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모험가 부부] 부부의 겨울
[생활모험가 부부] 부부의 겨울
  • 이수현 | 최상원
  • 승인 2020.01.28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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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에 감성 한 스푼

한겨울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유난히 따뜻한 요즘, 더 짧게만 느껴져 아쉬운 계절입니다. 겨울에도 어김없이 텐트 생활자로 지내며 소소하지만 행복했던 캠핑 이야기를 듬뿍 담아 전해드려요.

#오붓한 겨울 캠핑의 낭만
캠핑을 하기엔 봄, 가을 같은 선선한 계절이 좋지만, 여름과 겨울 캠핑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특히 사락사락 새하얀 눈과 함께 캠핑을 즐기는 겨울은 늘 기다려지는 계절이다. 다른 계절보다 많은 장비를 가지고 다녀야 하지만, 소꿉놀이하듯 하나하나 설치하고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즐거움이 꽤 쏠쏠하다. 텐트나 쉘터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야 하기에 자연스레 서로의 온기에 기대게 되는 오붓함 또한 겨울만의 낭만이리라.

#가장 좋아하는 캠핑의 일과, 불멍
​​​​​​누군가 캠핑의 일과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에 관해 물어본다면 나는 단연코 불멍이라고 말할 것이다. 불을 보면서 멍하니 빠져든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봤을 거다. 타닥타닥 장작이 타는 소리와 주홍빛으로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면 자연스레 아무 생각이 없어지곤 한다. 타는 건 장작인데 이상하게 고민과 걱정이 함께 타버리는 것 같아 괜스레 후련해진다. 과거 모닥불이 인디언들의 TV였다고 하던데 정말 그럴 법하다.

겨울엔 추위 때문에 불멍을 포기하곤 했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화목난로를 사용했다. 안 그래도 겨울 장비 부피가 큰데 화목난로까지 괜찮을까, 텐트에 불이 튀진 않을까, 많은 걱정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작은 부피에 제법 클래식한 디자인까지. 화목난로를 보며 설렜던 것 또한 사실이다.

#좀 더 느긋한 겨울의 시간, 화목난로
처음으로 화목난로를 개시하던 날 텐트 지붕 위로 굴뚝이 뿅 솟아오르던 광경을 보며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다.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날 연기를 떠올리며 마음도 설렘으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텐트 가운데 우리의 조그마한 화목난로를 설치하고 잔뜩 준비한 장작을 주위에 쌓았다. 화목난로에 난 작은 문을 여닫으며 장작을 넣고 달아오른 난로 상판에 주전자를 올려 물을 끓였다. 호오~ 겨울 입김 같은 주전자 열기가 파르르 소리를 내며 끓어오르면 원두를 갈아 천천히 커피를 준비한다. 갓 볶은 신선한 원두를 정성스레 갈아 뜨거운 물을 쪼르르 부으니 뽀얀 거품이 부풀어 오른다. 향긋한 커피 향이 텐트 안을 휘감고 그제야 갓 내린 커피 한잔을 머금어본다. 이 한잔에 나무를 때고, 물을 끓이고, 원두를 갈아 낸 정성이 오롯이 담겨 있을 테다.

#작은 겨울의 부엌에서 사부작사부작
캠핑에서 요리를 많이 하진 않는다. 요리하면 수반되는 일련의 것들로 인해 쉬러 가는 캠핑에서 오히려 시달리고 오는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이제는 딱 필요한 만큼만 재료를 소분해 간단히 조리한다. 간단히 먹고, 좀 더 느긋하게 쉬고, 맛있는 음식은 캠핑지 근처 식당을 이용하는 것이 언제부턴가 우리의 코스처럼 자리 잡았다. 그렇게 요리보다는 쉬는 쪽에 더 치중했던 다른 계절에 비해 겨울엔 화목난로에서 요리한다. 물론 먹을 만큼만 준비한다는 원칙은 변함없다.

사실 요리라고 해도 그리 특별할 건 없다. 하지만 불을 피워 화력을 조절하는 정직한 난방 기구이자 소박한 부엌이 되어주는 화목난로에서 사부작사부작 무언가를 하는 것으로 소꿉놀이하는 기분이 들곤 한다. 그것만으로도 겨울 캠핑의 낭만이요, 재미가 아닐까.

#겨울 백패킹의 즐거움
겨울 산 특히 눈 내린 겨울 산은 춥지만 왜 그리 자꾸만 찾게 되는지. 가서 고생할 게 눈에 훤한데도 다시금 가게 된다. 아마도 텐트 안에서 들었던 사락사락 눈 내리는 소리, 아침에 일어나 눈 앞에 펼쳐진 설원의 풍경 등 겨울의 조각들이 잊히지 않기 때문일 거다.

우모 복, 우모 재킷, 부띠로 무장한 서로의 모습이 마치 미쉐린 타이어의 캐릭터를 떠올리게 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전투 식량마저도 꿀맛이다. 잘 때는 텐트로 새어오는 바람에 뒤척이다가도 침낭 속 핫팩을 꼬옥 쥐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작은 지붕이나마 바람을 막을 수 있는 곳이 있음에 안도했고 집에 돌아와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행복하다.

겨울의 행복이란 이리도 간단한 것이었다. 집에 있으면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지고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는 겨울 야영 생활이다. 그래서일까? 요즘같이 눈을 보기 힘든 따뜻한 겨울엔 가끔 서글퍼지곤 한다. 겨울의 시림이, 스산함이, 이제는 지난날의 추억이 돼버리는 것만 같아서.

생활모험가 부부
사진가 빅초이와 작가 블리는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생활모험가 부부입니다.
일상과 여행, 삶의 다양한 순간을 남편 빅초이가 찍고, 부인 블리가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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