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 러너 박준섭의 이야기
트레일 러너 박준섭의 이야기
  • 박신영 기자
  • 승인 2019.09.30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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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고수의 일상 알아 보기

세상엔 수많은 취미가 있지만 내게 알맞은 취미를 찾는 건 어렵다. 취미를 찾아주는 소셜 플랫폼이 등장할 정도로 사람들은 취미 찾기에 목말랐다. 박준섭 씨는 다르다. 그는 트레일 러닝, 요가, 드로잉 등을 직업과 병행한다.

사진제공 PURNA
사진제공 PURNA

박준섭 씨의 첫인상은 수수했다. 선한 눈빛과 해사한 미소가 눈에 띄었다. SNS에서 사진으로 봤던 역동적인 아웃도어인과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출근 가방을 짊어지고 온 그는 9월 초 진행한 백두대간 트레일 러닝 프로젝트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백두대간 트레일 러닝 프로젝트는 박준섭 씨와 고민철 씨의 작품이다. 백두대간을 알리는 것은 물론 해외 트레일 문화를 국내에 전파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두 명이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2주간 달렸다.

사진제공 조덕래
사진제공 조덕래

미국 등산화 브랜드 호카오네오네의 지원을 받아 캠핑카에서 숙식하며 백두대간 트레일을 완성했다. 물론 문제도 있었다. 국립공원은 비박이 금지돼 트레일 도중에 일부러 내려와 숙식을 해결해야 했고, 정비가 안 된 등산로의 야생초에 많은 생채기를 얻었다. 갑작스런 무릎 통증이 몰려와 속리산에서 하차하기도 했다. 그는 속상하고 미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민철 씨의 완주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엔 백두대간이라는 훌륭한 트레일이 있지만 해외처럼 등산로가 잘 정비되거나 비박을 허용하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져요. 그 점이 안타까웠어요. 장거리 트레일을 경험하면 많은 것을 얻고 스스로 변화하거든요. 미국 장거리 트레일 문화인 트레일 매직(길 위에서 갑자기 마주친 음식), 트레일 엔젤(장거리 하이커를 위해 집과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는 사람)을 겪으면서 내면적으로 성장하고 변하죠. 국내 백두대간을 해외 트레일처럼 만들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은 것을 얻고 경험할 거라 생각했어요. 외국인들도 아름다운 백두대간을 걸으며 좀 더 깊이 한국을 이해할 거고요. 이미 수많은 사람이 백두대간 종주를 했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외 사람들에게 한국에도 해외 못지않은 트레일이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요.”

사진제공 조덕래
사진제공 조덕래

2017년 트레일 러닝과 함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는 무척 소심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는,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일종의 착한 아이 증후군에 걸렸었다. 그러나 트레일 러닝을 통해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자신감이 높아졌다.

“20시간이 넘는 울트라 러닝의 경우, 한계에 도달하면 심연에 빠져요. 아무 생각 없이 어둠 속을 뛴다고 할까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스스로 대화하게 되죠.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등 자신을 아주 깊숙이 마주 할 수 있어요. 또한 한계를 넘어섰다는 용기도 얻고요.”

사진제공 파타고니아코리아
사진제공 파타고니아코리아

달리기 훈련은 경기도 아차산과 용마산에서 진행한다. 맨발 달리기로 알려진 김성우 코치에게 온라인 코칭을 받으며 오르막 내리막, 인터벌, 천천히 달리기 등 다양한 훈련을 거듭한다. 몸의 가동성을 높이기 위해 요가도 꾸준히 진행한다.

“2016년 미국 장거리 트레일 PCT(Pacific Crest Trail)를 다녀온 후에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어요. 허리 디스크, 호르몬 불균형, 소화 장애로 고통받았죠. 특히 허리 디스크로 생활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진단을 받고 요가원에 갔어요. 한 동작을 짧게는 3~5분 길게는 15분 이상 버티는 하타 요가를 수행한 후 통증이 줄었고 그때부터 꾸준히 요가를 즐겨요. 무엇보다 요가가 트레일 러닝에도 도움을 많이 주거든요. 고관절, 엉덩이, 어깨 등의 유연성과 가동성을 높여주죠.”

사짅공 조덕래
사짅공 조덕래

박준섭 씨는 드로잉 작가로도 알려졌다. 2018년 서울 용산에서 개인전을 열만큼 꽤 열정적인 드로잉 작가다. 그림 열정은 2015년부터다. 웹 개발자 출신 예술가인 정진호 씨의 일상 예술 스토리에 감명받은 후다.

“정진호 작가에게 3개월간 그림을 배우면서 인물, 제품보다 자연 풍경 위주로 작업했어요. 그러다 보니 여행 드로잉이 하고 싶어졌죠.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것이 PCT 그림이에요. PCT를 걸으면서 봤던 수많은 풍경에 상상력을 더했죠. 용산에서 진행된 개인전에서 PCT 그림을 선보이자 많은 사람에게 뜨거운 반응을 받았어요. 최근엔 하이킹 아티스트로 알려진 김강은 씨와 벽화 스토리 텔링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도 했고요.”

사진제공 파타고니아코리아
사진제공 파타고니아코리아

컴퓨터 프로그래머이면서 트레일 러너, 요가인, 드로잉 작가를 겸업하는 그의 워라밸 비법이 궁금했다. 취미 하나 가지기 힘든 세상에서 직업과 세 가지 취미를 병행하는 건 쉽지 않으니까.

“백두대간 프로젝트를 마친 뒤, 본업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사실 그동안 취미에 몰두해 있어서 본업을 뒤로 미뤄뒀거든요. 이제 본업에서 큰 퍼포먼스를 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본업과 취미가 만나는 중심점을 찾으려고 노력중이에요. 그렇다고 직업을 취미 분야로 바꾸고 싶지 않아요. 취미는 오로지 휴식처니까요. 또 내 일을 하면서 취미를 하는 게 멋있다고 생각하고요. 은퇴한 후에 취미 생활 라이프를 즐길 거예요. 제주도에 학교를 세우고 트레일 러닝, 요가, 드로잉 등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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