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당모의] 가을마실
[작당모의] 가을마실
  • 박신영 기자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19.10.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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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대부산 하이킹

패기와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세 여자. 트레일 러닝, 워킹, 하이킹 분야에서 자칭 여신(旅身, 나그네 여-몸 신)으로 통하는 그녀들이 가을마실을 나섰다.

밤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에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가 지났다. 백로는 본격적인 가을을 알리는 신호탄이지만 올해는 달랐다. 9월 초 한국을 강타한 제13호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여전히 한낮엔 기온이 29도까지 오른다. 여름 같은 가을 날씨 덕분에 산속 나무들은 아직 푸르다. 그러나 급변하는 날씨, 조만간 산도 붉게 변할 거다. 단풍으로 물들기 전, 올해 마지막 푸른 산을 보기 위해 양평 대부산으로 행로를 잡았다.

'오스프리'와 '레드페이스' 백팩은 당일 산행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오스프리'와 '레드페이스' 백팩은 당일 산행용으로 안성맞춤이다.

태풍이 지난 자리
산행 전 해장국을 먹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날을 잘 못 골랐다며 칭얼대는 에디터, 우중 산행이 매력적이라는 성아 씨, 다음 주에 다시 오자는 민아 씨가 공방전을 펼쳤다. 한숨을 푹푹 쉬어 대던 에디터는 해장국을 몇 숟가락 뜨지 않고 하늘만 바라봤다. 식사가 끝나고 결론이 내려졌다. 이왕 양평에 온 거 산행 출발점인 배너미고개까지 가보자.

산행 중, 우연히 만난 ATV 사륜 바이크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그녀들.
산행 중, 우연히 만난 ATV 사륜 바이크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그녀들.

세 여자를 실은 자동차는 설매재자연휴양림을 지나 배너미고개에 도착했다. 우려와 달리 굵은 빗줄기는 잦아들었고 안개비가 대부산을 덮었다. 뭉그적거리며 자동차에서 빠져나오자 ATV 사륜 바이크 체험장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배너미고개는 ATV 사륜 바이크 체험장으로 알려졌다. 도보로 삼십 분 거리에 영화 <관상>의 촬영지와 드넓은 억새밭이 있고 넓은 임도를 갖췄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등산객으로 붐비기도 한다. 배너미고개의 고도가 높아 정상까지 접근성이 좋고, 등산로가 잘 정비돼 초보자도 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비 내리는 평일, 배너미고개는 한적했다. 얼른 배낭을 꾸리고 등산화를 단단히 조였다. 이번 코스는 약 10km로 양평 배너미고개~영화 <관상> 촬영지~패러글라이딩활공장을 원점회귀한다. 배너미고개 입구에 차단기가 설치됐지만, 사람이 쉽게 지나칠 수 있도록 틈을 만들어 놨다. 차단기를 지나면 본격적인 등산로다.

바닥에 나뒹구는 잣방울을 든 그녀들.
바닥에 나뒹구는 잣방울을 든 그녀들.

등산로엔 올해 제13호 태풍 링링의 여파로 쓰러지고 조각난 나무가 널려있었다. 양옆에 즐비한 잣나무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됐고, 수많은 잣방울이 송진을 잔뜩 머금고 등산로에 널브러졌다. 나뒹구는 잣 방울을 한 손에 올려두니 손바닥을 전부 가린다. ‘잘 익은 잣방울을 챙겨 중고나라에 팔아볼까’ 하고 불순한 생각을 해보지만, 순간접착제만큼 끈적이는 송진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고이 내려놓았다.

세 여자가 수다 삼매경에 빠진 사이 하늘이 맑아졌다. 비는커녕 안개도 자취를 감쳤다. 출발 전부터 날씨 때문에 칭얼거린 에디터의 발걸음이 경쾌해졌다. 어느새 비를 피해 숨어있던 모기들이 세 여자 주변으로 달려들었다. 특히 산에서 많이 발견되는 흰줄숲모기(일명 아디다스 모기)는 지카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개체로 발진, 근육통, 두통, 결막염 증상을 유발한다. 봄, 여름, 가을 산행 시, 반드시 모기 기피제를 준비하는 게 좋다.

그녀들의 등 뒤로 영화 '관상' 촬영지인 초가집이 보인다.
그녀들의 등 뒤로 영화 '관상' 촬영지인 초가집이 보인다.

등산 삼십 분 후 갑자기 시야가 트였다. 수많은 억새가 하늘거리는 설매재다. 설매재(雪梅岾)는 ‘눈이 많이 내려도 매화가 피는 곳’이다. 갈색으로 변한 억새와 미처 가을 옷을 입지 못한 푸른 억새가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엇보다 억새밭 한 편에 자리한 초가집이 고즈넉하고 신성한 분위기로 이끈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초가집은 2013년 개봉작 영화 <관상> 촬영지다. 영화 <관상>은 91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으로 1453년 계유정난 시대의 관상쟁이 이야기다. 설매재 초가집은 주인공 내경(송강호)이 스토리 도입부에 머물렀던 곳. 즉, 기생 연홍(김혜수)이 내경을 찾아오는 장면에 등장한다.

웃자란 억새 사이 좁은 길을 따라가면 초가집이다. 벌써 6년 전 영화지만 며칠 전에 촬영한 듯 초가집은 깨끗했다. 세트장에 널린 옹기, 화덕, 곡괭이, 호롱 등 소품 역시 당장 사용해도 무방할 만큼 제 모습을 갖췄다.

영화 '관상'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에디터, 성아 씨, 민아 씨
영화 '관상'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성아 씨
영화 '관상'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에디터, 성아 씨, 민아 씨
영화 '관상'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민아 씨
영화 '관상'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에디터, 성아 씨, 민아 씨
영화 '관상'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에디터

시선을 초가집 반대 방향으로 옮기면 대부산(743m)과 유명산(864m)의 수려한 능선이다. 살짝 깔린 안개, 푸른 초목, 억새가 어울려 시선을 압도한다.

대부산과 유명산
대부산과 유명산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로 이웃한 산이다. 배너미고개를 따라가면 도중에 작은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때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면 대부산 왼쪽으로 틀면 유명산이다. 그만큼 두 산이 매우 인접하고 대부산 봉우리가 지도에 표기되지 않을 정도로 유명하지 않아 대부산과 유명산을 구별하기 어렵다. 인터넷에 설매재 억새밭을 검색하면 대부산과 유명산이 동시에 키워드로 오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산과 유명산에 각각 억새밭이 있어 영화 <관상> 촬영지를 찾는 등산객들은 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영화 <관상> 촬영지인 설매재 억새밭은 대부산에 있다.

대부산과 유명산에 얽힌 지명 에피소드도 재밌다. 먼저, 대부산은 어비산(魚飛山)으로도 불리는데 ‘마을에 홍수가 발생하면 물고기가 산을 뛰어넘는다’고 하여 붙여졌다. 이를 토대로 배너미고개의 어원도 알 수 있다. 배너미고개는 ‘배가 넘나들던 고개’라는 뜻이다. 어비산과 배너미고개 모두 과거에 호수였거나 비가 많이 내린 지역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유명산(有明山) 이야기도 재밌다. 1973년 한 산악회가 국토 자오선 종주를 하던 중 알려지지 않은 이 산을 발견하곤 진유명 대원의 이름을 따 붙였다. 그런데 유명산은 1481년 출간된 <동국여지승람>과 1861년 출간된 <대동여지도>에 이미 마유산으로 기록됐다. 산악회가 이름 없는 산으로 오해하고 유명이란 이름을 붙여 퍼뜨린 것. 수많은 고서에 이 산이 마유산으로 기록돼 원래 지명으로 복원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지난 40년간 쓰이던 이름을 바꾸는 것은 어려워 유명산으로 굳어졌다.

유명산과 대부산의 산세가 수려하다.
유명산과 대부산의 산세가 수려하다.

하늘을 날 준비
대부산 680m 고지에 위치한 패러글라이딩활공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과거 고랭지 채소밭으로 사용될 만큼 광활한 초지를 갖췄다. 약 50대의 패러글라이딩이 동시에 이륙할 정도다. 지난 7월 다녀온 강원도 선자령과 흡사한 광경에 입이 떡하고 벌어진다. 산행 내내 함께 했던 안개가 걷히자 양평의 용문산, 중원산, 봉미산은 물론 강원도의 산의 굽이치는 능선이 예술이다.

갑자기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패러글라이딩 체험자들이 장비를 잔뜩 싣고 올라오고 있었다. 우주비행사를 연상시키는 복장, 수십 개의 카라비너가 달린 하네스, 초대형 기체 등이 활공장을 채웠다.

패러글라이딩활공장의 전망도 대부산의 조망 포인트다.
패러글라이딩활공장의 전망도 대부산의 조망 포인트다.

“3, 2, 1!” 울긋불긋한 패러글라이딩이 푸른 산속으로 뛰어들었다. 비록 패러글라이딩 체험자는 아니었지만 세 여자는 모두 탄성을 질렀다. 패러글라이딩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는 성아 씨가 패러글라이딩 관리자에게 이것저것 묻는다.

“패러글라이딩하면 보통 단양을 생각하는데, 대부산도 매우 좋은 비행장입니다. 비행 전 교육은 물론 국가대표 출신 전문 강사가 비행에 동행하기 때문에 안전도 확실하게 보장합니다. 무엇보다 서울 근교라 접근성이 좋고 이륙장의 위치가 높아 비행시간도 깁니다. 타 지역대비 가격도 저렴하고요.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네덜란드 편에 등장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패러글라이딩 체험자들을 떠나보내고 하산을 준비한다. 마침 하산하는 패러글라이딩 팀 트럭을 발견, 대부산과 유명산 갈림길까지 짐칸에 얻어 탔다. 걸어 올라올 땐 한참이더니 트럭으론 오 분이 채 안 걸린다.

선선한 바람과 깨끗한 공기가 가득했던 산행길. 서울 근교에서 만나는 수려한 능선, 아름다운 억새밭, 영화 촬영지 등이 뿌연 안개와 합쳐져 세 여자에게 신비함을 선물했다. 10월, 황토빛으로 바뀔 대부산의 또 다른 모습이 기대된다.

HERS SHOES
그녀들의 등산화

<케이투> 클라임 아크로
<케이투> 클라임 아크로는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나온 등산화답게 투박한 디자인이지만, 거칠고 와일드한 멋이 은근히 느껴진다.

착화감도 좋다. 새 등산화를 착용할 때마다 복사뼈 통증을 느낀다는 민아 씨는 “<케이투> 클라임 아크로를 착용한 후, 통증과 불편함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발의 뒤틀림을 잡아 발목을 보호하는 BCS(Balanced Control System)기술과 한국 산악 지형에 특화된 엑스 그립X Grip을 아웃솔에 적용한 점도 매력적이다.

블레이드 트레드톱니바퀴를 연상하는 아웃솔을 적용해 추진력과 지지력을 향상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상행과 하행 시 사용되는 발바닥 부위 별로 다른 트레드를 적용해 부상의 위험을 낮췄다.
블레이드 트레드톱니바퀴를 연상하는 아웃솔을 적용해 추진력과 지지력을 향상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상행과 하행 시 사용되는 발바닥 부위 별로 다른 트레드를 적용해 부상의 위험을 낮췄다.
보아보아는 다이얼 조작만으로 사용자 신체에 최저화된 피팅을 제공한다. 다이얼과 연결된 와이어가 발 전체를 단단히 잡아주어 편안함도 유지해 준다.
보아보아는 다이얼 조작만으로 사용자 신체에 최저화된 피팅을 제공한다. 다이얼과 연결된 와이어가 발 전체를 단단히 잡아주어 편안함도 유지해 준다.
방수갑피에 고어텍스Goretex 소재를 적용해 방수와 투습 기능이 뛰어나다. 진흙탕과 계곡 등에서 착용해도 물이 쉽게 스며들지 않는다.
방수갑피에 고어텍스Goretex 소재를 적용해 방수와 투습 기능이 뛰어나다. 진흙탕과 계곡 등에서 착용해도 물이 쉽게 스며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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