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오는 곳 '전주 부채'
바람이 불어오는 곳 '전주 부채'
  • 조혜원 기자
  • 승인 2019.08.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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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안에 종합예술, 합죽선 김동식 선자장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을 켜고, 손바닥만 한 선풍기를 하나씩 얼굴 앞에 들고 다니는 시대에 부채는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대나무를 얇게 자르고 한지를 곱게 접어 부챗살에 하나하나 붙여 완성되는 부채는 종합예술이다. 나무와 종이가 만들어내는 바람은 서정적이다. 손에 착 감기는 부채 한 자루의 이야기를 바람에 실어 전한다.

전주가 부채의 고장이라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전국 어디서나 누구나 쓰는 것이 부채인데 어째서 전주가 부채의 고장이 됐을까? 예부터 전주 인근엔 부채의 뼈대인 대나무가 많았으며 질 좋은 한지가 생산됐다. 또한 전라감영이 자리해 문화와 물자가 모이는 곳으로 공예품이 발달했다. 선자장(扇子匠)은 부채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능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오직 전주에만 소수의 선자장이 전통 부채의 명맥을 잇고 있다.

부채는 자루가 달린 단선, 접었다 펼 수 있는 합죽선 두 종류로 나뉜다. 단선은 서민들이 주로 사용하고, 합죽선은 사대부 이상의 양반이 주로 사용했다. 얇은 대나무 살을 맞붙여 만들어 합죽선이라 불리는 우리 전통 부채는 대나무 속을 깎아 내고 겉껍질로 만들어 관리만 잘하면 300년 이상 사용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하다.

우리나라엔 더위가 시작되는 단오에 부채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전라감영에 선자청을 두고 단오에 부채를 만들어 왕에게 진상했다. 임금이 신하에게 여러 자루의 부채를 하사하면 그걸 친인척과 지인에게 나누는 일에서 유례했다. 김동식 선자장의 외가는 대를 이어 부채를 만드는 집안이었다. 외증조할아버지인 라경옥 합죽선장을 시작으로 아들 라학천이 기술을 전수 받고 또 그 아들들도 모두 부채를 만들었다. 김동식 선자장은 14살부터 외할아버지인 라학천 합죽선장에게 부채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았다. 현재는 아들 김대성이 5대를 이어 가업을 잇고 있다.

김동식 선자장은 2007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합죽선은 국가 지정 공예로 등록되어있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 등의 고증에서 합죽선에 관한 기록을 찾아 직접 서류를 만들어 국가무형문화재 신청을 했다. 고단한 과정을 거쳐 201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28호 선자장으로 지정되면서 뒤를 잇는 합죽선 선자장들에게도 길을 열어줬다.

부채 만드는 과정은 꽤 어렵고 손이 많이 간다. 합죽선은 대나무를 양잿물에 삶아 진을 뺀 뒤 보름을 말려 상처 난 부분을 재하고 나무의 색, 부채의 크기와 용도에 맞춰 자른다. 부챗살을 자르고 한지를 접어 부챗살에 붙인 다음 변죽이라 부르는 부채의 끝부분에 인두로 그림을 그려 장식한다. 부채 산업이 활발하던 때엔 부챗살을 만드는 골선방, 부채에 선지를 바르는 도배방, 부채에 인두로 무늬를 새기는 낙죽방, 광택을 내는 광방, 대나무 삶고 자르는 합죽방, 부채 목을 묶는 사복방 총 6개의 공정으로 분업화 됐었지만 지금은 모든 과정을 선자장 혼자서 해야한다. 선풍기와 에어컨이 보편화되며 전통 부채를 찾는 사람은 찾기 힘들어졌지만 김동식 선자장은 고집스럽게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누군가는 지켜야할 우리의 문화이자 유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채를 선물 받은 외국인이 한국의 미에 감탄할 수 있도록 자부심을 가지고 부채를 만듭니다.”
김동식은 현대적인 것보다는 전통의 방식을 고수해 장식성을 주기보다는 합죽선 본연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에 주력한다. 최근엔 전통 부채의 우수성과 전통성을 알리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시와 시연 행사를 자주 연다. 선선한 부채 바람 같은 장인의 노력이 큰 바람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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