳐 오후 5시가 넘어 롱이어 바이엔에 도착했다. 롱이어 바이엔은 북위 78도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최북단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도착한 날은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을 만큼 쾌청했지만, 기온은 영하 10℃ 이하로 내려가는 쌀쌀한 날씨였다. 너무 늦은 시간이고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바로 숙소로 이동했다. 여기는 밤이 그리 길지 않은 지역이다. 저녁 9시가 넘어서야 해가 지고 새벽 4시가 되면 날이 밝았다.

▲ 영하 30℃ 강추위 속에서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의 얼굴이 인상적이다. 선수들은 완주나 우승보다 살아가면서 단 한 번만 경험할지도 모르는 기회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극심한 기상악화로 6일이나 대회 연기
이른 아침에 잠이 깨어 아침 운동을 하려고 창밖을 봤는데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날씨는 영하 20℃ 이상 내려갈 정도로 추웠다. 이날 많은 눈이 내리고 날씨 변화가 심한 관계로 대회 장소에 캠프를 설치한다는 계획이 연기되어 버렸다. 며칠을 이곳에서 보내야만 했다.

롱이어 바이엔은 눈의 도시답게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바다도 도로도 멀리 보이는 산도, 모두 얼음으로 덮여 있었고, 심지어 얼음 동굴도 간간히 볼 수 있었다. 가끔 햇빛이 비칠 때면 그 풍경들은 햇살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났다.

▲ 영하 20℃를 알리는 온도계가 살인적인 추위를 직감하게 한다.
여기서는 스키를 즐기러 온 관광객을 비롯해 교통수단이라 할 수 있는 스노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라이더들, 그리고 개썰매를 즐기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여름이 되면 그리 길지는 않지만 영상의 기온으로 올라가서 시내에는 풀과 여러 가지 꽃들을 구경할 수가 있다고 한다.

북극점 마라톤대회는 기상악화로 인해 6일이나 연기 된 후에야 비행기를 타고 대회 장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하늘에서 바라본 북극의 풍경도 신비로웠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북극점에 간다는 생각 때문인지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2시간의 비행 끝에 대회 장소에 도착했다.

새벽이지만 북극점 근처라 그런지 밤이 없고 태양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밖의 온도가 영하 30℃라는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영하 30℃의 날씨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추웠다. 눈과 코를 제외하고 모두 가리지 않고서는 일반 복장으로 오래 견딜 수 있는 날씨가 아니었다.

처음 계획은 대회가 끝난 후 북극점으로 이동 후 기념 촬영을 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바꿔 북극점에 먼저 가서 기념 촬영한 후에 대회를 진행하기로 일정이 변경됐다. 선수들은 다시 헬리콥터를 타고 20여 분을 간 후 북극점에 도착했다. 사실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북극점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설레고 기쁨도 컸지만, 영하 30℃의 날씨는 그 모든 것을 잊게 만들었다.

북극점은 남극점과는 달리 기준점이 정확히 정해져 있지 않고 계속 변한다고 한다. 그리고 북극점을 기준으로 남쪽으로 1km 내려가고 서쪽으로 1km 간 후 북쪽으로 1km를 이동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같은 태양이지만 북극점에서 바라본 느낌은 사뭇 달랐다.

▲ 이번 북극점 마라톤대회에는 총 24명의 선수들이 참가했고, 필자는 운이 좋게도 우승까지 할 수 있었다.

영하 30℃ 강추위 뚫고 대회 우승
그렇게 기념 촬영이 끝난 후 다시 대회 장소로 이동해서 대회 캠프에서 대기하다 대회가 시작됐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 온도는 영하 29℃라고 했다. 극도로 차갑거나 뜨거우면 그 느낌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영하 29~30℃의 날씨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나마 대회가 시작되고 몸에 열이 조금씩 나기 시작하면서 얼었던 발이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장갑 속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에 손은 얼어버릴 것 같았고, 얼굴에서 흐르는 땀은 곧바로 얼음으로 변해버렸다.

북극의 지형은 대부분 빙하 위에 눈이 덮여 있었고, 바람이 불어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은 얼음을 그대로 드러낸 곳도 있었다. 태양이 비치고 바람도 별로 없는 날씨였지만, 가끔씩 무릎까지 빠지는 눈과 빙하 위를 달릴 때의 미끄러움, 그리고 강렬한 추위는 모래 위를 달리는 ‘뜨거운’ 사막에서의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체력소모도 많아 도로에서 달리는 일반마라톤처럼 속도를 내면서 달릴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다.

42km를 달리는 동안 장갑도 신발도 옷도 얼굴도, 모든 것이 얼음으로 뒤덮인 나의 몰골은 지난 남극 대회보다도 훨씬 극단적인 경험이었다. 어쩌면 앞으로 내 인생에서 이보다 더 최악의 마라톤 레이스가 있게 될까 두렵기도 했다. 이런 극한의 환경은 자신의 의지와 인내만으로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정말 나약한 존재다.

▲ 참가한 선수들이 유명 연예인 가면을 쓰고 재미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극지에서의 마라톤은 환경의 영향도 많이 받고 기능성 장비의 역할도 매우 중요했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이번 대회에 참가하기 전 사막, 정글, 남극 등 그동안의 많은 오지레이스 경험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이번 북극점 마라톤대회에는 총 24명의 선수들이 참가했고 7명은 완주에 성공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운이 좋아 우승까지 거머쥐었지만, 누군가는 인생의 단 한번 뿐일지도 모르는 기회였던 만큼 아쉬움들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완주나 우승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는 경험해보지 못 할, 어쩌면 살아가면서 단 한 번만 경험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을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너무나 강렬했던 이 기억들은 우리 모두에게 쉽게 잊혀 지지 않을 추억이 될 것이다.

극단적인 경험은 극단적인 행복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주위 사람들로부터 ‘왜 오지를 달리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사막이나 정글·북극·남극 등은 나에게 모두 낯선 곳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했다. 먼 훗날 지금의 방황은 내 인생의 오아시스가 되어 있을 것이다.

▲ 롱이어 바이엔의 풍경. 언제 다시 참가할 지 기약할 수 없는 단 한번의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 대회 협찬 :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노스페이스>, 제주대학교

안병식 | 1973년 생. 중국의 고비사막, 이집트의 사하라사막, 칠레의 아타카마사막, 남극 등 세계 4대 극한 마라톤대회를 완주한 ‘그랜드슬래머’로 지난 4월에는 북극점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했다. 세계 곳곳의 극한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전문 오지 마라토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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