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함께 길들여지는 하얀 천 '소창'
삶과 함께 길들여지는 하얀 천 '소창'
  • 조혜원 기자
  • 승인 2019.04.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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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소창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마당이나 옥상에 하얀 기저귀 천이 나풀거리는 시절이 있었다. 커다란 통에 넣고 푹푹 삶아 뽀얘진 빨래의 냄새는 어쩐지 마음이 노곤해지는 풍경이다. 그 하얀 빨래가 바로 소창이다. 100% 목화솜으로 만든 천연 섬유 소창은 주로 기저귀나 행주, 수건으로 우리의 일상을 함께 했다. 그저 추억되기만 한다면 그리운 풍경이지만 삶과 함께 이어지면 문화가 된다. 소창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견고하고 단단해지는 사람들과 강화의 이야기로 초대한다.

방직공장을 개조한 카페가 SNS에 핫하게 떠오르며 주말마다 강화로 가는 길이 붐볐다. 단지 오래된 공장을 개조한 카페가 하나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강화는 우리나라 최대의 소창 생산지였으며 직물의 고장이었다.
동화책에서나 본 듯한 베틀로 하얀 실을 가로세로 촘촘히 엮어 천을 짜던 농가 부녀자들의 가내수공업을 시작으로, 강화는 우리나라 최대의 소창 생산지였으며 직물의 고장이었다. 1933년 강화에 최초의 근대식 방직공장인 조양방직이 설립되면서 직물 사업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강화는 섬임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부터 전기가 들어왔고, 1970년대부터 현대화된 공장으로 발전하여 본격적으로 대량생산체계와 수출산업으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소창뿐 아니라 인조견, 넥타이, 커튼 직물, 특수 면직물 등을 생산하는 직물사업의 고장으로 성장했다. 그 시절 강화에는 직물 공장 종사자만 4천 명이 넘었고, 강화 땅 한 평 살 돈이면 김포 땅 세 평을 살 수 있었다. 대구와 구미를 중심으로 현대식 섬유 공장이 들어서고 중국산 소창과 나일론 등의 인조 직물이 등장하며 강화의 직물사업은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 60여 곳에 달하던 소창 공장 중 현재는 8곳의 소창 공장만이 소량 생산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여생을 함께 하는 직물
소창은 물 흡수력과 통기성이 좋으며 빨리 말라 주로 기저귀, 생활 면포, 이불 솜 싸개 등을 만드는 데 쓰였다. 소창은 100% 목화솜으로 만든 천연 섬유로 기저귀부터 관을 멜 때 쓰는 띠까지 다양하게 사용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삶을 함께하는 직물이라 불린다. 그런 소창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기저귀, 헹주로 사용하는 천이라는 건 우리 몸의 소중한 곳에 바로 닿는 순한 소재라는 이야기. 최근 유해물질이 함유된 생리대의 논란이 커지며 순면 생리대와 기저귀를 찾는 이가 늘었다.
막 만든 소창은 풀을 먹여 방수천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흡수력이 좋지 않고 빳빳하다. 그래서 소창을 삶고 길들이는 조금은 수고스러운 ‘정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서너번 정련 과정을 거치면 성긴 짜임이 점차 촘촘해지고 부드러워지면서 흡수력도 좋아진다. 소창은 일상을 함께 하며 사용하는 사람에게 길들여지는 직물이다.

메이드인 강화
‘메이드인 강화’는 소창을 일상생활에서 더 친근하고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생활용품으로 만들어내는 재주꾼들이 모인 팀이다. 도시 안에서 재밌게 놀자는 마음으로 시작해 각자가 가진 재능을 모아 직물의 고장 강화의 자부심을 되살리는 데 힘쓰고 있다. 그동안의 소창은 생활용품보다는 결혼식 함이나 장례식 관 끈, 무속인의 제사용품으로 주로 사용됐지만 소창으로 만들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하다. 끝단에 예쁘게 수를 놓아 손수건으로, 주방용으로, 여러 겹으로 겹쳐 수건으로, 부드럽고 순해서 옷으로 만들어 입기도 한다. 메이드인 강화는 자수, 인테리어 디자이너, 요리 하던 손재주 좋은 능력자들이다. <오소소>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소창으로 손수건, 베갯잇, 배냇저고리, 앞치마 등을 만든다. 메이드인 강화에서 기념품과 생활용품을 만들면 강화에 있는 직물공장의 기계가 더 돌고 많은 이들이 강화의 소창을 기억해 낼 거다.

3대를 잇는 직물 공장, 연순직물
메이드인 강화가 소창을 받아오는 공장을 방문했다. 눈을 맞은 듯 뽀얀 실 먼지가 온몸에 내려앉은 사장님이 웃으며 맞이한다. 연순직물은 강화에 몇 남지 않은 직물공장 중 3대를 이어 소창을 만드는 곳이다. 연순은 2대 사장님의 이름으로, 지금은 연순 사장님과 아들이 함께 공장을 운영한다. 소창은 사람 손을 거치지 않는 단계가 없다. 원사만 수입해오고 가공부터 직조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실을 가공하는 기간만 일주일 이상 소요된다. 이제는 부품도 구하기 힘든 평직 기계를 전국을 돌아다니며 모으고 직접 수리해 사용한다. 100년이 넘은 평직기는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보존해야 하는 문화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강화 소창과 닮았다.

소창의 모든 이야기, 소창체험관
강화 직물의 옛 영광과 소창 이야기를 둘러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강화군이 평화직물의 염색공장터를 매입해 소창체험관으로 꾸민 곳에 가면 문화관광해설사가 흥미롭고 쉽게 강화 직물 사업의 영광을 한 편의 영화처럼 들려준다. 소창이 짜여지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시연관도 있고, 1800년대 사용하던 재봉틀, 나무로 만든 베틀과 직조기가 전시돼있다. 화려한 문양의 인견을 주로 생산하던 평화방직의 제품도 볼 수 있다. 소창체험관 옆에는 1938년에 지어진 한옥이 있는데, 일본의 적산가옥과 한옥의 조합이 인상적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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