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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a가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면
India가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면
  • 글 사진 백종민
  • 승인 2018.12.30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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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고아 Goa

*이 원고는 실화에 바탕을 둔 여행소설 입니다.

“고아는 인도가 아닌 것 같아.”

손님들의 얼굴만 바뀔 뿐 테이블에 앉으면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했다. 겨울에도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고아는 여행자들로 붐비고, 잔잔한 파도가 밀려드는 너른 백사장 앞 식당은 바빠진다. 덩달아 주문을 받는 나도, 우리 형이 맡고 있는 주방도 분주해진다.

인도이지만 인도가 아닌, 고아

인도 남서부에 있는 이 땅은 1960년대까지 포르투갈의 점령지였기 때문에 힌도교 나라 임에도 마을마다 성당이 있고 카톨릭 신자가 주민의 40%나 된다. 이런 다른 문화를 배경으로 고기와 해산물을 주재료로 하는 고아 특유의 음식은 서양 여행자에게 익숙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또 주류 판매가 허용되고, 주류세가 거의 없어서 술값이 물값보다 싸니 휴가 동안 만큼은 방탕해지고 싶은 이들의 마음을 홀리기에도 충분하다. 매일 밤 펼쳐지는 해변 클럽에서의 클러빙, EDM의 열기로 태양이 타는 것만큼 핫한 선번페스티벌까지. 진탕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오토바이크 사고로 피를 흘리고 밤마다 클럽에서 놀다가 싸움이 일어나 코가 깨지기도 다반사인… 어우.

그들이 처음 식당에 온 날을 기억한다. 곧 얼굴 하얀 외국인들로 가득 찰 내부를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바꾸던 날이었는데 평소에 보지 못하던 동양인 커플이 나타났다. 우리 모두는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그들의 테이블을 쳐다봤다. ‘누가 주문을 받지?’ 우물쭈물 거리는 사이 영어를 조금이라도 하는 내가 나섰다. 메뉴판을 받아 든 그들은 지금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부터 물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였다. 간단한 샌드위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들이 궁금하긴 했지만 뜨내기에게 정성을 쏟고 싶지 않았으니까.

겨울에도 춥지 않은 따뜻한 남쪽나라

“여긴 겨울인데도 덥군요.” 음식을 내려놓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럼요. 일 년 내내 바다에 가서 수영이라도 해야 참을만한 날씨죠. 한여름에는 아스팔트가 녹아서 스쿠터도 힘들어 해요.”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스쿠터를 빌릴 수 있는 가게를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 얼마 전 손님이 저 앞 가게에서 하루 300루피에 빌렸다고 했다. “좀 비싼데….” 말꼬리를 흘렸지만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접시를 깨끗이 비운 그들은 맛있게 먹었다고, 나는 우리 형이 만든 거라고 말했다.

다음 날부터 그들은 비슷한 시간에 찾아왔다. 매번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나흘 째 되니 다른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점심 메뉴를 받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고아 요리 페이지를 펼쳐 주었다. 델리에서 부터 야채로 된 요리만 먹다가 해산물이 주재료인 고아 음식을 마주한 그들은 신이 나 보였다. 다른 직원들도 있었지만 그 커플은 늘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주문을 했다. 싫지 않았다. 매일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주는 그들이 친구처럼 느껴졌다.

초보가 서핑하기 좋은 파도와 해변

커플은 겨울이 싫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그들이 떠나온 한국은 겨울이 되면 너무 추워서 손발이 다 얼어붙을 지경이라고. 따뜻한 이 곳에서 한 달쯤 지내다 돌아갈 거란다. 스쿠터도 빌렸다고 했다. 그걸 타고 여기서 밥을 먹고 곧장 바다에 간다고 했다. 해변에 가 봤냐고 물어 왔지만 네팔 출신인 나는 형과 함께 돈을 벌려고 이 먼 서남부 인도 고아주까지 왔다. 휴일도 없이 일하느라 바다에 가지 못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커플이 밥 먹으러 오는 시간이 조금 늦어졌다. 남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음식을 입으로 넘겼다. “무슨 일이야? 혈색이 안 좋아보여.” 남자는 지난 주말부터 서핑을 배우고 있었다. 해변이 길고 파도가 적당해서 서핑하기 좋다는 얘기를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자주 들었다. 그 남자는 그동안 물놀이에 흥미가 없었는데 이 서핑이라는 건 좀 다르다고 했다. 도무지 마음대로 되지 않고 물에 빠지고 파도에 휩쓸리는데 실증이 나기 보단 꼭 한 번 멋지게 서프보드에 올라타고 싶어진다고 했다. 이게 뭐라고 욕심이 생겨서 새벽부터 나가서 입술이 파랗게 질릴 때까지 타고 온다고. 그래서 몰골이 이렇다고 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접시에 고개를 묻고 또 열심히 갈릭난을 커리에 찍어 먹는다.

외로운 이들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곳

커플이 식사를 하는 동안 식당 앞 전봇대에 또 새로운 전단지가 붙었다. ‘요가를 배우세요’, ‘방 빌려드려요’, ‘이번 주말 파티를 놓치지 마세요’. 온통 러시아어로 된 전단지 속에서 여기가 인도 고아주인지, 러시아 고아주인지 혼란스러운 그 기간이 시작된 거다.

연말이 되자 가게 안에도 러시아 사람들로 붐볐다. 한참 기다린 뒤 주문을 하던 그 커플이 사정을 물었다. “논밭이던 이 동네에 집들이 올라가기 시작했던게 10년 전이라고 들었어. 그 뒤에 러시아 사람들이 연말 휴가를 보내기 위해 몰려 들더라고. 여유롭던 주방이 바빠지면서 형이 왔고, 2년 뒤에 영어로 말할 수 있는 나까지 와서 서빙을 하고 있는 거야. 지금은 크리스마스부터 연초까지 몰려드는 사람들로 숙소를 구할 수 없을 지경이야.” 주문을 기다리는 테이블로 넘쳐나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계속 해 달라는 반짝이는 커플의 눈을 뒤로 할 수 밖에 없었다.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평소보다 일찍 왔다. 여전히 서핑에 취해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며칠 전 새벽에 식당 바닥에서 자는 우리를 봤다고 말했다. 나와 형을 비롯한 이 식당의 직원들은 숙소가 없다. 그야말로 식당에서 먹고, 자고, 씻는다. 더운 지역의 건물이 그렇듯 창문도 없이 밖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이니 지나는 길이라면 어렵지 않게 보았을 풍경이다. 나는 메뉴판을 건넸는데 그 커플은 선물꾸러미 하나를 내 손에 쥐어줬다. 손님이 많아지면 선물 주기 힘들 것 같아 평소보다 일찍 왔다고 했다.

해가 바뀌면서 해변 클럽에서 틀어놓은 음악 소리가 줄어들었다. 그만큼 식당의 테이블도 빈자리가 늘었다. 늘 그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릴 것 같던 그 커플도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했다. SNS 주소를 주고 받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커플의 SNS에는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못 가본 해변에서 즐거워하는 모습과 손님들에게 말로만 전해듣던 고아의 풍경들로 가득했다.

다시 연말연시가 가까워지고 상기된 얼굴의 새 손님들이 자리를 채울 것이다. 하지만 그 커플은 오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다시 오겠다고 했지만 올 겨울에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흥청망청 돈을 쓰던 크리스마스 휴가객들과 마찬가지로 인도이지만 인도가 아닌 것 같은 고아를 떠나 그들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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