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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게 두드려 쌓은 역사
단단하게 두드려 쌓은 역사
  • 조혜원 기자 | 양계탁
  • 승인 2019.09.25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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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대장간 대장장이

불광은 동네 이름이지만 어쩐지 대장간에 딱 어울린다. 불광동의 원래 한자는 부처 불(佛), 빛 광(光)이지만, 불광대장간 앞에선 불 화(火), 미칠 광(狂)이 떠오른다. 연일 폭염경보가 울리는 날씨에 불광대장간을 찾았다. 일년 내내 뜨거운 불 앞에서 쇠를 달궈 두드리는 일을 하는 이 곳도 초복부터 말복까지는 더위를 조심하며 쉬어 간다.

국수 한 그릇으로 시작한 대장장이
머리에 하얀 눈이 내려 앉은 대장장이 할아버지는, 똑같은 질문을 수없이 받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옛일을 마치 어제 이야기처럼 술술 풀어 놓는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 13살에 국수 한 그릇 먹기 위해 대장간의 잔심부름 하는 일로 시작해 17살에 대장간에 취직했다. 그 시절엔 꿈이나 자아보다 당장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한 때 였다. 다행히 대장간 일이 잘 맞아 그때부터 쭉 대장장이로 살아왔다. 철원에서 3년, 미아리 고개에서 3년, 을지로 7가에서 8년을 더 배우고 처음엔 리어카에 화덕을 싣고 다니며 장사를 했다. 1963년에 드디어 불광대장간을 차리고 42년 동안 한자리를 지켰다.

처음엔 대장간일을 물려받을 생각이 없었다
대장간 일은 혼자서는 힘들다. 불을 잡는 대장장이 곁에 불에 달군 쇠를 망치로 두드리는 매질을 도와주는 이가 있어야한다. 대장간 일이 워낙 고되다 보니 일하는 사람들도 며칠을 버티지 못하기 일쑤. 결국 박경원 대장장이의 아내이자 박상범 대장장이의 어머니가 6년간 대장간 일을 도왔다. 덕분에 대장장이의 아내는 동네 에어로빅 센터에서 젊은 사람들도 팔씨름을 상대하지도 못할 만큼 팔 힘이 좋았지만, 쉰이 넘은 여자의 몸으로 대장간 일은 힘에 부쳤다. 군대 제대 후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몇달만 부모님을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 어느새 25년이 훌쩍 지났다.

너 먹고 살 것은 있으니 걱정마라
“이 근방에만 서너 곳, 서울역 건너에도 대장간이 있었고 만리동, 을지로에도 대여섯 군대 대장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지 뭐” 박경원 대장장이는 대장간의 과거와 현재를 기억하는 증인이다. 대장간은 누가 봐도 사양산업이었지만 아들이 대장간을 물려받는 걸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아무리 기계와 산업이 발전한다고 해도 손으로 만든 연장은 어느 시대에나 꼭 필요한 것이다. 수요가 적어지는 만큼 대장간의 수도 적어지니 어째든 일거리는 비슷하게 들어올 거라는 생각이었다.

대장간 일은 경험이 제일 중요하다
박경원 대장장이는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아들과 함께 대장간 일을 한다. 한 여름에는 조금 쉬엄쉬엄 하지만 아직도 뜨거운 불 앞에서 무거운 망치를 번쩍 들어 매질을 한다. 20년이 넘게 호흡을 맞춰온 부자지간이라 눈빛만 봐도 호흡이 척척 맞는다. 리드미컬한 망치질 소리에 부자의 세월이 담겨있다. 아들이 연마 작업 하는 걸 물끄러미 지켜보는 아버지. 아들도 여전히 아버지에게 노하우를 묻고 조언을 구한다. 대장간 일은 경험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번 사가면 10년 후에나 오는 단골
불광대장간의 연장은 10년, 20년을 문제없이 사용할 만큼 튼튼하다. 그러니 한번 물건을 잔뜩 사간 손님은 몇 해를 지나서야 다시 대장간을 찾는다. 그것도 새로 구매하기보다는 무뎌진 날을 수리 받기 위해서다. 그래도 물건을 더 팔기 위해 허투루 만들 수는 없다. 그러니 한번 물건을 산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 끊임없이 손님이 이어진다. 이렇게 전통방식으로 튼튼하게 연장을 만들어주는 대장간이 몇 남지 않다 보니 요즘은 전국에서 전화나 택배로 주문하는 양이 많다.

망치도 시대에 맞춰 예쁘게 만들어야지
불광대장간이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단지 오래 됐기 때문만이 아니다. 변화하는 수요에 맞춰 새로운 연장을 만들고 디자인을 세련되게 바꾸는 노력도 잊지 않았다. 한국의 낫과 호미가 해외에서 각광받으며 외국인 손님도 늘었다. 본국으로 돌아가야하는 미군이 선물용으로 농기구를 잔뜩 사가기도 한다. 오지캠핑이나 부시크래프트는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알려져 나만의 공구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없으면, 만들어드립니다
대장간엔 찾아오는 손님은 꽤나 다양하다. 주방용 칼, 농기구, 건설현장에서 사용하는 연장, 캠핑용 손도끼 등 형태도 쓰임도 다양한 연장을 찾는다. 부시크래프트나 캠핑을 하는 사람 몇몇이 대장간에서 손에 맞는 도구를 만들어 가고 알음알음 소문이 나서 주문제작을 의뢰하는 일이 많아졌다. 캠핑용품점의 카탈로그를 가져와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의뢰하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나 캠핑용 장비는 저마다 쓰는 용도가 다르고 손에 꼭 맞아야 하기 때문에 형태와 크기 손잡이 재질까지 꼼꼼하게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오래가게, 서울미래유산
서울미래유산은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근현대문화유산 중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것들을 말한다. 그동안 빠르게 앞만 보고 달리느라 돌보지 못했던 역사와 문화를 되돌아보고 지켜내기 위해 서울시가 마련한 방안이다. 불광대장간은 서울미래유산과 오래가게에 선정된 곳이다. 서울시에서 30년 이상 된 오래된 가게 39곳에 ‘오래가게’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오래된 가게가 백년가게가 될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을 담아 오래가게라 부르며 모두 함께 지켜 내자는 취지다.

동네와 함께 살아가는 대장간
처음 대장간이 불광동에 자리를 잡았을 땐 인근에 주택이 없었다. 뜨거운 불을 사용해야하는 일이니 새벽 일찍 나와서 더워지기 전에 불 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대장간 뒤로 주택가가 들어서며 작업시간을 늦췄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인데 우리 편한 대로 할 수는 없잖아요.” 대장간 앞 좁은 골목길에는 동네 아이들과 주민들이 끊임없이 지나다닌다. 박상범 대장장이는 호쾌한 목소리로 이웃의 안부를 묻는다.

불광대장간에서 살 수 있는 캠핑용 연장 (사진 왼쪽부터)
❶ 나대
나대는 땔감용 나무를 쪼개거나 나무의 잔가지를 쳐낼 때 쓰는 연장이다. 정글도 라고도 불리는 손도끼 겸 칼이다. 네모나고 길쭉한 칼날을 툭툭 치듯 사용하면 된다. 오지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숲에서 길을 확보할 때, 오토 캠핑 시 나무를 쪼갤 때 주로 사용한다. 벌초 할 때도 나대만한 장비가 없다.
❷ 쿠크리
쿠크리는 네팔 고르카족의 단검이었다. 사용 용도는 나대와 비슷하지만 더 날렵하게 생겼으며 동물을 잡을 때도 사용할 수 있다. 네팔의 쿠크리는 훨씬 길쭉하지만 캠핑용 쓰임에 맞게 짧게 변형했다.
❸ 나이프
부시크래프트, 캠핑 등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나이프는 에디터도 하나 장만했다. 캠핑용 나이프는 자기만의 스타일이 확실한 사람들이 사는 경우가 많아 손잡이 부분도 쇠로 만들었다. 각자 취향대로 마끈, 가죽, 자전거용 바테이프, 나무 등으로 손잡이를 만들어 사용한다.
❹ 도끼
모든 연장이 그렇지만 도끼는 더욱더 사용하는 사람이 손에 쥐어 보고 들어보고 휘둘러 보고 구매해야한다. 손에 착 감기고 용도에 맞는 도끼를 찾아 불광대장간으로 오는 이들이 많다. 도끼날의 생김새도 다양한데 용도의 차이 보다는 취향에 따라 골라간다. 캠핑하는 이들이 주로 찾는 게 작은 손도끼다. 크기, 모양별로 다양한 도끼가 준비되어 있으니 호쾌한 사장님의 조언을 받아 손에 맞는 장비를 구매하자.
❹ 작은 망치
캠핑할 때 망치 쓸 일이 꽤나 많다. 너무 크면 가지고 다니기 불편하니 한 손에 가볍게 들 수 있고 휴대성이 좋은 작은 망치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아 만들어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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