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展 리뷰
마르셀 뒤샹展 리뷰
  • 박신영 기자 |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 승인 2019.02.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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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품의 예술화

학창시절 마지막 미술 시간을 기억한다. 교과서엔 마르셀 뒤샹의 <샘>이란 화장실 변기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저게 작품이라고?’ 그동안 봤던 회화, 조각 작품에 비해 작가의 노력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변기를 작품이라고 했을까.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 작품 설명을 읽어 내려갔다. ‘레디메이드, 다다이즘.’ 도무지 알 수 없는 설명에 교과서를 접었다.

마르셀 뒤샹은 1900년대 초반에 활동한 프랑스 출신 미술가로 새로운 예술의 정의를 만든 현대 미술의 선구자다. 그는 기계와 육체가 결합한 작품을 그려 기존 회화 사조를 파기했고, 화장실 변기, 자전거 바퀴와 같은 기성품을 작품화하면서 레디메이드 오브제를 제시했다.

레디메이드는 기성품이란 뜻이다. 물건을 재가공하지 않고 제목만 새로 붙여 전시한다는 개념으로 1913년 뒤샹이 화장실 변기인 <샘>을 발표하면서 미술 용어로 자리 잡았다. 뒤샹은 ‘이제 미술은 어떤 대상을 평평한 캔버스 위에 재현하거나 혹은 인간의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성 제품에 사인함으로써 일상적인 사물이 예술 작품이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작품으로서 기성품을 바라볼 때는 기성품 본래 목적성을 잃고 단순히 사물 그 자체의 무의미함에서 오는 미(美)’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은 뒤샹의 초기 회화와 <샘>을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는 <마르셀 뒤샹展>을 개최했다. 전시는 총 4부로 진행된다. 1부에서는 뒤샹의 초기작을 보여준다. 인상주의, 상징주의, 야수파 등 당시 프랑스 화풍을 공부하며 제작한 드로잉이 주류다. 2부에서는 <샘>, <자전거 바퀴> 등 레디메이드 작품을 소개한다. 3부에서는 화가에서 체스선수로 변화한 작가의 일생과 작가가 ‘에로즈 셀라비’라는 가상 인물로 활동했던 사진을 보여준다. 4부에서는 뒤샹의 아카이브를 보여준다.

전시회의 정수는 <샘>이다. 미술사를 바꾼 작품인 만큼 웅장하고 거대한 분위기가 좌중을 압도할 거라 예상했지만 <샘>은 작고 초라했다. 얼룩덜룩 노랜 자국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는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고 했을까. 작품의 가치를 알기 위해 1913년으로 돌아가 보자.

뒤샹은 뉴욕 독립미술가협회가 예술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재미있는 일을 꾸민다. 그는 남성 변기를 구매해 R.Mutt라고 서명한 후 <샘>이란 이름으로 독립미술가협회전에 출품했다. 전시회 운영위는 작품 전시 여부를 두고 논란을 벌였고, <샘>은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곳으로 철수됐다. 당시 독립미술가협회 회장이었던 뒤샹은 운영위의 결정에 반발해 회장직을 사퇴하고 체스게임에 빠져 작품 활동을 중단한다. 후에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샘>을 뉴욕 갤러리로 가져가 사진을 찍고 잡지 <블라인드 매거진>에 게재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요한 것은 뒤샹이 변기를 작품으로 선택하고 <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변기 본래 가치를 제거하고 새로운 맥락과 개념을 창조한 것.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제작의 아이디어나 과정을 예술로 보는 태도의 개념 미술을 탄생시켰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외에도 뒤샹의 삶과 작품에 영향을 준 사진작가 만레이, 건축가 프레데릭 키슬러, 초현실주의 작가 앙드레 브르통, 팝아트 거장 리처드 해밀턴 등 다양한 예술가의 협업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전시 <마르셀 뒤샹展>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4월 7일까지 진행된다.

기간 ~04.07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관람요금 4천원

관람시간 월, 화, 수, 목, 일요일 10:00~18:00

금, 토요일 10:0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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