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보낸 독촉 고지서에 대한 답장
지구가 보낸 독촉 고지서에 대한 답장
  • 조혜원 기자 | 양계탁
  • 승인 2019.11.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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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피커' 송경호 대표

쓰레기 문제로 지구가 아파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귀에 박히게 들어왔다. 미루고 미루던 숙제를 몰아서 하듯, 갑작스럽게 플라스틱 빨대가 사라지고, 비닐봉지를 쓰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인간이 지구로부터 단호한 독촉고지서를 받은 셈이다. 이제 더는 미루지 말고 환경보호를 실천해야 할 때다. 그런데 어떻게, 무엇부터 해야 할까? 제로 웨이스트 샵 ‘더 피커’의 송경호 대표를 만나 쓰레기 없는 삶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더 피커는 뭐 하는 곳인가요?
더 피커The picker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실천하기 위한 플랫폼입니다. 일상에서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는 삶을 실천할 수 있도록 포장 없는 제품을 판매합니다. 건강한 소비 회복에 가치를 두고, 실현하기 위한 곳이죠.

어떻게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요?
2015년, 한참 사업을 준비할 때 업사이클링, 환경문제가 화두였습니다. 넓은 범위의 사회적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스스로 어떤 것에 불편을 느끼는지 생각해봤어요. 우리가 소비를 할 때, 무언가를 사자마자 또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는 것에 불편을 느꼈어요. 사업을 준비하며 알아보니 제로 웨이스트와 관련해 활동을 하는 분들이 꽤 많은데도 불구하고 쓰레기 문제에 대해 뭔가 빠져있다는 느낌이 들었죠. 생산되는 쓰레기의 양이 너무 많아요. 양적인 문제를 어떻게 완화할지 고민해본 끝에 제로 웨이스트 샵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요즘 쓰레기 문제 정말 심각하죠. 많은 언론과 매체에서도 화두예요.
물건을 고쳐 쓰며 완전히 그 기능을 상실할 때까지 사용하던 과거와 달리, 대량생산으로 인해 소비량이 엄청난 기세로 상승하여 쓰레기 양도 급격하게 늘어났으니까요. 쓰레기 문제에 새롭고 중대한 요인이 추가된 거죠. 쓰레기의 문제는 잘 썩는 소재를 개발하고, 재활용을 잘 해내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어요.

정말 ‘제로’ 웨이스트가 가능할까요?
제로 웨이스트는 쓰레기를 원천적으로 만들어내지 않는 생활방식을 뜻합니다. 하지만 쓰레기를 아예 생산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죠. 제로 웨이스트 운동이 처음 시작된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litter, garbage, trash, rubbish 등 다양한 표현 중 ‘낭비’라는 뜻을 내포하는 ‘waste’라는 단어를 사용해요. 쓰레기는 낭비의 범주에 포함되는 거죠. 결국 제로 웨이스트가 추구하는 바는 일상생활에서 넘쳐나는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이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네요.
제로 웨이스트에 실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다시 정비하고 도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차적으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플라스틱의 존재 자체를 혐오하며 당장 내 눈에 보이는 모든 플라스틱 제품을 내다 버리고, 친환경적으로 보이는 제품들로 바꾸는 행동이에요.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삶을 위해 폭발적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게 과연 환경을 위하는 일일까요? 내가 구매한 제품을 아껴 쓰고, 고쳐 쓰며 온전히 소비해 내고, 폐기했을 때 지구에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을 고려하는 것이 제로 웨이스트라고 생각합니다.

더 피커 매장을 이전 오픈한 이유는?
성수동에서 자체 매장으로 운영하던 곳을 정리하고 올해 10월 소셜 벤처 공유 커뮤니티 공간인 ‘헤이 그라운드’ 서울숲 점에 입점했습니다. 첫 번째 매장이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인식의 확장과 자원 순환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다음 단계인 제로 웨이스트를 삶에 적용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게 목표입니다. 꼭 제로 웨이스트 샵이 있어야만 제로 웨이스트가 될 수 있다는 걸 깨고 싶어요. 그래서 ‘제로 웨이스트 말고 제로 웨이스트’를 화두로 삼았죠.

‘제로 웨이스트 말고 제로 웨이스트’는 무슨 의미인가요?
사람들이 너무 개념에만 집중하는 것 같아요. 플라스틱을 절대 사용하면 안 된다거나, 극단적으로 쓰레기를 제로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해요. 건강한 소비는 필요한 만큼 사고, 그것을 온전히 사용해 내는 거예요. 플라스틱을 사도 10년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고, 썩는 제품을 사용하더라도 자주 사서 쓰고 버린다면 어떤 게 제로 웨이스트 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보는 거죠.

더 피커에선 어떤 활동을 계획중인가요
생산, 유통, 판매, 소비, 폐기 각 단계에 소속된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그 안에서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정의를 고민하는 모임을 하고 싶습니다. 제로 웨이스트가 소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생산과 유통, 판매 과정에서 쓰레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도 중요하죠. 생활 속에서 만들어 쓸 수 있는 건 만들어 쓰고, 고칠 수 있는 건 고쳐 쓸 수 있도록 클래스를 운영하고자 합니다. 제로 웨이스트가 삶에 정착이 되면 쓰레기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니까요.

관심사가 점점 넓어지는 것 같아요.
제로 웨이스트와 건강한 소비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확장 되더라고요. 소상공인, 토종, 인권, 비건, 동물복지 등과 이어지면서 다양한 가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직접 개입해 볼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에요.

매장에서 판매하는 쌀이 어느 농장에서 온 것인지 쓰여 있던데.
소비자에게 정보가 너무 없어요. 그건 권리의 문제거든요. 누가 어떤 방법으로, 어디서 길러서, 어느 경로를 거쳐 유통이 되는지를 알아야해요. 어느 농장에서, 누가 생산한 쌀을 먹는지 알면, 직접 만나보지 않더라도 유대감이 생기거든요. 토종 벼를 재래 농법으로 기른 우보 농장의 쌀을 판매합니다. 토종 쌀이 중요하고 좋은 이유는 재래 농법으로 길러지기 때문이에요.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퇴비를 사용하는 땅이 살아나는 농법이거든요.

더 피커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기준은?
크게 식품과 생활용품을 판매합니다. 식품의 경우 벌크로, 공정무역으로 생산된 것들을 들여옵니다. 제품의 경우 포장만 없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어떻게 하고, 유통 과정은 어떤지, 포장이 있다면 폐기했을 때 썩을 수 있는 것인지를 고려합니다. 매장에 입점 돼 있는 스테인리스 도시락통의 경우, 원재료를 들어올 때도 완충재에 신경을 써서 쓰레기를 최대한 안 만들고, 실리콘 패킹은 직접 수거해서 정밀 기계 만드는 공장에 보내 재활용하는 업체 입니다. 유통 할 때도 박스에 담에 와서 회수해가고 다음에 그 박스에 다시 담아 오죠. 판매시엔 개별 비닐 포장 없고 실리콘 패킹과 스테인리스 도시락을 수거해 가니 자원 순환의 문제도 해결 되는 거죠.

더 피커에서 기획 중인 교육프로그램은?
박물관 형태의 기획을 구상 중입니다. 박물관이나 전시장에서처럼 작품을 설명해주는 것처럼 물건 하나하나를 소개하는 거죠. 더 피커의 제품을 토대로, 물건의 여정과 역사에 대해 생각해보고 소비의 판별력을 기르는 클래스를 운영하고자 합니다. 현명하고 건강한 소비를 하기 위해서 저탄소, 유기농, 지리적 표시제 등 소비자가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어요. 이 모든걸 다 따지려면 정말 어렵거든요. 자기만의 판단력을 길러야 해요.

제로 웨이스트 문화의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맡으셨네요.
제로 웨이스트는 실천하지 않더라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니까요. 더 피커에서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해보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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