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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의 무덤, 부톤섬 낚시
참치의 무덤, 부톤섬 낚시
  • 글 사진 김지민
  • 승인 2019.05.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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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참치 원정 2부

지난 번, 마나도에서의 낚시는 여러모로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이번에는 마나도를 뒤로하고 술라웨시섬 최남단 섬인 부톤으로 향했다. 부톤은 직항이 없어 마카사르를 경유해야 한다. 거대한 산호 군락을 바라보며 어느새 착륙 준비에 들어갔다. 술탄 하사누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예기치 못한 결항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저녁 7시쯤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최종 목적지인 부탄으로 가는 항공기가 결항돼버렸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항공사 측은 결항이 결정됐으니 내일 오전 6시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호텔 1박을 보상으로 제안한다. 이 말에 탑승객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우리 돈으로 약 3만원을 추가로 지원 받았다. 영화 <쇼생크 탈출>이 생각나려 하는 음침한 숙소에서의 1박. 영화 <엑소시스트>에 등장한 도서관 노인이 한평생 감옥에 있다가 출소 후 바깥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여관방만큼 누추하고 음산했다. 이불 냄새와 모기에 시달리며 하룻밤을 보냈고 다음날 새벽 비행기로 부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톤섬 오지 마을에 한글을 쓰는 부족이 있다?
첫 목적지는 부톤섬 바우바우시(市)에 살고 있는 찌아찌아족의 마을이다.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사용한다. 나는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쓰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동의를 구하고 근처 초등학교 수업에 참관하기로 했다. 초등학교 5~6학년쯤으로 보이는 아이들. 생김새와 피부색이 다른 외지인들이 떡 하니 들어와 앉자 시선은 온통 나와 일행에게 쏠린다. 수업이 시작되자 우리 귀에 익숙한 동요 ‘시냇물’을 능숙하게 부른다. 이들이 사용하는 교과서도 한글이 채택되었다.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사용하게 된 계기는 그들의 고유 언어인 ‘찌아찌아어’로 발음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라틴어를 채택했는데 가령, ‘파’ 같은 발음이 없다 보니 표현 가능한 한글을 채택하게 되었던 것. 찌아찌아족은 한글이 자신의 언어를 문자로 표현하는데 적합함을 알게 되었고, 2010년 7월에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한글 사용을 공식 승인했다고 한다. 지금도 찌아찌아족은 그들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언어를 문자로 쓰거나 기록할 때는 한글만큼 유사성을 지닌 언어도 없다는 것이다.

하교길에 몇몇 여학생들과 마주쳤다.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 히잡을 둘러쓰고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술라웨시섬 북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이슬람권이다. 부모의 신앙심 정도에 따라 아이들의 히잡이 결정된다. 부모 신앙심이 깊으면 깊을수록 자녀들도 히잡 쓸 시점이 앞당겨진다고 한다. 저녁이 되었고 식사 메뉴를 정하는 자리에서 삼겹살 이야기가 나왔다. 순간 무슬림인 코디네이터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결국은 현지식을 따르기로 했다. 이렇다 할 먹거리가 없는 오지 섬 마을이다 보니 식사 때마다 곤혹이다. 그나마 항 근처에 KFC가 있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랄까?

드디어 참치 잡이에 나서다
다음 날 새벽 1시. 참치 어선이 4시에 출항하기 때문에 1시부터 일어나 이동하지 않으면 안 됐다. 숙소에서 참치 마을까지는 차로 2시간이 걸린다. 도착한 곳은 참치 잡이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는 바다 유목민 바자우족의 마을. 반경 수십 km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황량한 오지다. 문명의 흔적이 제대로 닿을지도 의심스러울 만큼 우거진 수풀과 비포장도로. 그나마 곳곳에 세워진 전봇대를 보며 최소한 전기 공급은 되고 있었다. 새벽 4시. 이제 막 불을 밝힌 모스크에는 확성기를 통해 이슬람 성전이 흘러나오고 있다. 알라신을 영접할 신성한 시간이 온 것이다. 그러나 모스크로 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욱이 문제인 것은 출항시간이 되어도 누구 하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 있으면 해가 뜨고 놓쳐선 안 될 피딩타임(낚시에서는 입질이 잦은 최고의 타이밍)일 텐데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결국, 약속 시간을 훌쩍 넘겨 해가 다 뜨고 난 상황에서 겨우 출항할 수 있었다. 모스크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고, 참치 잡이로 생계를 꾸리는 마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들 늑장을 부린다.

그래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한 오지마을에서 바라본 여명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선착장에서 바라본 물속은 성게로 가득하다. 주변이 성게로 점령당했다는 것은 꽤 오래전부터 백화현상이 진행 됐다는 증거다. 성게가 있는 곳엔 그 어떤 해조류도 고기도 조개도 없다. 선착장 주변 바다가 오염된 것이다. 이유는 매번 잡아온 참치를 손질하고 그 부산물을 무분별하게 버렸기 때문이다. 참치 포인트까지는 약 1시간. 나는 가공할 만한 위력의 참치를 잡기 위해 채비를 꾸렸다. 낚싯대는 제가 필드 스텝으로 활동 중인 엔에스 제품으로 50kg급 참치까지 잡을 수 있는 지깅대다. 그 외 장비는 FTV <샤크> 진행자인 신동만의 자문으로 마련했기에 참치를 걸어 올리는 데는 일말의 의심이 없다. 릴에 감긴 합사 줄은 8호. 쇼크리더는 나일론 22호. 이 둘을 잇는 최강 FG노트(매듭). 여기에 참치 잡는 롱메탈지그는 강한 조류를 고려해 230g로 외바늘 채비다.

돛새치의 공격과 녹새치의 최후
포인트로 향하던 중 혹시나 해서 걸어둔 트롤링 채비에 엄청난 입질이 들어왔다. 파이팅에 들어가는데 수면에 돛새치가 펄쩍대고 뛰더니 그대로 낚싯줄이 ‘팅’.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허무하게 터지고 말았다. 포인트에 도착하자 수면에는 작은 가다랑어로 보일링이 형성되고 있다. 저 아래에는 커다란 참치(옐로핀튜나)가 어슬렁거린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꽝. 뙤약볕에 나가떨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체력안배에 실패할 경우 기다리는 것은 일사병일지도 모른다. 바다는 워낙 조류가 거세 위험하다. 이곳 수심은 300m가 넘는다.

다년간 경험으로 참치 잡이를 한 선장도 혼신을 다해 보았지만, 내 메탈지그에 낚인 것은 작은 황다랑어 한 마리가 전부. 내일을 위해 일보 후퇴를 결정했다. 그런데 바로 앞 어선에서 뭔가를 잡고 힘겨운 사투를 벌인다. 현지 어부가 줄낚시로 새치를 걸어낸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대형 참치를 단지 '줄낚시'로만 잡는데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장갑도 끼지 않고 채 맨손으로 한다는 것이다.

죽음을 직감한 녀석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바늘털이를 시도하지만 결국, 두 사람에 굴복하고 만다. 배가 기울 정도로 다급한 두 사람. 행여나 놓칠세라 방망이로 내리쳐 기절시킨다. 그렇게 녀석은 최후를 맞이했다. 참고로 녹새치는 우리에겐 생소한 단어일지 몰라도 실제론 주말 경조사(출장 뷔페)에서 줄곧 맛보았던 어종이다. 뷔페에선 ‘흑새치’ 또는 ‘참치’ 정도로만 표기되었고, 무한리필 참치 전문점에서도 자주 취급한다.

혼신을 다한 참치 낚시 그리고 상어의 출현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해가 떠오르는 지금은 대형 참치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 새벽 선착장은 수심이 매우 낮아진 상황. 때문에 큰 선박이 출항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작은 배라도 타고 나가야 했다. 이 배는 길이 7~8m에 폭은 1m 남짓한 매우 작은 배다. 이곳 어부들이야 늘 타고 다니지만, 내겐 매우 위협적이었다. 배는 한 시간 가량 달려 망망대해로 나왔다. 다행히 너울파도는 덜한데 물살이 장난 아니다. 대조류가 흐르는 곳이라 행여나 배가 뒤집히거나 사람이 빠지기라도 하다면, 아무리 구명복을 입어도 떠내려가거나 실종되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식인 상어도 곧잘 출현한다. 참치가 많은 곳엔 늘 상어가 도사린다.

그렇게 나의 상상은 계속 위험하고 끔찍한 방향으로 부풀려져 갔다. 매우 극단적인 상상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런 바다에서 작은 배를 타고 거대한 참치를 잡겠다는 시도가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꽤 무모하지 않았나 싶다.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수면에 파장을 일으키는 참치 먹잇감을 찾아내는 것이다. 주로 가다랑어(우리가 매주 먹는 참치 통조림의 원료) 떼가 노닐 때 보일링 현상이 생기는데 여기서 주낙으로 녀석들을 잡아 미끼를 꿰어 흘리면 몸길이 1m 이상의 황다랑어가, 간혹 운이 좋으면 남방 참다랑어가 문다고 한다. 이곳 어부들은 20호가 넘는 나일론 줄만으로 그 커다란 황다랑어나 돛새치를 줄낚시 하듯 잡는다. 내가 따라 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나일론 줄을 어깨에 칭칭 감아 녀석의 힘을 받아내야 하기 때문에 잘못하면 손도 쓸리고 어깨도 나간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준비한 방식대로 지깅낚시를 시도했다.

이때 건너편에 있던 배가 소란스럽다. 일행이 지깅 낚시로 뭔가를 끌어올리는데 다름 아닌 상어다. 뱃전에 올려진 상어는 성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린다. 잡히는 거라면 뭐라도 물어뜯을 기세로 덤비기에 최대한 신속하게 바늘을 빼서 바다로 돌려보낸다. 그나저나 상어가 돌아다니는 위협적인 바다에서 내가 원하는 참치를 잡을 수 있을지 벌써 불안감이 든다. 그리고 이때 내 채비에 작은 남방 참다랑어가 걸려들었다. 원하던 대상어는 맞는데 크기가 민망하다. 전운이 감도는 시각. 이제는 비장한 기분도 들지 않습니다. 그저 참치 한 마리가 절박할 뿐. 그렇게 이른 아침 골든타임은 소득 없이 지나가 버렸다. 오전 10시. 저 멀리 폭풍을 동반한 먹구름이 우릴 향해 다가오고 있다. 안전상 서둘러 철수해야 했다. 자연이 부리는 조화를 한낱 인간이 어찌 감당하겠냐만,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난 12일 동안 했던 이 일의 결과를 담대히 받아들일 때가 온 것 같다.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입질의추억tv’ 채널을 운영 중이다. 티스토리와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해 다수 방송에 출연 중이다. 현재 쯔리겐 필드테스터 및 NS 갯바위 프로스텝으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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