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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이 빚은 숨 쉬는 찻잔
명인이 빚은 숨 쉬는 찻잔
  • 조혜원 기자
  • 승인 2019.06.20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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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다완의 부활 '길성도예'

다도는 알면 알수록 깊고 심오하다. 차, 물, 다기, 차 내리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귀하고 좋은 차를 아무 잔에나 마실 수는 없다. 차인들에게 다기는 차 만큼 중요한 요소임은 물론이고 시대의 유향과 차 종류, 인원에 따라 종류도 다양하다.

고려다완, 김해다완 이라고도 전해지는 이도다완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사발이었다. 자연적이고 소박한 미적인 아름다움과 차 맛을 더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이도다완은 일본 차인들 사이에서 최고급 다완으로 취급된다. 차 문화가 보편화된 일본 무사들 사이에선 차를 마시며 마음을 정제하는 것이 하나의 미덕이었다.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돌아오면 영주가 그 공을 치하하기 위해 고려다완(高麗茶碗)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임진왜란 이후 대부분의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가며 귀한 이도다완의 맥이 끊기고 말았다. 만드는 비법도, 다완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동에 자리 잡은 길성도예 관장 길성과 그의 딸이자 수제자인 길기정 명인이 이도다완의 맥을 잇고 있다. 수십 년간 도예 작업을 해왔지만 우연히 진품 고려다완을 본 이후 맥이 끊겨버린 고려다완을 재현하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 온 힘을 쏟았다.

도자기를 만들 땐 보통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는 뼈대가 되는 흙, 색상을 내는 흙, 모양을 만들 수 있도록 점력을 가진 흙, 세종류의 흙을 섞어서 사용한다. 도자기 작업을 처음 할 때는 기교나 기술에 집중하기 때문에 흙을 섞어서 작업하다가 노하우와 기술력이 쌓이면 결국 재료의 순수성과 전통성을 찾아 한가지 흙으로 작업하게 된다. 조형성을 잘 표현하기 위해선 흙의 성질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흙의 성향과 성질을 알아야 개인의 기술의 더해져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이도는 점력이 약해 도자기 작업을 수 십년 한 사람도 어려워 한다. 그래서 한가지 흙으로 작업하고 연구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조합해서 만든 흙은 당대가 지나면 흙의 기본 구조가 변형되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서 더 발전시키기가 어렵다.

“우리 시대에 일부터 삼까지 발전을 시켰다고 한다면, 다음 대에서는 사부터 시작을 할 수 있어야 더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거죠. 후손에게 더 나아갈 여지를 주는 것이 전통을 흘러 내려가게 하는 방법입니다.”

길성도예는 흙을 따라 전국을 다녔다. 경주, 곤지암, 단양 등지를 다니며 분청사기, 백자, 청자 작업을 거쳐 이도다완을 만들기 위해 하동에 터를 잡았다. 하동 시내에서도 구불구불 차를 달려야 닿는 마을 안쪽에 작은 낙원 같은 길성도예 작업실이 있다. 폐교를 개조해 작업실을 만들고 길성도예의 발자취를 볼 수 있는 갤러리 ‘길’, 이도다완으로 다도를 할 수 있는 다실 ‘여여헌’도 곁에 자리한다.

길성은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실험과 기획을 하며 문화를 이끌어 가고 있다. 한국 원로 만화가들의 잡품을 도자기에 담아 전시회도 열었다. 요즘은 도자기에 원단을 붙여 그림 그리는 작업에 몰두 해 있다.

이도다완은 숨 쉬는 찻잔이다. 도자기가 차를 머금었다 밖으로 뿜어내며 차의 탄닌 성분을 빨아들이고 물을 정수해 차를 더 부드럽고 건강하게 만든다. 백자는 잔을 깨보면 안쪽까지 유리처럼 되어있지만, 이도다완을 깨보면 숨구멍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오래 사용하면 잔의 바닥이 빠져나온 차 성분에 의해 검게 변한다. 하나의 찻잔으로 같은 차를 주로 마시면 녹차 계열은 청빛, 발효차는 검은빛을 띈다. 찻잔을 깊이 관찰하면 잔의 주인이 얼마나 오래 차를 마셨는지, 어떤 차를 주로 마시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 다완을 고르는 것은 손에 쥐어 보고 흙의 기운을 느끼며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처럼 소중한 것을 곁에 들이듯 신중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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