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22
▲ 더덕 산행에 나선 일행. 가운데 손을 든 이가 이긴 팀의 지도자인 홍성국 씨. 그리고 홍시 오른편으로 두 번째 청년이 뻥 팀의 지도자 장순원 씨. 다들 밝고 힘차 보이지요? |
이제 이 산골에도 가을빛이 들면서 눈만 돌리면 아름다운 가을 풍경 펼쳐집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가을걷이를 하느라 바쁜 일상이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경치 때문에 바쁘게 놀리던 일손을 멈추고 가끔 “후~!” 하고 숨고르기를 합니다.
그렇게 가을빛이 아름답던 지난 주말, 저희 집에 도시에서 가을 나들이를 온 처녀 총각들이 여러 분 지냈습니다. 대부분 단골손님들이라 가리왕산 산행도 두어 번, 덕산기 계곡 트레킹도 같이 하신 분들이라 이 산골에서 다른 경험을 하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인 제가 제안해서 산에 올라 더덕 채취 경험을 해보자고 하니 다들 대찬성이었습니다. 일단 모두 8명이 넘는 손님들을 두 팀으로 나누고 야생 더덕을 알려줄 지도자(?)로 뒷집 사는 동네 주민 두 분을 초빙하고, 올 봄 이 동네로 시집 온 산악회 후배 서모 여인까지 합세해서 뒷산으로 갔습니다.
▲ 더덕 캘 때 주의점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는 홍성국 씨. 다들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
진 팀은 이긴 팀에게 읍내에 있는 중국집에서 한턱 쏘기로 했습니다. 모두 난생 처음 더덕을 캐보는 도시 처녀 총각들인지라 제법 부푼 가슴이었습니다. 그런데 더덕 캐는 것을 그저 산책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는지 강아지도 데리고 나서고 도시에서 입는 평상복에 예쁜 화장까지. 모두들 그런 차림으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 이날 최고 큰 더덕을 캔 이가영 씨. |
산에서 더덕을 캐본 경험이 그래도 꽤 있는 편이지만, 어쩐 일인지 그날따라 눈에 안 띄는지요. 그렇게 산을 이십 분쯤 올랐을까. “심봤다!” 우리 팀 지도자가 더덕을 발견했습니다. 팀원들을 모두 모아 더덕의 생김새를 알려주고 근처를 뒤지니 와우~. 더덕 밭 가운데 서 있는 우리 일행. 여기저기서 더덕향이 퍼지니 다들 신나는 얼굴이 됩니다.
이렇게 더덕을 캐며 오른 지 한 시간 쯤 지났을까요? 저를 따라 오르던 한 아가씨. 심각한 얼굴로 제게 묻습니다.
“언니, 여기도 119 구급대가 출동해요?”
“그럼요. 산골이라도 119구급대는 있지요. 왜요?”
“그럼 언니, 저 119 구급대 좀 불러주세요. 더 못가요!”
▲ 이날 이긴 팀의 수확물. |
초반에 다섯 뿌리나 캤다고 자랑을 하던 그 팀은 한 뿌리도 못 캤고, 더덕을 구경도 못했다고 투덜투덜, 이후 더덕 캐는 데 더욱 열을 올렸던 우리 팀은 무려 서른두 뿌리나 되는 엄청난 기록을 세워 상대팀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을빛이 깊어 갈수록 먹거리가 풍요로워 지는 요즈음, 가을걷이를 하느라 바쁜 일상을 접어 두고 나선 더덕 산행은 산골에 살며 누릴 수 있는 재미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슴 그득 안고, 이 산골에서 여섯 번째 가을을 살아 내고 있습니다.
권혜경 | 서울서 잡지사 편집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04년 3월 홀연히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기슭으로 들어가 자리 잡은 서울내기 여인. 그곳서 만난 총각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산골 이야기가 홈페이지 수정헌(www.sujunghun.com)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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