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복싱의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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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신영 기자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19.10.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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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복싱 세계 4대 통합 챔피언 박지현

“링이 내 집이다”의 주인공이자 경량급의 독보적인 존재. 2006년 5월 첫 세계 챔피언이 된 뒤 16년간 정상에서 내로라하는 여성 복서의 가슴을 졸이게 만든 박지현 선수 이야기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안녕하세요. 여자 복싱 세계 기구 열 개 중 IFBA(International Female Boxers Association, 국제여자복싱협회), WIBA(Women's International Boxing Association, 여성국제복싱협회), WIBF(Women's International Boxing Federation, 여자국제복싱연맹), WBF(World Boxing Federation, 세계복싱연맹) 스트로급(46.870kg 이하)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오른 박지현입니다.

단시간에 IFBA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올랐습니다.
20살, 취미로 시작한 복싱 몇 달 만에 IFBA 세계 챔피언이 됐어요. 복싱 전,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탁구 선수로 활동해서 동체 시력과 기초 체력이 좋았고, 무엇보다 팔, 다리가 길어서 복싱에 적합한 체형을 가졌어요. 인천 대풍체육관에 들어섰을 때부터 권투가 재밌었죠. 처음엔 취미로 즐겼는데, 이정국 관장님이 눈여겨보시곤 선수 제안을 했어요. 방어보다는 공격형에 능할 만큼 승부욕이 강하고 펀치력이 세서 관장님의 이목을 사로잡았죠. 십 년 넘게 탁구를 했지만, 권투 글러브를 낀 순간 권투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제 재능과 노력도 있지만 이 관장님 도움 덕분에 금세 IFBA 세계 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어요.

16년째 꾸준히 선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복싱의 매력에 푹 빠졌거든요.(웃음) KO로 상대를 이겼을 때, 손끝에서 느껴지는 짜릿함! 승자로서 손이 들렸을 때의 흥분은 말로 표현 못 할 만큼 좋죠. 하지만 무엇보다 집중하며 힘든 경기를 마쳤을 때 아드레날린이 솟구칩니다. 권투는 자신과의 싸움이잖아요. 내가 얼마나 강한 선수인지 또 얼마나 더 강해질 수 있는지 알아 가는 과정이 매력적이에요. 물론 세계에서 제일 강한 여자 권투 선수라는 타이틀도 권투를 멈출 수 없는 이유고요. 그 와중에 잃지 않는 겸손함까지. 이 모든 게 어우러져 16년째 권투 선수로 남아 있는 거 같아요.

세계 챔피언은 어떤 훈련을 하나요?
주말을 제외하고 훈련합니다. 새벽에 매일 평지 8km 로드워크를 하고요.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체육관에 나와 본격적인 훈련을 합니다. 줄넘기 4라운드, 섀도복싱 6라운드, 샌드백 6~8라운드, 몸풀기와 섀도복싱 2라운드, 줄넘기 1라운드, 웨이트 운동 40분으로 진행됩니다. 라운드당 3분 훈련, 30초 휴식이고요. 본 훈련이 끝나고 다시 가볍게 로드워크를 합니다. 시합이 잡혔을 땐 산지에서 8~12km 인터벌 로드워크로 변경하고, 본 훈련을 2라운드씩 증가시킵니다. 그러니까 시합이 있을 땐, 모든 훈련을 두 배 이상 늘립니다. 물론 매일 훈련을 하는 게 힘들어요. 특히 새벽 로드워크는 항상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죠. 그런데 당연히 선수로서 해야 할 일이니까 담담하게 훈련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대신 ‘어떻게 하면 즐거운 마음가짐으로 할 수 있나’라는 마인드 콘트롤을 많이 해요. 이미지 트레이닝처럼 ‘지금은 힘들지만 앞날을 위해 훈련한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식단조절도 하시죠?
평소에는 식단 관리 전혀 안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해서 기초 대사량이 높고, 살찌는 체질이 아니에요.(웃음) 경량급임에도 불구하고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어요. 운이 참 좋죠. 보통 한 끼 먹을 때 밥 두 공기씩 먹어요. 고기도 굉장히 좋아하고요. 대신 과자, 초콜릿 등 군것질을 안 합니다. 일반 선수들은 5~6kg 감량을 하는데, 저는 3~5kg 감량을 해요. 일주일 정도 먹는 양을 줄이고 고기를 끊으면 특별히 식단 조절을 하지 않아도 감량이 가능하죠.

주특기를 설명해주세요.
상대의 오른쪽 몸통을 가격하는 ‘레프트 보디’가 주특기예요. 레프트 보디는 상대에게 밀착하는 기술이라 어렵고 위험하다고 알려졌죠. 스승님인 인천 대풍체육관 이정국 관장님 역시 선수로 활동할 때 레프트 보디가 주특기였어요. 저도 스승님께 레프트 바디를 사사받아 잘 활용하고 있어요.

‘권투=부상’이라고 많이 알려졌어요.
경기 중 상처를 입어 입원하는 선수가 많고 과거엔 죽는 선수도 있었어요. 당연히 저도 부상에 대한 두려움이 커요. 하지만 격투기 선수 삶을 선택했는데, 한두 번 상처를 입었다고 포기하면 세계 챔피언 목표를 달성할 수 없잖아요. 몇 년 전, 멕시코 아나이 토레스 선수와 대결할 때 눈과 눈썹 사이를 맞고 피범벅이 돼 일곱 바늘을 꿰맸었죠. 그 외에 크게 다치지 않았어요. 경기장엔 항상 링 닥터들이 상주하고 관계자도 안전한 경기장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설령 다친다고 해도 금방 치료받을 수 있죠.

1980년대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권투, 지금은 어떤가요?
비인기 종목이죠.(웃음) 과거의 비하면 경기, 관객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어요. 후원 브랜드도 거의 없고요. 선수들은 파이트머니(대전료)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지금은 파이트머니만으로 살 수 없어요. 대중의 관심을 못 받아 해외보다 국내 파이트머니가 작거든요. 한 경기에서 승리하면 몇백에서 천만 원 정도 받아요. 몇십 억을 넘나드는 해외 파이트머니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 그렇다고 경기가 많은 것도 아니고요. 아무래도 이런 문제 때문에 국내 프로 복싱 선수가 주는 것 같아요. 다행히 저는 훈련 외 시간에 탁구 강사와 권투 지도자로 일하면서 생활을 유지하죠. 덕분에 계속 권투를 할 수 있고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야죠. 힘든 훈련, 멋진 경기 등 권투 선수로서 할 몫만 열심히 할 뿐입니다. 선수의 의무를 다하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해요.

경기가 많이 불발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고 난 뒤 6개월 안에 의무적으로 방어전을 치러야 합니다. 세계 타이틀 방어전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면 챔피언 타이틀을 내려놔야 하죠. 물론 다른 선수가 먼저 방어전을 요청하면 괜찮지만, 기간 안에 타 선수로부터 방어전 요청이 없다면 직접 경기를 열어야 합니다. 권투 협회 프로모터가 대기업의 후원을 요청해 방어전이 열리는데, 요즘에 후원을 취소하거나 미루는 경우가 많죠. 선수 입장에서는 애가 많이 탑니다. 열심히 얻어 낸 타이틀을 경기 없이 내준다는 게 허무하잖아요. 경기가 미뤄져도 선수에게 타격이 큽니다. 예정된 경기에 맞춰 몸 상태를 만들어놨는데 갑자기 미뤄지면 일정에 맞게 다시 몸 컨디션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인기 종목 선수와 비인기 종목 선수의 설움이 여기서 차이 나는 거죠.(웃음)

UFC, MMA 등 이종격투기 선수로 전향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제가 젊었다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작했을 수 있지만 지금은 어린 나이가 아니잖아요. 권투 선수하다가 이종격투기로 전향하는 선수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가 추구하거나 하고 싶은 것은 당사자의 자유니까요. 하지만 저는 복싱 자체가 좋아서 평생 복싱인으로 남고 싶어요.(웃음)

언제까지 현역 선수로 남고 싶어요?
몇 년 전부터 ‘올해가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올해까지만 현역 선수로 활동할 예정입니다. 올해 안에 마지막 경기가 이루어져 아름다운 은퇴를 하면 좋겠지만 16년간 최선을 다해서 경기 없이 마무리해도 크게 아쉬움은 없을 거 같아요. 권투를 열심히 해서 세계 챔피언으로 살아봤으니까 이제는 다른 자리에서 박지현의 삶을 살고 싶어요. 하지만 권투는 선수가 아니더라도 평생 취미로 즐길 거예요.

아마추어 VS 프로 복서
아마추어는 엘리트 체육으로 초·중·고등학교에서 시작해 대학을 거쳐 시·군청 소속으로 활동하는 선수다. 아마추어 선수는 선발전을 통해 국가대표 자격을 얻고 올림픽 출전이 가능하며 국가의 지원을 받는다. 글러브를 착용하고 3라운드 경기에 임할 수 있으며, 점수로서 승패가 갈린다.
프로는 권투를 직업으로 삼아 대전료를 받고 경기에 임하는 복서다. 프로모터에 의해 경기가 열리며 대전료를 목적으로 한다. 프로 복서들은 등급에 따라 최대 15라운까지 경기를 진행할 수 있고 글러브만을 착용한다. 이들은 잽, 스트레이트, 훅, 어퍼컷 등 다양한 기술을 통해 KO로 승패가 결정된다.
단, 국내의 경우 아마추어는 프로로 전향이 가능하지만, 프로는 아마추어로 전향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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