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E ON BIBONG
NATE ON BIBONG
  • 박신영 기자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19.05.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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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트의 비봉 정복기(a.k.a 에디터의 극한직업)

영어 공부에 박차를 가하는 요즘이다. 하루 20분 전화 영어를 통해 스피킹의 두려움을 없애자, 외국인과 대면하고 싶었다. 에디터의 고민을 들은 지인이 단박에 미국인 네이트를 소개했다. 네이트가 등산과 여행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입수, 북한산으로 달려갔다.

HI, NATE
네이트 케네디Nate Kennedy는 25살로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태어났다. 의사가 되기 위해 생명공학을 전공했지만, 글로벌 문화에 큰 흥미를 가져 전 세계를 돌며 세상을 배우는 중이다.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는 이야기는 독특했다. 독일 베를린 여행 중 들른 한국 식당에서 김밥과 밑반찬을 먹고 한국 음식에 빠진 것. 그때는 싸이, 강남스타일, BTS가 한류 열풍을 일으키기 전으로 한국 정보가 인터넷에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유튜브 검색을 통해 한국 문화를 알게 됐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하기 위해 한국으로 날아왔다.

그는 현재 강동구 영어학원에서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영어 교사로 활동한다. 매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국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는 중이다. 귀여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그도 아이들에게 한국 문화를 배운다.

네이트는 휴일이면 한국 여행을 떠난다. 통영, 부산, 제주, 서울 등 국내 여행지를 돌며 한국 문화를 배우는 네이트다. 그는 등산도 즐긴다. 계룡산, 대둔산, 성산일출봉 등 에디터가 가보지 않은 산들도 섭렵했다. 그러나 북한산은 처음이라며 에디터에게 기대감을 표했다.

No Dust, Good Day
백운대가 북한산 대표 봉우리로 알려졌지만, 이번에는 목적지를 비봉으로 잡았다. 북한산의 아름다운 능선을 네이트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 무엇보다 산지 경력 25년인 사진기자의 적극 추천이 행선지를 비봉으로 잡게 했다.

북한산 비봉은 향로봉과 사모바위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높이 560m다.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있던 봉우리라고 해서 비봉이라 불린다. 1972년 진흥왕 순수비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해 현재는 복제비가 비봉을 지키고 있다.

구기탐방지원센터에서 비봉까지는 약 2km로 천천히 걸었을 때 2시간이 걸린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코스로 중간중간 암릉 구간이 있지만, 등산로가 잘 정비돼 초보자에게 추천한다.

구기탐방센터에 도착 후, 네이트에게 쓰레기 담을 비닐봉지와 집게를 건넸다. 지난달, 클린 하이킹을 주최하는 김강은 씨와 함께 쓰레기를 수거하며 등산했던 추억이 기분 좋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네이트에게도 깨끗한 국내 등산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클린 하이킹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등산 후 20분이 지나자, 네이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마디 했다. “쓰레기가 없어요. 길이 너무 깨끗한데요?” 지난달부터 느낀 것이지만, 국립공원 등산로에는 쓰레기가 없다. 국립공원 직원들이 수시로 쓰레기를 줍고, 클린 하이킹 봉사자들이 때때로 쓰레기를 줍기 때문이다. 그러나 등산로를 조금만 비켜나면 휴지, 비닐, 유리, 심지어 담배꽁초도 보인다.

“저기 봐요. 저쪽엔 쓰레기가 많죠?” 등산객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엔 쓰레기가 숨어있었다. 승가사 입구에 위치한 돌담 아래로 썩은 종이컵과 휴지가 널려있었다. 줍기 어려운 위치에 있어 수거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네이트가 훌쩍 돌담을 뛰어내려 종이컵을 수거했다. 누군가 버린 쓰레기를 외국인이 수거하는 모습이 참 고맙고 아이러니했다.

DongDongju Power
승가사가 보인다. 한국 사찰을 좋아하는 네이트가 승가사로 일행을 이끌었다. 고운 빛깔을 자랑하는 기와와 지난 5월 12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기 위해 걸린 형형색색 연등이 네이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국 사찰은 색이 예뻐요. 거대한 불상도 신기하고요.”

108계단으로 이루어진 청운교를 지나자 거대한 불탑이 나타났다. 9층 규모의 승가사 민족통일호국보탑이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었다. 굳센 기단부 위로 호랑이, 코끼리 등 동물이 화려하고 정교하게 조각됐고, 그 뒤로 북한산 능선이 수려한 경치를 자아낸다. 네이트는 두 손을 모으고 탑 앞에서 호젓하게 기도했다.

불도인 사진기자가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인사하는 사이, 네이트와 에디터가 승가사를 둘러봤다. 사찰 한쪽에서는 보살들이 연등을 해체하곤 새참을 즐기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셀카 삼매경에 빠진 네이트를 보곤, “동동주 한잔하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마침 갈증을 느꼈는데, 잘됐다.

네이트는 얼른 보살에게 달려가더니, 동동주를 받아 들었다. “캬~맛있어요.” 서툰 한국어로 감사 인사를 하니, 과일과 빵을 내어준다. 덩달아 에디터도 동동주 한 잔을 얻어 마셨다. 등줄기로 땀이 줄줄 흘렀는데, 동동주 한 잔에 더위가 가셨다. 이것이 한국의 ‘정’이라고 네이트에게 한국 자랑을 늘어놨다. 부처님께 인사를 끝낸 사진기자도 동동주 파티를 벌였다.

Nice Breeze? Survival Climbing!
승가사에서 물 한 모금을 얻어 마시고 다시 비봉을 향해 달렸다. 끝날 것 같지 않은 긴 계단을 지나자 본격적인 암릉 구간이 나타났다. 멀리서 보면, 금세 비봉에 올라갈 거 같았다.

그러나 바람이 앞길을 막았다. 평소엔 하네스와 로프 없이 두 발로 비봉 꼭대기까지 갈 수 있다. 국립공원에서 따로 로프를 설치하지 않았으니 말 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바람이 어마어마했다. 비봉을 제집 드나들 듯 오르내렸다는 사진기자도 일평생 이런 바람은 처음이란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만큼 바람이 몰아쳤다. 등산객의 50%는 비봉을 올라가지 못하고 바위 아래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새가슴을 장착한 에디터는 우물쭈물하기만 할 뿐 선뜻 바위에 올라서지 못했다. 사진기자와 네이트는 성큼 바위에 올라섰다. “빨리 와, 왜 안 와?”, “You can do it”이라며 사진기자와 네이트가 에디터를 부르지만, 절대 못 올라갈 거 같았다. 10분을 오도 가도 못하며 발이 묶이자, 네이트와 사진기자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여기서 점심 해결하고, 바람이 잦아들면 올라갑시다.”

바람을 피하기 위해 바위 한편에 자리 잡고, 도시락을 꺼냈다. 에디터가 꼭두새벽부터 만든 유부초밥이었다. 거들먹거리면서 생색낼 작정이었는데, 자랑은커녕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바람이 더 거세져 올라갈 시도도 하지 말았으면’ 하는 심정만 가득했다.

“바람 그쳤다. 올라갑시다” 사진기자가 채근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도시락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네이트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설렘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바람은 여전했다. 그야말로 미친 바람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었다. “저 못해요. 그냥 두 분이 올라가세요” 울며불며 포기하려는 데, 사진기자가 독촉했다. “못 올라가면 사진 안 돼, 신영 씨가 조명 잡아 줘야 한다니까. 빨리 올라와” 하늘이시여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사진기자의 클라이밍 교육 시간이 시작됐다. “여기 발에 힘을 줘서 딱 대. 손으로 바위를 꽉 누르고. 다음엔 움푹 파인 곳에 발을 대. 뒤에서 잡아 줄 테니까, 걱정 말고 올라가” 두려움이 정신을 지배하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힘이 빠진 손과 발에 억지로 힘을 줘서 올랐다. 앞서 간 네이트는 또다시 “You can do it!”을 외쳤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눈을 따갑게 했다. 여기서 멈추면 최소 사망 각이다. “나는 아웃도어 기자다. 이건 일이다”를 중얼거리며 겨우 비봉에 올라섰다. 정상의 바람은 더욱 가혹했다. 바위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와중에 사진기자가 조명 스탠드를 건넸다. 네이트는 이미 진흥왕 순수비 앞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Nice”를 외치는 일행이 원망스러웠다.

Epilogue
비봉에서 하산할 땐 몸이 바람에 적응했는지, 바위 사이를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눈물의 비봉 정복기를 마치고 그 아래 위치한 코뿔소 바위에 자리 잡았다. 드디어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내려올 땐 멋지게 내려오네. 네 몸도 적응한 거야. 잘했어”라는 네이트에게 민망함과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매일 헬스장 가는 것보다 일주일에 한 번 등산하는 게 몸에 더 좋은 거 같아. 앞으로 주말마다 등산해야겠어. 북한산에 데리고 와줘서 고마워” 나지막이 속삭이는 네이트다. 고마워하는 네이트 덕분에 에디터의 마음도 행복해졌다. 다음 주에도 네이트와 등산 약속을 잡아야겠다.

Q&A
Culture of Hiking ‘Korea vs USA’

한국 등산객 정말 많지?
응. 특히 중·장년층 등산객이 많은 거 같아. 우리 부모님은 50대거든. 매일 일하시느라 등산은커녕 휴식하지도 못해. 그리고 미국 중·장년층들은 대부분 등산을 안 가. 무릎도 아프고, 몸도 약해서 가볍게 강아지랑 공원을 산책하거나 집안에서 생활해. 미국 등산객 대부분은 젊은 사람들이야. 그런데 한국은 반대야. 중년층 등산객이 훨씬 많아. 한국 중년층은 꽤 건강해 보여. 그래서 그런지 한국 사람들은 정말 동안이야. 사진기자도 30대 후반인 줄 알았어. 알고 보니 40대 후반이었지만 말이야.

등산하는 도중에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어.
아까 우리가 쓰레기 줍는다며 고맙다는 사람을 만났잖아. 지나치면서 인사도 나눴고. 또 사찰에서는 동동주 파티에 초대해줬고. 이런 모습 볼 때마다 한국 특유의 정을 느껴. 미국에서도 등산 도중에 눈인사를 건네긴 하지만, 함께 음식을 먹자고 하는 모습은 잘 보지 못했거든. 한국의 정 문화가 정겹고 좋아.

비봉 근처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도시락 먹는 사람들도 봤어.
그것도 신기해. 미국 등산객은 도시락을 거의 싸지 않거든. 보통 초콜릿 바, 에너지 바, 간단한 음료수만 갖고 산에 올라. 가방에 도시락을 담으면 무거우니까 최대한 가볍게 등산하려고 해.

한국인과 미국인 등산복이 달라?
많이 달라. 일단 신발이 굉장히 달라. 한 번도 등산화를 신은 적이 없어. 미국 인디애나주는 평지라서 산이 많지 않지만, 모래 산이 많거든. 종종 모래 산에 올라갔고 때때로 가족과 등산 가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일반 운동화를 신었어. 지금도 운동화를 신었지. 옷도 마찬가지야. 대부분 미국 등산객은 등산 전문 복장을 입지 않아. 일상생활에서 입는 반팔과 반바지를 입어. 조금 어려운 산행 갈 때는 기능성 옷을 입고, 스틱을 사용하긴 해. 그런데 한국 등산객은 복장이 화려해. 알록달록한 색상의 옷을 즐겨 입는 거 같아. 그리고 대부분이 기능성 의류를 입네. 솔직히 기능성 의류나 등산화는 비싸잖아.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비싼 등산 복장을 구매하는지 모르겠어(웃음)

한국 등산 문화를 어떻게 생각해?
미국엔 산이 많지만 보통 자동차로 몇 시간씩 이동해야 들머리에 도착하거든. 그래서 등산할 기회가 적어. ‘등산 가자’고 쉽게 마음먹지 못해. 한국엔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멋진 산이 많으니까 좋아. 무엇보다 산악회와 같은 모임이 많은 것도 신기해. 미국엔 등산 모임이 거의 없거든. 등산을 접할 기회가 다양해서 등산 문화가 발달하는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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