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당모의] 오지는 오지
[작당모의] 오지는 오지
  • 박신영 기자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19.09.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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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앨범 산’ PD와 함께한 강원도 마장터 오지 백패킹

열아홉 개의 계곡과 끝없는 정글을 지나 오지에 당도했다. 계곡, 매미 울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만 들리는 강원도 고성 마장터다.

과거엔 영동에서 영서로 가기 위해 새이령(샛령, 대간령)을 반드시 넘어야 했다. 현재도 영동에서 영서로 넘어가는 데 한참 걸리는데 옛날엔 산행이 훨씬 어려웠을 것. 영동과 영서를 지나치는 나그네에게 쉼터 역할을 해 준 곳이 바로 강원도 고성군 마장터다.

박달나무 쉼터 앞,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뽀송뽀송한 옷차림
박달나무 쉼터 앞,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뽀송뽀송한 옷차림

마장터는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에서 고성군으로 넘어가는 산턱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수십 가구가 거주하는 것은 물론 주막과 마방 등 다양한 상점이 운영됐다. 자연스레 마장터라는 이름도 붙여졌다. 그러나 1971년 한계령, 1984년 진부령, 1990년 미시령에 도로가 신설되면서 외지인의 발걸음이 줄어들었고 1975년 화전민정리사업이 실시돼 마장터의 상주인구는 전멸했다. 사람들의 방문이 뚝 끊긴 약 50년 동안 마장터는 인터넷은 물론 전화도 터지지 않는 오지로 변했다. 사람들이 머물던 곳은 야생화와 희귀식물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새이령으로 향하던 길목은 울창한 숲으로 바뀌었다.

'케이투' 클라임 베인의 보아핏시스템을 조이는 지우철 PD
'케이투' 클라임 베인의 보아핏시스템을 조이는 지우철 PD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이 정점을 향하던 2000년대 중후반 사람들은 자연으로 회귀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술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거나 차가운 기계에 권태를 느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자연을 외면하던 사람들이 달라졌다. 오지 생존기를 다룬 <나는 자연인이다>와 <정글의 법칙>이 TV 프로그램 상위권을 차지했고, 하이킹, 캠핑, 백패킹이 젊은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덕분에 오지인 마장터도 백패킹 성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마장터 들머리인 박달나무 쉼터 주인장은 “가을엔 주차장이 대형 버스로 발 디딜 틈 없어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장관을 이루거든요. 여름에도 사람들이 종종 찾아와 계곡 욕, 트레킹, 비박을 합니다”라고 말했다.

첫 번째 계곡을 건너는 우철 PD와 지현 씨. 유속이 빠르고 깊어 주의해야 한다.
첫 번째 계곡을 건너는 우철 PD와 지현 씨. 유속이 빠르고 깊어 주의해야 한다.

자연은 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번 코스는 박달나무 쉼터~작은 새이령~마장터~새이령으로 왕복 약 10km다. 첫날엔 마장터를 조금 지난 계곡 근처에서 비박하고 둘째 날엔 새이령까지 갔다가 회귀할 예정이다.

박달나무 쉼터는 미시령과 진부령이 갈리는 인제군 북면 용대삼거리에서 미시령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원래 이곳은 약초 전문집으로 성행했으나, 서울양양고속도로 신설로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어 주차장 역할을 한다.

폭포에서도 방수 기능을 발휘하는 '케이투' 클라임 베인
폭포에서도 방수 기능을 발휘하는 '케이투' 클라임 베인

박달나무 쉼터의 주차비는 당일 5천원, 1박2일 1만원이다. 카드 결제가 안 돼 반드시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 박달나무 쉼터에서 과거 군부대 유격 훈련장을 지나면 계곡이 등장한다. 계곡부터 산행 시작이다. 전날 폭우가 쏟아져 계곡물이 성인 허리춤을 적실 정도로 깊었고, 물살도 거셌다. KBS TV 프로그램 <영상앨범 산>의 지우철 PD와 트레일 러너 남지현 씨의 어깨를 무거운 배낭이 누르고 있었다. 그들은 스틱을 지지대 삼고 아슬아슬하게 첫 난관을 넘었다. 10분간의 씨름 끝에 에디터도 계곡을 건넜다. 이제 산행 시작인데 벌써 힘이 부친다.

지현 씨와 우철pd
지현 씨와 우철pd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에디터를 다독이는 지우철 PD와 남지현 씨는 연인이다. 백패킹 하다가 만나 8개월째 알콩달콩 사랑중이다. 지우철 PD는 산을 좋아하고 남지현 씨는 산을 달리기 때문에 찰떡궁합. 그들은 휴일에 하이킹과 백패킹을 다니며 애정을 다진다. 이번엔 색다른 추억을 공유하기 위해 <아웃도어> 매거진과 함께 했다.

편안한 숲길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계곡이 나타났다. 첫 번째 난관이었던 계곡보다 덜했지만 이번 계곡 역시 만만치 않다. 스틱으로 겨우 지지하고 두 번째 계곡을 넘는다. 다시 고갯길과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무거운 배낭을 집어 던지고 싶을 때쯤 샘터가 나타났다.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고 약수를 들이켰다. 목구멍이 깜짝 놀라 줄어들 정도로 시린 약수 덕분에 더위에 놓친 정신줄을 꼭 붙잡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샘터에서 약수물을 마시는 지현 씨와 그녀를 바라보는 우철 PD
샘터에서 약수물을 마시는 지현 씨와 그녀를 바라보는 우철 PD

울창한 숲과 낭떠러지 계곡 사이 좁은 등산로를 따라 20분 정도 걸으면 작은 새이령이다. 당산나무와 서낭당이 작은 새이령임을 알린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작은 신당과 양옆으로 늘어진 산악회 리본들이 신비함을 더한다. 서낭당 내부, 간단한 음식과 소주 등 제물이 눈에 띄었다. 아마 몇몇 등산객이 서낭당에서 산행의 무사안녕을 빌었나보다.

작은 신당과 양 옆으로 늘어진 산악회 리본
작은 신당과 양 옆으로 늘어진 산악회 리본

당산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한 뒤 마장터로 입성했다. 마장터 초입은 고요한 숲길이다. 사람 근육 모양처럼 생긴 서어나무, 닭백숙 등 요리에 쓰이는 엄나무, 튼튼한 가구 소재인 박달나무 등 고지대에서 볼 수 있는 고목들이 줄지었다.

숲길을 지나자 두 채의 오두막집이 보였다. 2012년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한 마장터 터줏대감 정준기 씨와 또 다른 자연인의 둥지다. 제주 정낭(집 울타리)처럼 긴 나무막대가 출타 중임을 알리고 있어 멀리서 외관만 감상했다. 첩첩산중 원시림 속에서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아가는 자연인이 대단하면서도 ‘나는 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네 번째 계곡이다. 앞으로 열 다섯 개의 계곡이 남았다.
네 번째 계곡이다. 앞으로 열 다섯 개의 계곡이 남았다.

열여덟 번째 계곡은 첫 번째 계곡만큼 사나웠다. 깊이와 거센 물살에 자칫 사진기를 빠뜨릴 뻔 했다. 온 정신을 발끝에 집중하고 징검다리를 조심히 지르밟는다. 열여덟 번째 계곡이 끝나자마자 마지막 열아홉 번째 계곡이다. 이 계곡만 넘어서면 야영지다. 계곡 건너편에 작은 텐트 몇 동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힘을 쥐어짜며 열아홉 번째 계곡을 건넌다.

야영지 계곡에서 한바탕 물놀이
야영지 계곡에서 한바탕 물놀이

이열치한(以熱治寒) 프로젝트
여름엔 이열치열이라지만 마장터 계곡을 보면 이열치한일 수밖에 없다. 야영지에 텐트를 구축한 후 가벼운 차림으로 환복한다. 귀를 때리는 계곡 소리를 따라 물가로 설렁설렁 향하니 파라다이스가 펼쳐진다. 사람 한 명 없는 계곡은 아기 송사리 무리는 물론 바닥까지 훤히 보인다. 자칭 부산 물개로 통하는 사진기자는 이미 계곡에서 세 번째 다이빙 하는 중이다. 계곡물에 슬쩍 발을 담그니 금세 더위가 가신다. 우철 PD와 지현 씨도 계곡으로 뛰어들었다.

'조아제약' 얼려먹는 프로틴 깔라만시다. 힘든 산행 후 체력을 보충하기 좋다.
'조아제약' 얼려먹는 프로틴 깔라만시다. 힘든 산행 후 체력을 보충하기 좋다.

EDITOR'S PICK
에디터의 백패킹 최애 장비 BEST 3

1. <빅 아그네스> 플라이 크릭 HV UL1
에디터가 사용하는 1.5인용 <테라노바> 헬름 2 텐트보다 50% 이상 가벼운 936g으로 초경량이다. 설치도 간편하다. 싱글폴 구조로 손쉽게 설치할 수 있다. 텐트 넓이가 좁은 대신 천장이 높아 실내 활동성을 높였다. 단, 텐트 천이 얇아 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나일론 립스탑. 936g. 1인용. 43만1천원. 넬슨스포츠

2. <빅 아그네스> Q-코어 디럭스 에어 매트리스
부드러운 촉감의 스트레치 원단이 피부와 맞닿아 포근한 잠자리를 선사한다. 소음 걱정 No, 바닥 냉기 No, 무거운 무게 No. 내부에 프리마로프트 실버 소재를 적용해 냉기를 보다 확실하게 차단하고 보온 효과를 높였다.
PrimaLoft Silver®. 64x183cm. 850g. 26만2천원. 넬슨스포츠

3. <카타바틱기어> 온니 라이트 스킨 50
무게 771g으로 백패킹에 최적화된 백팩이다. 배 돛을 만드는 업체에서 개발한 라이트 스킨은 재봉선 없는 단일 원단으로 내구성이 뛰어나다. 등판에 통기성을 높이는 풀 프레임 시트와 알루미늄 지지대를 적용해 쾌적한 장거리 산행을 즐기기 좋다.
라이트 스킨. 771g. 50L. 56만원. 파커스인터내셔널

지우철 PD의 '영상앨범 산'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는 지현 씨와 에디터
지우철 PD의 '영상앨범 산'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는 지현 씨와 에디터

백패킹의 밤은 낮보다 뜨겁다.
우철 PD의 최애 장비 <그래니트기어> 타프 속으로 옹기종기 모였다. 끼니를 때우고 이야기로 빠져든다. <영상앨범 산>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한다. 지우철 PD와의 간단 인터뷰다.


스물아홉 살, 프로그램 PD로서 매우 어린 나이입니다.
스물세 살부터 KBS TV 프로그램 <영상앨범 산> PD로 일해 햇수로 6년 차에 접어들어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어린 나이 일수도 적당한 나이 일수도 있겠네요.(웃음) 고등학생 때부터 십 년 넘게 산행을 하다 보니 <영상앨범 산>에서 일할 수 있게 됐죠. 산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고, 그에게 <영상앨범 산> 팀에서 일해 달라는 부탁받아 일을 시작했어요. “취미가 일이 되면 재미없어진다”는 이야기 있죠. 저에겐 해당되는 말이 아녜요. 출장을 갈 때마다 설레고 ‘재미있게 다녀오자’는 마음이 더 커요. 평생 이 일을 하고 싶고요.

<영상앨범 산> 촬영 장소 선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국내는 사계절별로 가장 아름다운 곳 또는 알려지지 않은 재밌는 등산 코스를 선정합니다. 해외는 국내와 계절이 반대인 곳을 찾고요. 한국이 여름이면 추운 지역을, 겨울이면 더운 지역을 일부러 찾아가죠. 더울 땐 시원하게, 추울 때 따뜻하게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대리만족 할 수 있도록요. 굳이 가장 많이 촬영한 나라를 꼽자면 국내를 제외하곤 중국을 많이 갔어요.

출연자는 어떻게 선정되죠?
이렇다 할 기준은 없습니다. 산을 좋아하시는 모든 등산객에게 열려있어요. <영상앨범 산>에 출연하고 싶다면 <영상앨범 산> 홈페이지를 이용하세요. 시청자 참여 카테고리 중 산행계획 게시판에 멋진 산행지 등 산행계획 관련 사연을 올린 시청자 중 몇몇을 선발해 함께 촬영하기도 합니다.

촬영 중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면요.
세 곳이 흥미로웠어요. 먼저 국내 덕유산입니다. 덕유산 종주 촬영 날, 하늘이 어둡고 날씨도 매우 추워 출연자와 제작진이 무척 고생했죠. 다행히 다음날은 화창해 멋진 상고대를 볼 수 있었어요. 전날의 힘듦이 모두 없어지는 듯했죠. 지금까지도 그날 덕유산의 상고대가 잊히지 않아요. 두 번째는 하와이입니다. 일반적으로 하와이와 하이킹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하와이는 멋진 산악지형을 갖추고 있습니다. 영화 <쥬라기 공원> 배경지이자 해발 4천 미터 급의 마우나로아와 마우나케아산에서 장관을 볼 수 있죠. 하와이로 산행 가면 하와이에 대한 고정관념이 싹 사라집니다. 마지막은 중국 칭하이의 성 녠바오위쩌산(연보옥즉산, 年保玉则)입니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소죠. 5박 6일간 매일 야영해야 하고 해발 4천 미터로 힘든 산행이지만 수 백 개의 아름다운 호수와 멋진 자연환경을 만날 수 있어요. 잘 알려진 중국 황산, 장가계, 계림과 전혀 다른 경치에 입이 떡 벌어지죠.

덕업일치(덕질과 일이 일치한다)를 잘 실현하고 있는데요. 촬영 또는 취미로 야영할 때 반드시 준비하는 장비를 소개해주세요.
<그래니트기어>의 알파인 미니 타프를 애용합니다. 텐트 대신 또는 우천 시 장비 보호와 쉘터로 이용하기에 적합하죠. 무게도 500g이라 휴대성도 좋고 체온 유지에도 효과적이거든요.



원시림과 경외심
원시림의 아침은 남다르다. 텐트 속까지 내리쬐는 아침 햇살과 귀를 때리는 매미 울음이 숲을 채운다. 상쾌한 공기에 이른 아침을 맞았다. 평소라면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을 만질 테지만 이번엔 계곡엔 풍덩 빠졌다. 시리다 못해 따가운 계곡물에 정신이 맑아진다.

에디터의 '카타바틱기어' 온니 라이트 스킨 50과 백팩 위에 설치한 태양광 에너지 충전기 솔라페이퍼
에디터의 '카타바틱기어' 온니 라이트 스킨 50과 백팩 위에 설치한 태양광 에너지 충전기 솔라페이퍼

오전 8시, 남들은 출근행 지옥철을 타고 있겠지만 우리는 원시림으로 들어갔다. 목적지 새이령까지는 30분 남짓이다.

새이령은 네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 산마루라는 의미로 새이령과 샛령이라 일컫다가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간령(間嶺)이 됐고, 큰 새이령과 작은 새이령으로 구분해 대간령과 소간령이 됐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새이령을 석파령이라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 정식 명칭은 대간령(大間嶺)이다.

새이령에서 만난 REAL TRUE 원시림!
새이령에서 만난 REAL TRUE 원시림!

이곳은 금강산 신성봉과 북설악 마산봉을 연결하는 백두대간의 일부이며 핵심보호구간이다. 산양, 담비, 수달, 가막딱다구리, 박쥐나무, 정향나무 등 귀중한 자연의 보고인 셈. 이동 중, 멧돼지 발자국을 목격해 등골이 서늘했고, 등산로를 뛰어다니는 두꺼비를 마주쳐 반갑기도 했다. 새이령 정상에 자욱하게 깔린 안개가 신비로움을 더한다. 두려우면서도 웅장한 모습에 경외심이 솟는다.

새이령 계곡에서 원시림에 감탄하는 에디터

여름의 후덥지근한 열기와 뿌연 안개가 가득했던 산행길. 쾌청한 하늘과 어우러진 시원한 조망은 없지만 일상에서 마주할 수 없던 원시림은 운치와 신비함을 선물했다. 산행이 끝난 지금도 눈앞에 계곡과 원시림이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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